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여름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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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채로 남의 셔츠를 걸친 열여덟에게

심장쫄깃러· 2026. 11. 01.· 2,714자

물에 젖은 여자아이가 남의 흰 셔츠를 걸치고 서 있습니다. 셔츠 주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 아이를 바라보고, 아이는 당황해서 시선을 떨굽니다. 「여름방학」 1회가 내놓은 첫 만남입니다. 바닷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드라마가 천천히 풀 테니 저는 여기서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 셔츠가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젖은 채로 남의 옷을 빌려 입는다는 건, 열여덟에게는 꽤 큰 일이거든요.

이 드라마는 열 회짜리이고, 지금은 두 회가 공개됐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끝까지 본 사람의 글이 아니라, 시작을 본 사람이 어떤 마음의 분께 이 시작이 닿을지 적어 보는 글입니다. 서울에서 온 열여덟 하연이 여름방학에 부모님을 따라 우포리라는 시골 마을에 내려가고, 거기서 종갓집 종손 유겸을 만납니다. 유겸에게는 오래 사귄 새령이 있고요. 두 회 동안 일어난 일은 그게 거의 전부인데, 그 안에 마음이 세 개나 들어 있습니다.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은 분께

하연은 친구 관계도 가족 관계도 힘든 아이로 소개됩니다. 자기 현실이 못마땅해서 영화 주인공 같은 극적인 운명을 상상하고, 언젠가 백마 탄 왕자나 부잣집 친엄마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아이라고요. 1회 제목이 「김하연B」입니다. 저는 그 B라는 글자가 조금 아팠어요. 자기를 A가 아니라 B라고 느끼는 마음, 어디에 가도 두 번째 자리 같은 마음이요.

그런 아이가 아버지 출장을 따라 낯선 마을에 내려와, 바닷가에서 뜻밖의 일을 겪고, 남의 셔츠를 걸친 채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 섭니다. 지금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이 장면이 먼저 닿을 거예요. 낯선 곳에서는 이상하게도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니까, 오히려 숨이 쉬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조심하실 점도 있어요. 하연처럼 극적인 운명을 기다리는 마음이 커질수록 지금 서 있는 자리는 더 초라해 보입니다. 드라마는 그 아이에게 정말로 극적인 일을 줍니다만, 우리 여름에는 그런 일이 잘 오지 않아요. 그러니 이 드라마를 보시되, 하연의 기대를 내 기대로 가져오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남들 보기엔 다 가진 것 같은데 답답한 분께

유겸은 우포리 지주의 아들이고 종갓집 종손입니다. 수영에 재능이 있다고 하고요. 그런데 그 집에는 에어컨도 스마트폰도 없습니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무미건조하게 하루를 보내는 소년이라고 드라마는 설명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특별한 자리에 있는데 정작 본인은 갇혀 있는 분, 주변에 꼭 한 분씩 계시지요.

여름방학 포스터

2회에서 유겸은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하연이 보충수업을 들으러 우포고에 갔다가 유겸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그에게 이미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화를 냅니다. 당연한 화예요. 그런데 유겸은 사과하고 물러나는 대신 계속 만나자고 제안합니다. 이분이 이상해서가 아니에요. 저는 아마, 처음으로 내일이 궁금해진 사람의 행동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에어컨도 스마트폰도 없는 집에서 정해진 하루를 반복하던 사람에게, 바닷가에서 만난 낯선 아이는 유일하게 예측이 안 되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그래도 짚을 건 짚겠습니다.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새령이라는 사람이 있는 채로 다른 아이에게 계속 만나자고 하는 건, 하연에게도 새령에게도 공평하지 않은 일이에요. 답답한 분께 이 드라마가 닿는 지점은 유겸의 탈출이 아니라, 탈출이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는 걸 보여 주는 자리일 겁니다.

오래 사귄 사람이 흔들리는 걸 보고 계신 분께

새령은 두 회 동안 가장 적게 나오고 가장 세게 움직이는 분입니다. 유겸과 하연이 또 한 번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고, 늦은 밤에 하연을 찾아갑니다. 밤에 찾아간다는 것, 그건 낮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는 뜻이지요.

예고편에서 새령은 하연에게 「난 오늘 널 죽여버리려고 해」라고 말하고, 「조유겸을 뺏어와야지, 너한테서 무조건」이라고도 말합니다. 유겸은 하연에게 「성새령을 조심해」라고 경고하고요. 이 말들이 본편 어디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저는 이분을 악역으로만 보고 싶지 않아요. 오래 사귄 사람이 낯선 아이 앞에서 생기를 띠는 걸 보는 일은, 열여덟이 아니라 쉰여덟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비슷한 자리에 계신 분이라면, 새령의 밤길이 어디로 가는지 보시면서 내 밤길도 한 번 돌아봐 주셨으면 해요. 찾아가서 하려던 말이 상대를 위한 말인지, 나를 위한 말인지요. 조심하실 점은, 예고편의 거친 말을 그대로 내 마음의 말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보지 않는 편이 나은 분

지금 막 누군가에게서 두 번째가 된 느낌으로 아픈 분이라면, 이번 주는 건너뛰셔도 됩니다. 2회에서 하연이 여자친구의 존재를 알게 되는 장면, 그리고 새령이 밤에 찾아오는 장면은 그 아픔을 바로 건드립니다. 2회 제목이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예요.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내려앉는 분이라면, 조금 괜찮아진 다음에 보셔도 늦지 않습니다. 열 회니까요.

그런데요, 이 드라마가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이야기라고 스스로 말하는 걸 저는 믿어 보려고 합니다. 1회에서 두 사람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만 하고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보여 주지 않았어요. 하연이 유겸을 구하려고 자신을 내던지고, 유겸도 하연이 자기를 구해 줄 거라고 믿는 이야기라고 만든 분들은 소개합니다. 서로를 구한다는 말이 두 회 안에서는 아직 셔츠 한 장만큼만 나왔습니다.

그래서 드릴 말씀은 하나예요. 지금 내 곁에 젖은 채로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영문을 몰라도 셔츠부터 건네 주는 것. 그걸로 충분한 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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