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여전히 찬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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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은 친구와 노래자랑에 나가는 법
설정은 세 문장이면 된다. 1942년 경북 산골, 노래 잘하는 열일곱 정임과 그 옆에서 박수 치는 순옥이 서울에 가서 가수와 단장이 되자고 약속한다. 마을에는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며 소녀들을 데려간다는 소문이 돌고, 두 소녀는 마을 화장막에 숨는다. 그리고 60년 뒤라는 현재, 노년의 순옥이 오래 찾던 정임을 다시 만나 어릴 적 꿈이던 노래자랑에 나가려는데, 정임이 순옥의 이름부터 잊어 간다.
송일곤이 연출했고 이혜숙이 극본을 썼다. 희곡과 낭독극으로 먼저 있던 짧은 대본이 바탕이다. 김혜자가 노년 순옥, 차미경이 노년 정임, 박서경과 최주은이 열일곱의 순옥과 정임, 문성현이 소년 두영, 조성하가 이장 곽씨, 이세영이 손녀 지안이다. 118분, 12세 이상 관람가, 2026년 10월 21일 개봉.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걸렸다.
할 수 있었던 것
이 설정으로 영화가 보통 가는 길은 둘이다.
하나는 노년의 소원 성취 이야기다. 늙은 두 친구가 서울로 올라가고, 길에서 사고가 나고, 무대 뒤에서 한 사람이 가사를 잊고, 그래도 마지막에는 둘이 노래를 끝까지 부른다. 객석이 울고 자막이 올라간다. 이 길의 장점은 확실하다. 무대가 있고 노래가 있으니 결말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잊는 사람과 기억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한 사람이 조금씩 지워지고 다른 한 사람이 그 옆에서 옛 이야기를 꺼내 붙든다. 내가 누구냐고 묻는 장면이 몇 번 반복되고, 기억이 돌아오는 순간이 한 번 선물처럼 주어진다. 이 길은 눈물의 양이 정해져 있어서 안전하다.
두 길 다 1942년을 과거 회상으로만 쓴다. 소녀들의 시간은 현재의 눈물을 위해 소환되는 자료다.
한 것
영화는 두 길에 다 발을 올려 두고 간다. 노년의 순옥과 정임이 서울 노래자랑에서 「이태리의 정원」을 부르려고 준비하고, 정임은 전화를 받다가 다 기억이 난 모양이라고 당황한다. 순옥은 만나면 꼭 사과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첫 번째 길과 두 번째 길을 섞은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선택은 다른 데 있다. 노년 장면의 연도가 1991년이고, 그 1991년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 정임은 일본군에 끌려가 돌아오지 않았다. 노래자랑을 준비하는 1991년은 2010년에 여든다섯이 된 순옥이 치매 속에서 그리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기억을 잃어 가는 건 정임이 아니라 순옥이고, 영화 속에서 「그런데 왜 나만 끌려 갔노」라고 묻는 정임의 목소리는 순옥이 자기에게 하는 질문이다. 이건 내 해석이 아니라 영화가 후반에 직접 보여 주는 구조다. 1991년이 위안부 피해자가 처음으로 공개 증언에 나선 해라는 사실은 영화를 읽는 데 보태 둘 만하다.
결과 장면 하나. 노년의 순옥이 손녀 지안에게 열일곱 정임이가 너무 아깝다고 말하고, 「내가 가면 내 친구 기억할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라고 덧붙인다. 노래자랑 무대 대신 영화가 내놓는 결말은 이 두 마디다. 첫 번째 길의 무대가 끝내 없다는 걸 확인하는 장면이고, 그 자리에 무대보다 작은 것을 놓는다. 영화 말미에 다른 시간대의 두 사람이 한 화면에 포개지는데, 그게 무대의 대용이다.
결과 장면 둘. 1942년의 비중이다. 영화는 끌려간 뒤의 일을 화면에 올리지 않는다. 산등성이에서 「이태리의 정원」을 부르는 정임과 박수 치는 순옥, 서로의 팔에 증표를 새기고 「이제 우리 몸에 새겼으니까는 우리는 항시 함께 있는기다」라고 말하는 장면, 화장막에 숨어 두영에게 한글을 배우는 날들, 솔방울로 엮은 화관을 쓰고 두영을 바라보는 장면. 이장 곽씨가 군인들을 데리고 정임이 누나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외치며 찾아다니는 장면이 위협의 거의 전부다. 소녀들의 시간을 회상 자료가 아니라 본편으로 쓴 것이다. 비극은 관객이 아는 것으로 처리하고, 화면은 그 전의 날들에 준다. 이 처리는 됐다. 소녀 정임을 맡은 배우의 노래를 지리산 시냇가에서 밤에 현장 녹음해 그대로 썼다는데, 엔딩 크레딧에 정임이 달빛 아래 노래하며 웃는 장면을 붙인 것까지 같은 선택의 연장이다.
아깝게 버린 것
하나 적어 둔다. 순옥은 마을의 변고 뒤에 예기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한 여자는 끌려가지 않았다는 사정이 거기 깔려 있고, 왜 나만 끌려갔느냐는 물음과 꼭 사과하고 싶었다는 말이 거기서 나온다. 그런데 그 결혼과 2010년의 여든다섯 사이, 순옥이 살아 낸 68년은 영화에 거의 없다. 손녀가 있으니 가족이 있었을 텐데, 그 세월 동안 순옥이 어떻게 정임을 붙들고 있었는지, 왜 1991년이라는 해에 시간을 멈췼는지는 관객이 영화 밖의 연도표를 보고 채워야 한다. 상상 속 1991년을 만들 만큼 공을 들였다면, 그 상상이 어디서 자라났는지 한 장면쯤 보여 줄 수 있었다. 아마 118분 안에서 소녀들의 날을 줄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선택을 이해하지만 비어 있는 건 비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노래자랑 이야기로 보면 모자라고, 기억을 잃는 친구 이야기로 보면 그 친구가 처음부터 없었으니 성립하지 않는다. 남는 건 돌아오지 않은 친구를 혼자 60년 넘게 기억한 사람의 이야기이고, 그 틀에서는 충분하다. 감독이 주연 배우에게 보낸 편지에 순옥은 울지 않는 사람이라고 적었다는데, 그 한 줄이 이 영화가 고른 길의 요약이다. 울 자리에 노래를 놓는다.
(덧) 소개 글은 60년 만의 재회라고 한다. 영화의 연도대로 세면 1942년에서 1991년은 49년이고, 2010년까지는 68년이다. 60은 어느 쪽에서 세도 안 나온다. 홍보 문구의 어림이거나 내가 연도를 잘못 옮겼을 것이다. 결론에는 영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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