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0
와호장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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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를 세어 봤다
결론부터. 이 영화는 무협이 보통 하는 일을 거의 다 한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한 가지를 안 한다. 그 한 가지가 뭔지 말하려고 나머지를 먼저 센다.
틀. 2000년, 청나라 건륭 연간, 사백 년 된 검 한 자루, 두 시간. 무당파의 고수가 검을 내려놓으려 하고, 검을 내려놓자마자 도둑맞고, 도둑이 누구인지는 금방 밝혀지고, 그다음은 도둑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설정만 보면 이 장르가 백 번은 간 길이다. 그래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항목마다 지켰는지, 비틀었는지, 깼는지 적는다.
- 보검 쟁탈 · 지킴. 청명검은 은퇴 선물로 북경의 어르신 댁에 보내지고, 도착한 첫날 밤 사라진다. 검이 움직여야 이야기가 움직이는 건 이 장르의 기본이고, 영화는 기본을 거르지 않는다.
- 스승의 원수 · 지킴. 스승을 독으로 죽인 푸른여우가 원수다. 끝에서 갚는다. 갚는 값이 자기 목숨이라는 것까지 관습 그대로다.
- 비급 · 비틂. 여우는 무당의 비급을 훔쳤지만 그림만 읽을 수 있었고, 글은 제자가 읽었다. 제자가 스승을 넘어선 이유가 문해력이다. 이 장르에서 비급은 보통 신비인데 여기서는 독해 문제다.
- 경공과 지붕 · 지킴. 도난 당일 밤 지붕 위 추격. 수련이 끝까지 붙지만 놓친다. 컴퓨터는 와이어를 지우는 데만 썼다는 제작진 말이 있고, 화면은 그 말대로 보인다.
- 주막 난투 · 지킴. 검을 든 아가씨가 주막의 무사들을 전부 눕힌다. 상대가 많을수록 더 쉽게 넘어가는 것도 관습이다.
- 은퇴하려는 고수의 마지막 임무 · 비틂. 보통은 득도한 고수가 마지막 한 번 칼을 든다. 여기서는 명상에서 깨달음 대신 끝없는 슬픔이 밀려왔다고 말하는 고수가 칼을 내려놓으려 한다. 은퇴 사유가 성취가 아니라 공허다. 이게 영화 전체의 온도를 정한다.
- 사제 결연 · 깸. 대나무 위에서 그가 제안한다. 세 수 안에 검을 뺏으면 제자가 되라고. 한 수에 뺏는다. 그녀는 약속을 안 지킨다. 무릎 꿇는 제자가 없는 무협은 드물고, 이 영화에는 끝까지 없다.
- 무기 부수기 · 지킴. 수련과의 결투에서 수련이 드는 무기가 청명검에 차례로 부러진다. 그리고 부러진 칼로 이긴다. 이 장르가 좋아하는 역전의 꼴 그대로다.
- 독 · 지킴. 여우의 동굴, 독침. 그는 다 막고 하나를 못 막는다. 제자가 해독제를 알지만 만드는 데 시간이 모자란다. 비열한 쪽이 독을 쓴다는 규칙도, 독은 늘 한 발 늦게 풀린다는 규칙도 지켰다.
- 악역의 마지막 한마디 · 비틂. 여우가 죽으며 말하는 유일한 원수는 눈앞의 남자가 아니라 자기 제자다. 무당이 여자를 안 가르쳐서 생긴 원한이 끝에 가서 향하는 데가 자기가 키운 여자라는 건, 이 장르의 복수 구조를 안쪽으로 접은 것이다.
- 임종의 말 · 비틂. 무당파라면 마지막 숨으로 명상에 들어가야 한다. 그는 그 숨을 사랑 고백에 쓴다. 인생을 낭비했다고 말하고 죽는다. 장르가 고수에게 주는 마지막 품위를 버리고 보통 사람의 후회를 집었다.
- 결말의 비상 · 열어 둠. 소원을 빌고 산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살아서 날아갔다는 전설을 사막에서 들었고, 끝에서 그대로 한다. 영화는 날았는지 떨어졌는지 보여 주지 않는다.
세어 보면 지킨 것 여섯, 비튼 것 넷, 깬 것 하나, 열어 둔 것 하나. 지킨 쪽이 많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협으로 보인다. 그런데 비튼 넷이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깨달음 대신 슬픔, 신비 대신 독해, 복수 대신 자기 제자, 득도 대신 고백. 장르가 사람 위에 두는 것들을 하나씩 사람 아래로 내린다.
그래서 안 한 한 가지. 이 장르는 끝에 고수가 올라간다. 득도든 승천이든 은퇴든, 위로 간다. 이 영화에서 위로 가는 건 아가씨 하나고, 그마저 올라간 건지 떨어진 건지 안 알려 준다. 고수는 땅에서 죽었다. 올라가는 자리를 비워 둔 무협. 그게 이 영화가 안 한 일이고, 그걸 안 해서 이 영화가 남았다.
수련이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남기는 말이 있다. 어떻게 살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라는 약속 하나. 칼을 목에 댔다가 멈춘 다음에 하는 말이다. 이 장르에서 칼을 멈추는 쪽은 대개 남자 고수고 멈추는 이유는 자비다. 여기서는 여자고, 이유는 자비라기보다 자기가 못 한 일을 남에게 맡기는 것에 가깝다. 됐다. 이 장면은 됐다.
그래서 이 장르 팬은, 지킨 여섯 개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지붕, 주막, 대나무, 부러지는 무기. 다 있다. 아닌 사람은, 비튼 넷만 보면 된다. 무협을 몰라도 슬픔과 후회는 안다. 다만 한 가지는 미리 말해 둔다. 두 시간 동안 아무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한다. 그걸 못 견디는 분은 다른 영화가 낫다.
(덧)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주연 넷의 표준 중국어 억양이 전부 다르다는 기록이 있다. 첫 촬영일에 한 배우가 발음 때문에 스물여덟 번을 다시 찍었다는 말도. 화면에서 그게 보이진 않는다. 보이지 않게 만든 비용이 그만큼이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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