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2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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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중 하나를 맞히는 가장 느린 방법
넷 중 하나. 이 영화가 내미는 문제는 처음부터 그 크기다.
1973년 런던. 영국 비밀정보부를 사람들은 서커스라고 부른다. 국장 컨트롤은 간부 중에 소련이 심은 두더지가 있다고 믿고, 체스 말에 간부들 사진을 붙여 놓고 동요 가사로 암호명을 붙인다. 땜장이, 재단사, 군인, 가난뱅이, 그리고 거지. 거지는 컨트롤의 부관인 조지 스마일리 본인이다. 그러니까 명단은 다섯이지만 스마일리 자리에서 보면 자기를 뺀 넷이다. 컨트롤은 답을 받아 오라고 짐 프리도를 부다페스트에 보내고, 프리도는 총에 맞고, 컨트롤과 스마일리는 쫓겨난다. 컨트롤은 곧 죽는다. 얼마 뒤 은퇴한 스마일리에게 문제가 그대로 되돌아온다. 넷 중 하나.
나는 이런 문제를 보면 계산부터 하고 싶어진다. 틀릴 수 있다는 걸 미리 말해 둔다.
계산 1. 넷 중 하나는 얼마나 어려운가
아무 정보 없이 찍으면 맞힐 확률은 4분의 1이다. 동전을 두 번 던져 둘 다 앞면이 나올 확률과 같다. 그런데 이건 찍어서 맞히면 안 되는 문제다. 틀리면 멀쩡한 사람을 반역자로 몰고, 맞혀도 증거가 없으면 두더지는 웃으며 걸어 나간다. 그래서 스마일리는 확률을 줄이는 쪽이 아니라 확률 자체를 없애는 쪽으로 간다.
영화가 주는 단서를 세어 보자. 하나. 현장 요원 리키 타르가 이스탄불에서 두더지의 존재를 알리는 전문을 보낸 날, 당직 기록부의 그날 치가 뜯겨 나가 있다. 누군가 지웠다는 건 알려 주지만, 넷 중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 확률은 그대로 4분의 1이다. 둘. 프리도가 총에 맞은 밤 서커스로 제일 먼저 달려온 사람이 빌 헤이든이었는데, 그 밤에 소식을 전하려고 전화를 건 곳이 스마일리의 집이었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스마일리의 아내였다는 증언이 나온다. 넷을 하나로 줄이는 단서처럼 보인다. 스마일리는 그걸로 끝내지 않는다.
셋. 스마일리는 간부 하나를 추방하겠다고 압박해 두더지가 소련 쪽 연락책 폴랴코프를 만나는 안가 주소를 받아 낸다. 그러고는 타르를 파리로 보내 서커스에 전문을 치게 한다. 자기가 중요한 정보를 쥐고 있다고. 두더지라면 그 전문을 보는 즉시 폴랴코프에게 달려올 것이다. 스마일리는 안가에서 기다린다. 온 사람이 답이다.
이 방법의 좋은 점은 확률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열 번 재서 평균을 내는 대신, 한 번에 분명하게 갈리는 상황을 만든다. 단서를 모아 범위를 좁히는 건 추리고, 범인만 움직일 수밖에 없는 판을 짜는 건 실험이다. 이 영화의 스마일리는 추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험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계산 2. 마녀술의 환율
두더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덫이 왜 거기 놓였는지 이해된다. 새 국장 퍼시 앨러라인과 간부들은 마녀술이라고 부르는 작전으로 소련 대사관의 폴랴코프에게서 소련 정보를 받는다. 그 정보가 좋아 보여서 미국이 영국을 믿고 자기들 정보를 나눠 준다. 그리고 두더지가 그 미국 정보를 폴랴코프에게 넘긴다. 스마일리가 밝혀내는 구조가 이것이다.
