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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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가 누구냐를 두고 친구와 두 시간
상황부터 말씀드린다. 친구가 이 영화를 뒤늦게 보고 전화를 걸어왔다. 영화 얘기를 하자는 전화는 대개 영화 얘기가 아니라 자기 얘기인 법이라, 커피 한 잔 값으로 두 시간을 쓸 각오를 하고 나갔다. 아래는 그날 오간 말을 내 기억대로 옮긴 것이다. 토씨는 내가 고쳤고, 작품에 관한 사실만은 확인된 것으로 추렸다. 미리 적어 두자면 우리는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사별한 주인공이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를 두고 두 사람이 결론에 이르는 일은 애초에 드물다 하겠다.
줄거리는 이렇다. 남편을 4년 전에 잃은 브리짓이 아버지가 남긴 삶을 온전히 살라는 말과 주치의의 복직 권유를 등에 업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데이팅 앱에서 스물아홉 록스터를 만나고, 아들 학교에서 과학 교사 월리커와 부딪친다. 여기까지는 아직 안 보신 분들도 포스터만 보고 맞히실 수 있는 대목이다.
친구 록스터 말이야. 걔 너무 쉽게 버려진 거 아니야?
나 쉽게 버려진 게 아니라 쉽게 도망간 거다. 파티에서 술 먹고 타임머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다음 날 아침에 사라지고, 그 뒤로 답장도 없고.
친구 그래도 돌아왔잖아. 방송국에 파이 들고 와서 미안하다고, 이제 준비됐다고.
나 돌아온 건 맞다. 그런데 브리짓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시는지. 나도 타임머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네가 따라올 수 있게. 그 말 듣고 나는 록스터가 불쌍하다기보다 영화가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스물아홉을 데려다 놓고 쉰 몇과 끝까지 가게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친구 그게 솔직한 거야? 난 그게 좀 비겁하던데. 젊은 애 하나 세워 놓고 실컷 설레게 한 다음에 「역시 선생님이지」로 가는 거잖아.
나 그건 그렇다. 수순이 뻔하긴 했다.
친구 그래도 메이블은 록스터를 새 아빠라고 불렀잖아. 애가 그렇게 빨리 붙었는데.
나 메이블은 붙었고 빌리는 안 붙었다. 영화가 그 둘을 나란히 놓은 게 답이라 하겠다. 어린 쪽은 새 사람을 받고, 아버지를 기억하는 쪽은 못 받는다. 록스터가 빌리한테 받아들여지는 장면이 있었던가. 나는 기억이 없다.
친구 없었던 것 같아. 그게 걔한테 좀 불공평하지.
친구 그리고 그 선생. 월리커. 나는 그 사람 좀 걸렸어.
나 걸리다니. 과학 선생이 호수 지방 수학여행에서 애한테 아빠 얘기 물어보는 게 걸리나.
친구 아니, 그 장면은 좋았지. 빌리가 아빠를 잊을까 봐 무섭다고 하니까, 아빠는 네 안에 있어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는 거. 거기서 나 울었어. 근데 그 사람, 자기도 애를 기다렸는데 안 생겼다고 하잖아. 그 말을 브리짓한테 한 다음에 그 집 애들한테 잘해 주는 거. 그게 난 좀 걸려. 너무 맞춤이잖아.
나 맞춤이면 안 되나. 나는 그게 이 영화에서 제일 구수한 대목이라고 봤다. 아이 없는 선생이 아버지 없는 아이에게 피아노를 쳐 주고, 겨울 발표회에서 그 아이가 아버지한테 노래를 부른다. 뻔한데 뻔한 줄 알면서도 넘어가는 대목이라 하겠다.
친구 넘어가긴 했지. 눈 오는데 뉴턴 얘기 하다가 키스당하는 것도 봤고.
나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라는 제3법칙. 사람이 고백을 하면서 물리를 꺼내는 건 이 영화의 남자 중에 그 사람뿐이다. 록스터는 타임머신을 꺼냈고.
친구 둘 다 과학이네.
나 하나는 있는 과학이고 하나는 없는 과학이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합의가 됐다. 문제는 올빼미였다.
친구 올빼미는 뭐야? 밤마다 창밖에 오는 하얀 올빼미. 메이블이 자꾸 찾는 거.
나 마크다. 죽은 남편. 마지막에 새해 파티 끝나고 애들 재울 때 올빼미가 날아가고, 그걸 아래층에서 월리커가 본다. 그러니까 남편이 자리를 비켜 주고 가는 거다. 그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친구 그냥 올빼미일 수도 있잖아. 런던에 올빼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나 로맨틱 코미디에 4년 동안 같은 창가에 오는 올빼미가 그냥 올빼미일 리가.
친구 4년이라고 영화가 말했어? 메이블이 요즘 온다고 한 거지.
나 그건 내가 보탰다.
친구 봐. 너는 올빼미를 남편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난 올빼미가 그냥 올빼미라서 좋았어. 날아가는 걸 선생이 봤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거기에 뜻을 붙이는 순간 그 집 애들이 또 아빠 얘기를 해야 하잖아.
나 그러면 영화는 왜 월리커한테 그 올빼미를 보여 줬나.
친구 그건 모르지.
나 나도 알 도리가 없다.
커피가 식을 때쯤 우리는 다니엘 얘기로 넘어갔다. 심장 때문에 병원에 누워서 보호자로 브리짓 이름을 적어 넣은 남자, 십 년 넘게 못 본 아들을 1년 뒤 새해 파티에 데려온 남자. 친구는 그 열여섯 살짜리가 파티 손님한테 수작 거는 게 제일 웃겼다고 했고, 나는 옛 바람둥이가 아들과 함께 들어오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일 염치없이 따뜻한 장면이었다고 했다. 여기서는 의견이 갈리지 않았다. 아무튼.
마크의 생일에 세 식구가 공원에서 편지 매단 풍선을 날리는 장면이 있다. 친구는 그 장면을 잘 기억하지 못했고, 나는 올빼미보다 그 풍선이 더 남편 같았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올빼미 얘기를 두 시간 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직 안 보신 분들께는 이렇게만 말씀드리겠다. 올빼미가 누구인지는 보고 나서 각자 정하시면 되고, 정한 다음에 친구와 두 시간을 쓰실 각오는 하시는 게 좋다. 우리는 한 줄도 합의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커피 값은 내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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