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0
동쪽의 에덴 극장판 - 파라다이스 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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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댄 사람이 택시를 몰더라
백억 엔. 이 영화가 처음부터 던지는 숫자예요. 누가 갑자기 백억 엔을 주면서 이 나라를 좋게 만들어 보라고 하면 뭘 하겠느냐고. 열두 명이 그 돈을 받아서 게임을 하는 게 이 시리즈의 뼈대고, 이번 극장판은 그 게임을 끝내는 마지막 편이에요.
나한테 백억 엔 주면요. 글쎄, 일단 빚부터 갚고 남는 걸로 뭘 할지 생각하겠죠. 나라 걱정은 그다음이고. 그런 사람 눈으로 봤다는 걸 먼저 말해 두고 시작할게요.
앞 얘기를 모르면 못 따라가요. TV 시리즈가 있고, 극장판 1편이 있고, 이게 2편이에요. 한 리뷰는 이 두 극장판이 시리즈를 안 본 사람한테는 아예 닫혀 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글은 앞을 본 사람 기준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트럭이에요.
주이스라는 게 있어요. 세레손들이 전화를 걸면 뭐든 들어주는 목소리인데, 알고 보니 큰 컴퓨터 열두 대고, 그게 트럭에 실려 돌아다닌다는 거예요. 1번 세레손 모노노베가 그 트럭들을 미사일로 부수고 다니고, 주인공 타키자와는 자기 담당 컴퓨터가 실린 트럭을 지키려고 감시를 따돌리고 나가서 그 트럭을 직접 몰고 달아나요.
여기가 그럴듯했어요. 지켜야 할 게 있으면 결국 누가 운전대를 잡아야 하잖아요. 돈이 백억이 있어도 그 돈이 트럭을 몰아 주진 않거든. 리뷰 하나는 주인공이 자기 주이스를 직접 납치해서 둘이 붙어 다니는 대목이 재미있다고 썼는데, 나도 그 대목이 제일 살아 있더라고요.
그럴듯하지 않은 데도 바로 여기 있어요. 이 사람은 테러리스트로 쫓기는 몸이에요. 공안이 공항에서부터 따라붙어요. 그런데 큰 트럭을 몰고 도쿄를 돌아다니는데 경찰이 제대로 안 잡아요. 한 리뷰는 사람이 여럿 죽은 테러를 두고 당국이 자백한 범인을 거의 쫓지 않는다고 꼬집었는데, 트럭 운전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래요. 저 덩치가 도로에서 안 보일 리가 없거든.
두 번째는 술집이에요.
타키자와가 전 총리의 숨겨 둔 아들이라는 소문이 도는데, 사키와 오스기가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요. 아야라는 사람이고 술집을 하고 있어요. 전 총리와 옛날에 인연이 있었다는 건 인정하는데, 네 어머니가 맞다고는 끝까지 안 해 줘요.
리뷰들은 이 대목이 늘어진다고 해요. 사키가 이미 다 아는 얘기를 자꾸 확인해 달라고 매달린다고. 그 말도 맞아요. 그런데 나는 다르게 봤어요. 손님 받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가게에 찾아온 애들한테 옛날 일을 어디까지 말해 주겠어요. 입이 무거운 게 그 일의 기본이잖아요. 말 안 해 주는 게 그 사람 일이었던 거예요. 영화가 그걸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세 번째는 방 안에서 하는 일이에요.
동쪽의 에덴은 원래 사키 친구들이 만든 화상 검색 동아리였고, 전작에서 그게 회사가 됐어요. 이번 편에서는 방 밖으로 안 나오던 멤버가 전화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요. 이름이 에어십인데, 타키자와는 그걸로 일본 사람 전부의 휴대폰에 연설을 밀어 넣어요. 테러리스트 행세를 하면서 나라를 고치자고 하고, 받는 사람마다 1엔씩 보내요.
1엔. 백억 엔 받은 사람이 1엔씩 나눠 줘요. 나는 이게 이 영화에서 제일 솔직한 돈 얘기라고 봤어요. 백억을 전 국민한테 나누면 한 사람 몫은 동전 하나예요. 나라 고치는 데 돈이 얼마나 안 되는지, 아니면 돈으로는 안 된다는 건지, 둘 중 하나겠죠.
그동안 다른 멤버들은 검색으로 뒤를 받치고 경찰 눈을 피해 다녀요. 한 리뷰는 이 조연들 몫이 너무 커져서 마지막이 어수선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일하는 사람 눈으로는 이게 제일 그럴듯해요. 세상 바꾼다는 일도 결국 누가 방에서 코드를 짜고 누가 검색창에 글자를 넣어야 돌아가요. 멋있는 사람은 연설을 하고, 일은 방 안에서 돼요. 일은 일이다, 이거예요.
그리고 택시.
이 게임에 돈을 댄 사람이 미스터 아웃사이드예요. 죽은 줄 알았던 아토 사이조라는 노인이고, 히라사와가 찾아내요. 그 사람이 뭘 하고 있었냐면 택시를 몰고 있어요. 한 리뷰는 그게 실망스러웠대요. 게임을 짠 거물이 늙은 택시 기사라니 김이 샜다고.
나는 반대였어요. 백억 엔을 열두 명한테 나눠 준 사람이 자기는 택시 운전으로 먹고산다는 게, 이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설정이었어요. 손님 태우고 다니면 사람이 뭘 원하는지 하루 종일 듣게 되잖아요. 나라를 고칠 사람을 고르려면 그만한 자리가 없죠.
끝은 이래요. 아웃사이드는 승자가 뻔히 보이는데 무승부라고 해요. 세레손들 기억을 전화기로 싹 지워요. 타키자와만 안 지워져요. 유전자 검사는 전 총리와 관계없다고 나오고, 타키자와는 사키한테 입을 맞추고 다시 온다고 약속하고 또 떠나요. 사키 목소리로,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 못 만났다고 해요. 에덴은 일을 멈추고 니트들 돕는 쪽으로 돌아섰다는 식으로 짧게 정리되고요.
그런데 자막 다 올라간 뒤에 한 장면이 더 있어요. 타키자와가 아웃사이드를 찾아내서 슬리퍼로 한 대 때리고, 그 택시에 타요.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면서.
리뷰들은 이 결말을 두고 많이 갈려요. 김빠진다, 수습만 했다, 그래도 이 시리즈다운 끝이다. 나는 결말이 좋았다 나빴다 말할 재주가 없어요. 다만 마지막에 남은 그림이 택시 한 대라는 건 기억에 남아요. 백억 엔으로 시작해서 택시 요금으로 끝나는 영화예요.
볼까 말까는, 앞을 다 본 사람이면 보세요. 안 본 사람은 TV부터예요.
그래서 백억 엔으로 나라가 좋아졌느냐고 물으면, 나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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