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2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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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남자가 제일 먼저 한 일
한 남자가 시력 검사 기계 앞에 앉아 있다. 누군가의 손이 기계를 조정한다. 남자는 말이 없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조지 스마일리가 처음으로 하는 일이다. 두더지를 찾는 것도, 누구를 의심하는 것도 아니고, 안경을 새로 맞추는 것.
원작 소설에는 없는 장면이라고 한다. 소설과 옛 드라마는 이스탄불에서 벌어진 일로 이야기를 열었는데, 영화는 그걸 뒤로 밀고 앞머리에 은퇴한 남자가 안경을 맞추는 장면을 지어 넣었다. 나는 이 선택이 영화 전체를 요약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썼지만 확신은 아니다. 안경 하나로 두 시간짜리 영화를 다 읽겠다는 건 숟가락 하나로 식당을 평하는 일과 비슷해서, 틀리면 꽤 민망하다. 그래도 해 보겠다. 민망함은 내 전공이다.
자, 사정부터 정리하자. 1973년, 영국 비밀정보부 서커스의 국장 컨트롤이 부다페스트 작전에 실패하고 물러난다. 그의 부관 스마일리도 같이 잘린다. 컨트롤은 곧 죽는다. 얼마 뒤 정부 쪽 사람이 스마일리를 찾아와, 서커스 윗자리에 소련의 두더지가 있으니 밖에서 조용히 찾아내 달라고 한다. 스마일리는 처음 등장하고 나서 19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첫 대사는 「난 은퇴했소. 기억하시오? 당신이 날 잘랐지」다. 19분 동안 그가 한 일은 보는 것뿐이다. 새 안경으로.
안경이란 무엇인가. 보는 도구다. 동시에 보이는 도구다. 안경을 쓴 사람은 세상을 보지만, 세상은 그 사람의 안경을 본다. 이 영화의 제작진은 소품 안경알에 반사를 막는 처리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마일리가 엿보는 사람이라는 걸 강조하려고. 그러니까 우리는 자주 스마일리의 눈이 아니라 스마일리의 안경알에 비친 것을 본다. 보는 사람의 눈을 가리는 안경. 고상하게 말하면 관찰자의 익명성이고, 비루하게 말하면 선글라스 끼고 남의 집 창문 들여다보는 아저씨다.
영화는 사람을 자주 문틈과 창문 너머로 찍는다. 담배 연기와 빗줄기 너머로, 아니면 제삼자를 화면 안에 세워 두고 찍는다. 누가 누구를 보는지가 이 영화의 전부다. 두더지란 결국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모두를 보는 사람이다. 스마일리가 두더지를 잡는 방법도 같다. 서커스 밖 호텔 방에 자리를 잡고, 안에서 몰래 빼낸 서류를 밖에서 읽는다. 이기는 쪽은 더 잘 보는 쪽이 아니라 덜 보이는 쪽이다.
이 영화에서 안경 다음으로 자주 나오는 것은 망보는 사람이다. 부다페스트에서 총에 맞고 돌아온 짐 프리도는 시골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데, 반에서 제일 풀 죽은 아이 하나를 골라 망보기로 삼는다. 남들이 안 보는 아이가 남들을 제일 잘 본다. 프리도는 그걸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 아이를 고른다. 나는 학창 시절에 그 아이 쪽이었다. 망보기로 뽑힌 적은 없다. 뽑힐 만큼 눈에 띄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그때 교실에서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을 뿐이다.
여기서 권력 이야기를 해야겠다. 서커스의 윗사람들은 회의실에 앉아 있다. 주황색 방음재가 벽을 덮은 방이다.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만들어진 방이고, 그 방에 앉는 것이 곧 권력이다. 스마일리는 잘린 뒤 그 방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안경을 새로 맞춘다.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밖에서 더 잘 봐야 하니까. 이렇게 쓰면 그럴듯한데, 사실 영화는 이런 설명을 한 줄도 하지 않는다. 남자가 시력 검사를 받는다. 그게 전부다. 설명이 없어서 내가 설명을 지어 붙이는 중이라는 것을 독자는 알아 두시면 좋겠다.
영화에서 그가 안경을 벗는 걸 처음 보는 것은 수영하는 장면이다. 물속에서는 안경이 소용없다. 거기서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늙은 남자가 차가운 물에서 헤엄치는 걸 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이 사람이 하루 중 유일하게 쉬는 시간이 저거구나 싶었다. 보는 일을 쉬는 시간. 그것도 내 해석이다. 해석이 자꾸 늘어나서 글이 안경알처럼 두꺼워진다.
그런데 안경으로도 못 보는 것이 있었다. 두더지는 스마일리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 사람이었고, 그것이 소련 쪽에서 내린 지시였다는 게 나중에 드러난다. 스마일리의 판단을 흐리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좋은 안경도 보고 싶지 않은 쪽은 비춰 주지 않는다. 아니, 거꾸로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쪽을 너무 오래 봤다. 아내 곁에 있던 남자를 제대로 보지 않으려고 안경을 바꿨는지도 모른다. 이 문장은 지워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남겨 둔다.
마지막 장면. 스마일리가 서커스로 돌아와 컨트롤이 앉았던 자리에 앉는다. 프랑스 노래가 흐른다. 밖에서 보던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는 것. 이 영화에서 권력이란 그 자리의 이름이다. 그렇다. 안경을 새로 맞춘 남자는 결국 남들이 자기를 볼 수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거기서 무엇을 볼지는 영화가 끝나서 알 수 없다.
영화를 다 보고 나는 내 안경을 벗어 닦았다. 렌즈에 지문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 상태로 두 시간을 봤다는 뜻이다.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면, 남자는 시력 검사 기계 앞에 앉아 말이 없다. 무엇을 보려고 새 안경이 필요했는지 영화는 끝까지 말해 주지 않는다. 나는 그가 보려던 것이 두더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고 쓰고 싶지만, 그건 너무 그럴듯해서 믿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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