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드래곤볼 슈퍼: 비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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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에서 멈췄다가 다시 틀었다

삐뚜름관람· 2026. 11. 03.· 2,540자

고백부터 한다. 나는 드래곤볼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이 초사이어인이 어쩌고 할 때 아는 척 고개만 끄덕였고, 그 거짓말을 이십 년 넘게 유지했다. 들킬까 봐 관련 영상은 피해 다녔다. 그러다 이번 가을에 새로 시작한 「드래곤볼 슈퍼: 비루스」를 1화부터 봤다. 입문자 눈높이에서 적는다. 아는 분들은 틀린 데를 보고 웃어도 된다.

몰랐던 것

제목부터 몰랐다. 비루스가 사람 이름인지 병 이름인지. 파괴신이라는 직함도 몰랐고, 계왕과 계왕신이 다른 직급이라는 것도 몰랐다. 1화에서 어떤 존재가 긴 잠에서 깨어나 행성 두 개를 부수며 별 사이를 건너오는데, 그걸 보면서도 저게 악역인지 상사인지 헷갈렸다. 그리고 「마인 부우와의 싸움으로부터 몇 년」이라는 설명. 마인 부우가 누구인지 모르니 몇 년이 지났다는 말이 아무 무게가 없었다.

또 몰랐던 것. 이 작품이 신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2026년 가을에 새로 시작한 애니메이션이라고만 알고 틀었다. 보다 보니 이상하게 매끈한 데와 어딘가 예전 느낌이 남은 데가 섞여 있어서 찾아봤다.

찾아본 것

첫째, 이것은 「인핸스드판」이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2015년에 방영된 TV 시리즈 드래곤볼 슈퍼의 앞부분, 파괴신 비루스 편과 골든 프리저 편과 제6우주 편을 다시 그린 리마스터 겸 리메이크다. 그러니까 같은 이야기가 세 번째로 애니메이션이 된 셈이다. 2013년 극장판, 2015년 TV판, 그리고 이번. 팬들 사이에서는 똑같은 이야기를 세 번 본다는 피로감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는 처음이라 피로할 게 없었다. 이것이 입문자의 유일한 특권이다.

둘째, 뭐가 달라졌는지. 구판의 개그 장면이 많이 빠지고 색이 어두워졌다. 2화의 계왕성 전투는 전부 새로 그렸고, 오공이 초사이어인 3으로 변할 때 그 파장만으로 저승의 뱀의 길이 부서지는 장면이 추가됐다. 3화에서는 비루스가 부르마를 공격하는 장면이 따귀에서 밀침으로 바뀌었고, 그 뒤 베지터의 분노는 더 세졌다고 한다. 4화에는 베지터가 가족과 놀이공원에 갔던 일이 회상으로 들어갔다. 구판에서는 그게 1화의 본 이야기였다는데, 이번에는 회상 한 토막으로 접어 넣은 것이다. 어두워진 분위기에 베지터의 가족 사랑을 끼워 넣는 방식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투덜대는 남자가 가족한테만 다른 얼굴인 게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라서 그렇다.

덧붙여 어디서 보는지도 찾아봤다. 일본에서는 10월 11일부터 일요일마다 한 편씩 나오고, 한국에서는 며칠 뒤에 케이블 채널과 스트리밍에 올라온다. 10월 24일부터는 한 글로벌 애니메이션 플랫폼에도 들어왔다. 나는 한 주 늦게 따라가는 쪽이었는데, 그 며칠이 꽤 길었다. 모르는 척하던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랬다.

셋째, 성우. 손오공과 손오반을 한 사람이 연기한다. 자막을 보고 처음 알았다. 아버지 오공과 아들 오반이 같은 목소리라는 걸 알고 나서 다시 들으니 정말 같은 사람이었다. 부우 역할은 예전 녹음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이건 몰라도 되는 정보지만, 알고 나면 1화의 평화로운 장면들이 좀 다르게 들린다.

드래곤볼 슈퍼: 비루스 포스터

그래서

몰라도 되는 것과 알아야 더 좋은 것을 나눠 본다. 몰라도 되는 것: 구판과 뭐가 달라졌는지, 성우가 누구인지, 극장판이 따로 있다는 것. 입문자는 이걸 모르고 봐도 1화에서 4화까지 막히는 데가 없다. 알아야 더 좋은 것: 베지터가 왜 비루스를 보고 얼어붙는지다. 3화에서 부르마의 생일 파티에 파괴신이 나타나자 베지터가 과거의 공포로 굳어 버린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공포를 이 사람만 알고 있다는 것이 표정으로 먼저 전해진다. 나는 이유를 몰랐고, 모르는 채로 그 얼굴을 오래 봤다. 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베지터의 표정을 더 오래 보게 된다.

입문자가 막히는 장면도 있었다. 가위바위보다. 지구의 운명이 걸린 긴장 속에서 갑자기 가위바위보 대결이 나온다. 앞 장면들이 워낙 어두워져서 이 대목의 온도 차가 심하다는 지적이 팬들 사이에서도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재생을 멈췄다. 이게 뭔가 싶어서. 넘기는 법은 하나였다. 이 시리즈가 원래 그런 농담을 하던 만화였고, 이번 판은 그 농담을 많이 걷어 냈는데 이 장면은 남겨 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틀었다. 좀 그랬다. 하지만 넘어갔다.

4화에서 초사이어인 갓이 나온다. 이 변신이 이 편의 핵심이라는 건 입문자도 안다. 1화부터 그 이름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비루스는 잠꼬대로 그 이름을 중얼거리며 깨어나고, 그걸 찾겠다고 별을 건너온다. 4화에서 그게 나왔을 때 나는 솔직히 얄미웠다. 이십 년 넘게 아는 척만 하던 사람에게 이렇게 쉽게 핵심을 보여 주는 게 어딘가 억울하기도 했다. 오래 기다린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게 맞다. 그래도 나는 덤으로 봤다.

다음에 볼 것을 하나만 추천하라면, 이 시리즈를 그냥 계속 보는 것이다. 비루스 편이 끝나면 같은 작품 안에서 골든 프리저 편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프리저가 누구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1화에서 「프리저를 쓰러뜨린 사이어인」이라는 말로만 들었다. 그 이름이 다시 나올 때쯤이면 나도 아는 척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베지터 씨, 다음 편에선 얼어붙지 말고 한 대 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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