어림잡아 환율을 따져 보자. 가정은 이렇다. 소련이 내주는 정보의 값을 1, 미국이 영국에 내주는 정보의 값을 10이라 하자. 숫자는 내가 지어낸 것이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1을 주고 10을 받는 장사고, 영화는 소련이 내주는 쪽이 일부러 질 낮은 것만 골라 보낸다고 말한다. 그러니 실제 환율은 10보다 훨씬 클 것이다. 마트가 계란을 밑지고 파는 건 계란 사러 온 사람이 다른 것도 사기 때문이고, 낚시꾼이 떡밥을 뿌리는 건 떡밥보다 물고기가 비싸기 때문이고, 사기꾼이 먼저 작은 돈을 보내 주는 건 그다음에 큰돈을 받기 위해서다. 마녀술은 이 셋을 합친 것이다. 영국이 산 것은 소련 정보가 아니라 소련 정보처럼 생긴 떡밥이었다.
이 계산은 이야기를 더 그럴듯하게 만든다. 왜 서커스 윗사람들은 두더지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가. 환율이 좋다고 믿는 사람은 환전소를 의심하지 않는다. 작품도 이걸 알고 있다. 앨러라인이 의심을 꺾으려 드는 장면들이 어리석음으로 보이지 않고, 남는 장사를 지키려는 사람으로 보이는 이유다.
계산 3. 라이터 한 개의 수율
1955년 델리. 스마일리는 붙잡힌 소련 요원 하나를 전향시키러 간다. 뒷날 소련 정보부의 우두머리가 되는 카를라다. 스마일리는 담배와 라이터를 내밀고, 돌아가면 처형될 테니 남으라고 설득하면서 아내 얘기를 꺼낸다. 카를라는 전향을 거부하고, 담배는 두고, 라이터만 챙겨 간다. 라이터에는 아내 앤이 새겨 준 「To George from Ann, All my love」가 적혀 있다. 1973년까지 18년이다.
글자를 세어 보면 서른 자 남짓이다. 그 서른 자가 카를라에게 알려 준 사실은 하나다. 이 남자의 약점은 아내다. 18년 뒤 서커스에 심어 둔 두더지 빌 헤이든에게 카를라는 스마일리의 아내를 유혹하라고 지시한다. 헤이든이 붙잡힌 뒤 제 입으로 털어놓는 말이다. 목적은 스마일리의 판단을 흐리는 것. 넷 중 하나를 골라야 할 사람이 하필 그 하나에 대해서만 눈이 흐려지게.
수율을 따지면 이렇다. 들어간 것은 라이터 한 개, 담배 한 갑, 설득에 실패한 오후 한 나절. 나온 것은 영국 정보부에서 가장 눈 밝은 사람이 두더지를 볼 수 없게 만드는 장치다. 그리고 그 밑천을 댄 사람은 스마일리 자신이다. 설득하려고 약점을 꺼내 보였기 때문이다. 카를라는 그걸 받아 적었을 뿐이다.
다만 이 계산에는 틀릴 수 있는 곳이 있다. 라이터가 없었어도 카를라는 앤을 알았을 것이다. 스마일리가 입으로 말했으니까. 그렇다면 라이터는 정보가 아니라 영수증이다. 네가 나에게 이걸 줬다는 증거. 영화는 그 영수증을 스마일리의 입으로만 보여 준다. 카를라의 얼굴은 끝까지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세 계산을 합치면 이렇다. 두더지 문제는 4분의 1에서 시작해 덫 하나로 1이 되었고, 그동안 서커스는 떡밥을 금으로 알고 사들였고, 그 모든 일의 출발점에는 18년 전에 건네준 서른 자짜리 라이터가 있었다. 우주에는 의미가 없다. 라이터에도 없다. 거기에 글자를 새겨 넣은 사람과 그 글자를 읽어 낸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그 두 사람이 한 번도 같은 화면에 나오지 않는 영화다.
한 줄로 줄이면, 넷 중 하나를 맞히는 데 18년이 걸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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