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1
최혹적세계: 오늘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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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를 빼는 1초
중고차 시장 한복판에서 여자가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그리고 큰 원형 귀걸이를 뺀다. 방금 전까지 부잣집 여자 행세로 몰래 카메라를 돌리던 사람이, 사기꾼들에게 둘러싸여 얻어맞을 뻔하다가, 지나가던 낯선 남자 덕에 빠져나온 직후다. 15화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기로 했다.
먼저 고백. 나는 이 드라마를 「오늘은 인턴」이라는 부제만 보고 몇 달을 미뤘다. 40회에 한 회 45분, 합치면 서른 시간이고, 서른 시간 동안 누가 혼나는 걸 보는 게 겁났다. 혼나는 사람을 보면 내가 혼나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최혹적세계: 오늘은 인턴」을 봤다. 2021년 8월에 중국에서 나온 40부작이고, 연출과 극본을 한 사람이 맡았다. 작은 잡지사 뉴플래그가 뉴미디어 회사 YO미디어에 넘어가면서, 퓰리처상을 꿈꾸던 기자 텅샤오샤오가 인턴으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다.
이 글은 텅샤오샤오를 맡은 배우가 그 배역에서 한 선택 세 개만 본다. 배우 개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화면에 보이는 것만 쓴다.
장면 1 · 비 오는 밤, 잡지를 안고
1화. 샤오샤오는 시골에 한 달 넘게 들어가 쓴 심층 기사가 실린 잡지의 견본을 받는다. 그런데 그 호는 발행되지 않는다. 회사가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날 밤 그녀는 비를 맞으며 인쇄소에 가서 견본 몇 권을 안고 돌아온다. 한 줄거리 소개는 이 대목을 잡지를 보물처럼 비에서 지켰다고 적었다. 집에 오면 남자친구가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자기 작품이 천 위안에 팔린 날이고, 동업자에게 여자친구한테 벌어 오게 하라는 소리를 들은 날이다. 그는 문 안쪽에서 헤어지자고 하고 월세 절반을 돌려준다.
다른 배우라면 흔히 하는 선택이 있다. 비 맞는 장면에서 울고, 문 앞에서 더 우는 것. 울면 카메라가 가까이 오고, 가까이 오면 연기한 티가 난다. 이 배역은 그 순서를 바꾼다. 잡지가 먼저다. 몸이 잡지를 감싸느라 얼굴은 뒤로 간다. 문 앞에서도 이 사람은 잡지를 든 채다. 하루 종일 지킨 물건을 들고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 있는 몸. 나는 그 몸이 어떤 눈물보다 많은 말을 한다고 봤다. 한 매체는 이 배우가 보여 준 샤오샤오의 진실감을 시청자들이 꼽았다고 전했다. 진실감이라는 말은 흔한데, 이 장면에서는 뜻이 분명하다. 울 겨를이 없는 사람은 안 운다.
장면 2 · 가짜 가방 앞에서
4화. 헤어진 남자친구 녜자판이 친구 집에 꽃을 깔아 놓고 고급 모조품 가방을 선물한다. 샤오샤오는 그 앞에서 운다. 줄거리 소개에 감동해서 울었다고 적혀 있는 장면이다. 다음 날 그 가방을 들고 출근하자 기획부 매니저 훙후이가 사람들 앞에서 비웃는다. 선배 주샤오원이 두 마디로 받아치고, 점심시간에 남편을 시켜 자기가 한 번도 안 든 가방을 가져다준다. 나이에 안 맞아 못 들었다는 가방이다.
나는 이 울음이 이상해서 좋았다. 가짜 가방을 받고 우는 여자. 흔한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속은 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울거나, 속은 줄 알면서 고마워서 울거나. 어느 쪽이든 「가짜」가 연기의 중심이 된다. 그런데 이 배역은 가방을 보고 우는 게 아니라 꽃을 보고 운다고 나는 읽었다. 비 오는 밤에 문을 안 열어 준 사람이 꽃을 깔아 놓았다는 사실. 가방의 진위는 그다음 날 회사에서 남의 입으로 판정된다. 울음과 판정 사이에 하루가 있다. 한 기사는 이 배우의 우는 장면에 있는 연약함을 시청자들이 인정했다고 썼다. 연약함이 뭔지 나는 이 하루에서 이해했다. 어제의 울음을 오늘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람. 그게 진짜 사람이다.
부럽다. 나는 어제 운 것을 오늘 합리화한다. 이 사람은 그냥 다음 날 출근한다.
장면 3 · 귀걸이를 빼는 1초
다시 15화. 샤오샤오는 「올인」이라는 프로젝트의 몰래 취재를 위해 친구 딩눠에게 명품 가방과 옷을 빌려 입고 중고차 시장에 부유한 여자로 들어간다. 사기꾼 무리에게 들켜 둘러싸이고, 지나가던 돤충이 끼어들어 막아 준다. 돤충과 친구 청쉬가 집까지 데려다주는 길에 그녀는 하이힐을 벗어 운동화로 갈아 신고 큰 원형 귀걸이를 뺀다. 돤충은 그걸 재미있어하고, 헤어질 때 전화번호를 받아 낸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았던 1초는 귀걸이를 빼는 순간이다. 대사가 없다. 설명도 없다. 분장을 벗는 동작인데, 부잣집 여자 행세를 끝내는 동작이기도 하고, 방금 얻어맞을 뻔한 사람이 자기로 돌아오는 동작이기도 하다. 흔한 선택은 여기서 한숨을 쉬거나 한마디 하는 것이다. 「죽는 줄 알았네」 같은 말. 이 배역은 말 대신 귀를 비운다. 그리고 그 동작을 옆에서 보던 남자가 웃는다.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방식으로는 꽤 드문 편이다. 보통은 여자가 남자를 보고 뭔가를 느끼는데, 여기서는 남자가 여자의 신발 갈아 신는 걸 보고 뭔가를 느낀다.
얄밉다. 나는 집에 와서도 양말을 안 벗고 한 시간을 앉아 있는 사람이다.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 사람은 집에 가는 길에 이미 돌아와 있다.
결말도 한마디. 몇 년 뒤 샤오샤오는 감독이 되어 만리장성에서 촬영을 지휘한다. 거기서 아이를 안은 돤충을 만나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줄 알고 실망한다. 남의 아이다. 오해가 풀리고 둘은 다시 만난다. 한 시청자 평은 이 드라마가 직장극으로 시작해 뒤로 갈수록 연애극이 됐다고 아쉬워했고, 나도 그 아쉬움에 반은 동의한다. 좀 그랬다. 그런데 장성 장면에서도 이 배역은 아이를 보자마자 실망부터 한다. 묻기 전에 몸이 먼저 결론을 내리는 사람. 15화에서 귀걸이를 빼던 그 사람이 맞다. 대본이 어디로 가든 배우는 그 한 줄을 지켰다.
샤오샤오, 다음엔 묻고 나서 실망해라. 그래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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