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2
다크 섀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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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연 것은 도굴꾼이 아니라 굴착기였다
1,225회. 이 영화의 원작인 미국 낮 연속극이 1966년부터 1971년까지 방영한 횟수다. 뱀파이어와 마녀와 늑대인간과 유령이 한 저택에 같이 사는 고딕 연속극을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으로 접었으니, 관습이 어디서 접히고 어디서 삐져나왔는지 세어 보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가장 정직한 방법인 것 같다. 뱀파이어 영화가 보통 지키는 것들을 목록으로 세우고, 이 영화가 지켰는지 깼는지 비틀었는지 하나씩 표시한다.
기준이 되는 설정은 세 문장이면 된다. 1760년 메인주의 영주 바나바스 콜린스가 하녀 안젤리크의 사랑을 거절한다. 마녀였던 그녀는 그의 연인 조제트를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그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쇠사슬 감은 관에 묻는다. 1972년, 관이 열린다.
- 관을 여는 자 — 비틀었다. 이 장르에서 관은 도굴꾼이나 호기심 많은 바보가 연다. 금기를 어긴 대가가 공포의 첫 단추다. 여기서는 공사 인부들이 땅을 파다 연다. 금기를 어긴 사람이 없으니 벌받을 사람도 없고, 그래서 200년 만의 첫 흡혈은 무섭지 않고 그냥 사고처럼 지나간다. 이 선택이 영화 전체의 온도를 정한다.
-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 지켰다. 바나바스가 거울 앞에서 양치하는 장면이 있다. 거울에 그가 없다. 1972년의 욕실에 18세기 뱀파이어를 세워 놓고 가장 오래된 규칙을 가장 사소한 일상으로 확인시킨다. 이런 건 됐다.
- 최면으로 종을 만든다 — 지켰다. 저택 관리인 윌리 루미스는 바나바스와 눈을 맞추고 바로 종이 된다. 흡혈귀 소설에서 주인의 시중을 드는 미치광이 하인이 맡던 자리다. 영화는 이 자리를 충실히 채우되 그에게 아무 비극도 주지 않는다. 그는 끝까지 그냥 편리한 사람이다.
- 흡혈은 유혹의 연장이다 — 깼다. 이 영화의 바나바스는 사랑 소설을 한 권 읽고 나서 모닥불가의 히피들을 찾아가 전부 죽인다. 유혹의 단계가 없다. 흡혈이 유혹의 결과가 아니라 그냥 식사라는 것을 영화가 농담으로 인정하는 장면인데, 웃고 나면 그가 지금까지 몇 명을 죽였는지 영화가 세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 환생한 연인 — 지켰다. 가정교사 빅토리아 윈터스는 조제트와 같은 얼굴이다. 뱀파이어 영화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장치고, 영화는 이것을 의심 없이 그대로 쓴다. 문제는 그녀가 영화 중반에 거의 사라졌다가 결말에 필요할 때 돌아온다는 점이다. 관습은 지켰는데 분량은 안 줬다.
- 숙적은 마법으로 싸운다 — 비틀었다. 안젤리크는 200년 동안 모습을 바꿔 가며 수산물 회사를 키웠다. 콜린스 가문의 어업을 무너뜨린 것은 저주가 아니라 경쟁 회사다. 마녀가 자본가가 됐다는 설정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착상이고, 가장 덜 쓰인 착상이다. 가문이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옛 노래 한 곡에 맞춘 몽타주 하나로 끝난다.
- 인간으로 돌아가는 치료 — 비틀었다. 저택에 상주하는 정신과 의사 호프만이 수혈로 그를 인간으로 되돌려 주겠다고 한다. 뱀파이어가 저주를 풀려 애쓰는 이야기는 이 장르의 단골인데, 여기서는 치료하는 쪽이 환자의 피를 자기 몸에 넣고 있었다. 치료자가 환자가 되려 한다는 뒤집기는 좋다. 다만 영화는 이 발견을 한 장면 안에서 처리하고 그녀를 바다에 버린다.
- 저택에는 비밀이 하나씩 있다 — 지켰다, 너무 많이. 사촌 캐롤린은 늑대인간이고, 소년 데이비드가 본다는 유령은 진짜다. 둘 다 마지막 싸움에서 한꺼번에 공개된다. 원작이 연속극이었으니 비밀이 많은 것은 당연한데, 연속극은 비밀을 한 주에 하나씩 꺼낸다. 영화는 마지막 십 분에 다 꺼낸다.
- 마을 사람들이 몰려온다 — 지켰다. 안젤리크는 바나바스의 살인 고백을 녹음해 마을 사람들 앞에서 튼다. 사람들이 저택으로 몰려온다. 괴물 영화의 오래된 장면이고, 영화는 이것을 생략하지 않는다. 마녀가 마법 대신 녹음기를 쓴다는 점이 이 영화식 변주다.
- 뱀파이어의 최후 — 깼다. 이 장르의 결말은 둘 중 하나다. 뱀파이어가 죽거나, 인간이 된다. 이 영화는 셋째 길로 간다. 빅토리아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바나바스가 따라 뛰어 그녀를 물고, 그녀는 조제트라는 이름으로 깨어난다. 뱀파이어가 하나에서 둘이 된다. 영화는 이것을 해피엔딩으로 찍는다.
열 개 중 지킨 것 다섯, 비튼 것 셋, 깬 것 둘. 숫자만 보면 균형 잡힌 변주처럼 보인다. 그런데 비틀고 깬 항목을 다시 보면 공통점이 있다. 전부 농담 쪽으로 비틀었다. 관을 여는 자는 농담이 되고, 흡혈은 농담이 되고, 자본가 마녀는 농담이 되고, 결말마저 농담이 된다. 이 장르의 관습은 원래 두려움을 만들기 위한 장치인데, 두려움을 하나씩 빼고 그 자리에 웃음을 넣으면 남는 것은 관습의 껍데기다. 껍데기는 예쁘다. 저택과 의상과 음악은 됐다. 속은 모자라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이 영화가 가장 충실하게 지킨 관습은 뱀파이어 쪽이 아니라 연속극 쪽이다. 인물이 너무 많고, 각자 비밀이 하나씩 있고, 그 비밀이 적당한 때에 터지고, 터진 뒤에는 아무도 그 일을 다시 꺼내지 않는다. 1,225회짜리 이야기의 리듬이다. 두 시간에 그 리듬을 넣으니 모든 인물이 조금씩 나오다 만 사람처럼 보인다. 원작 연속극의 배우 네 명이 무도회 손님으로 잠깐 지나가는데, 영화 속 인물 대부분이 그 손님들과 비슷한 처지다.
그래서 이 장르 팬은, 관습이 어디서 접혔는지 세어 보는 재미로 볼 수 있다. 세는 동안은 지루하지 않다. 아닌 사람은, 1972년 거실에 떨어진 18세기 남자의 코미디로 보면 되는데, 그 코미디는 중반 이후 연료가 떨어진다. 어느 쪽이든 한 번은 된다. 두 번은 모르겠다.
(덧) 무도회에 본인 역으로 나와 노래하는 록 가수를 보고 바나바스는 자기가 본 가장 못생긴 여자라고 말한다. 이 영화의 농담 중 가장 오래된 종류의 농담이고, 가장 잘 먹히는 농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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