영화 · 2026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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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씨, 그 똥차는 잘 빌리신 거예요
편지를 쓰게 된 사정부터요.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자꾸 한 사람 얼굴이 따라왔어요. 치매 걸린 시어머니도, 뱀파이어 손녀도 아니고, 운전석 옆에서 내내 뭔가를 참고 있던 며느리였어요. 집에 와서 밥을 안치다가 쌀을 몇 번 씻었는지 까먹고 다시 씻는 지경이 돼서, 그냥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영화 속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게 이상하다는 건 아는데, 이 사람은 영화 속에 있기엔 너무 우리 동네 사람 같아서요.
영주 씨에게.
먼저 호들갑부터 좀 떨게요. 영주 씨, 저 그 승합차 보고 웃다가 숨 넘어갈 뻔했어요! 생닭 배달하던 차를 빌려서 다섯 식구 태우고 부산까지 간다는 발상이 어디서 나와요. 남편분이 「나 엿 먹이려고 이런 똥차 빌린 거지?」 하고 따질 때, 솔직히 말하면 저는 남편분 편을 반쯤 들었어요. 그 차가 고속도로를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동안 노래는 끝도 없이 나오고, 아버님은 거친 말투로 고집을 부리시고, 어머님은 「밥 주라고!」 하시고. 따님은 낮에는 햇빛을 피하는 뱀파이어 노릇을 그만두지 않고요. 그 차 안이 이 영화의 전부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다섯 사람이 평소엔 한 방에 모일 일도 없었을 텐데, 좁은 차에 갇히니까 그제야 서로 얼굴을 보잖아요.
그런데 영주 씨가 한 일 세 가지를 꼽아 보다가 웃음이 멎었어요.
하나. 영주 씨는 부산에 하루 다녀오자고 말했어요. 어머님 생신 기념이라고요.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머님이 사라졌다가 한밤중 고속도로에서 발견되고, 센터에서 더는 못 맡겠다고 통보한 바로 뒤에요. 생일 여행이라는 말 뒤에 요양원이라는 목적지를 숨겨 둔 채로, 영주 씨는 케이크 사듯 그 말을 꺼냈어요. 저는 그게 거짓말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게 영주 씨가 할 수 있는 가장 예의 바른 포기였다고 생각해요.
둘. 그 똥차를 빌렸어요. 제목에 쓴 말이지만 다시 써요. 영주 씨, 그 차 잘 빌리신 거예요. 멀쩡한 차였으면 다들 창밖만 봤을 거예요. 차가 느리고 시끄럽고 닭 냄새가 나니까 짜증이 쌓이고, 짜증이 쌓이니까 남편분이 다른 운전자와 시비가 붙고, 그 와중에 아버님 입에서 비밀이 터져 나오잖아요. 어머님을 요양원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이라는 거, 영주 씨만 아는 줄 알았던 그거요. 그 비밀이 고속도로 위에서 터지는 걸 보면서 저는 이 영화가 왜 로드무비여야 했는지 알았어요. 집에서는 아무도 그 말을 안 했을 테니까요.
셋. 어머님이 밤거리에서 사라진 그 즈음, 영주 씨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어머니 진짜 못됐다」고 했어요. 저는 이 대사에서 울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못됐다는 말이 그렇게 다정하게 들린 적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5년 전 어머님이 통닭집을 하다 쓰러지시기 전까지 그 집 생계를 어머님이 책임졌다는 걸 영화는 미리 알려 줘요. 그러니까 영주 씨는 자기를 먹여 살린 사람을 맡기러 가는 길에, 그 사람이 또 사라지니까, 못됐다고 한 거예요.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 집에 영주 씨밖에 없어요.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감나무 아래서 어머님과 둘이 웃던 장면이요. 무슨 얘기를 하셨어요? 그 장면은 소리보다 두 사람 얼굴이 먼저 들어와서, 저는 아직도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나 더요. 남편분이 해 지는 바닷가에서 아버님의 부고를 듣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 영주 씨는 어디 계셨어요? 카메라가 남편분을 보는 동안 영주 씨는 또 어딘가에서 뭔가를 수습하고 있었을 것 같아서요. 이 영화에서 영주 씨는 늘 화면 가장자리에서 뭔가를 들고 있었어요.
하나 더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어머님한테 오토바이 탄 사람이 처음엔 화를 내다가, 사정을 알고는 「왜 그러세요?」 하고 걱정하던 장면이요. 저는 거기서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알았어요. 어머님이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영화가 나쁘게 그리지 않아요. 화를 내던 사람도 금방 걱정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요. 그래서 어머님이 사라질 때마다 저는 무섭다기보다 영주 씨가 또 뛰어야겠구나 싶었어요.
따님이 영화 맨 처음에 할머니한테 묻잖아요. 「할머니, 인간은 언제까지 고달픈 거야?」 저는 그 질문에 답할 사람이 할머니가 아니라 영주 씨라고 생각했어요. 밖으로 자꾸 나가려는 할머니와 집 안에만 있으려는 손녀 사이에서, 두 사람 다 먹이고 두 사람 다 찾으러 다니는 사람이 영주 씨였으니까요. (제 어머니도 할머니를 집에서 돌보셨는데, 그때 저는 뱀파이어는 아니었지만 제 방에서 안 나오는 쪽이긴 했어요. 그 얘기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영주 씨 얘기보다 길어지면 안 되니까요.)
그 길 끝에서 영주 씨가 뭘 골랐는지는 여기 적지 않을게요. 아직 안 본 사람이 이 편지를 읽을지도 모르니까요. 다만 어머님이 「집에 가야 한다」고 자꾸 말씀하실 때, 그 집이 어디인지 영주 씨는 알고 있었을 거라고 저는 믿어요. 부산이 어머님 고향이잖아요. 요양원 가는 길을 고향 가는 길로 바꾼 건 영주 씨예요. 똥차를 빌린 것도, 생일이라고 말한 것도, 못됐다고 한 것도 다 그 한 사람이 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영주 씨, 고생하셨어요. 이 말이 하고 싶어서 편지를 썼어요.
추신. 그 승합차 닭 냄새는 돌아와서 빠졌나요? 안 빠졌으면 그냥 두세요. 그 냄새 덕분에 다섯 사람이 한 번은 같은 데를 봤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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