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사랑의 하츄핑: 고래보석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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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한 곳에 몰아 두면 다른 곳에서 샌다

고요한땀· 2026. 10. 26.· 2,899자

결론부터 쓴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많이 웃은 장면은 웃기려고 만든 장면이 아니었다. 웃기려고 만든 장면은 따로 있다. 바다소년 카이트와 해적 부하 둘이 맡는다. 셋은 성실하게 넘어지고 소리 지르고 서로를 탓한다. 나는 거기서 예의상 웃었다. 진심으로 웃은 곳은 영화가 가장 정색한 자리들이었다.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왜 그랬는지 적어 두려 한다. 변명이 길어지면 보통 반성문이 되는데, 이 글은 끝까지 변명이다.

줄거리를 아는 만큼 적는다. 2026년 8월 5일에 개봉한 105분짜리 애니메이션이다. 2년 전 영화에서 로미와 하츄핑이 처음 만났고, 이번에는 로미와 엄마 벨리타 왕비의 이야기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두고 모녀가 매일 다툰다. 어느 날 바다에서 올라온 거대한 푸른 용 레비어스가 왕국을 덮치고, 왕비는 딸을 감싸다 바다로 끌려간다. 로미는 하츄핑, 카이트, 새로 만난 바다 티니핑 셋과 함께 엄마를 찾아 바다로 간다. 해적을 만나고, 잠수함을 타고, 심해의 본거지에 닿는다. 쿠키 영상은 없다고 미리 찾아보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행동 중 하나였다.

사랑의 하츄핑: 고래보석의 전설 스틸컷
  1. 해적이 자기 배를 터뜨린다. 아히죠 해적단은 레비어스를 향해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진다. 통하지 않는다. 그다음에 하는 일은 자기 배의 화약고에 불을 붙여 배를 통째로 터뜨리는 것이고, 그제야 용이 큰 피해를 입고 한동안 잠잠해진다. 나는 이 장면을 진지하게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자꾸 계산이 됐다. 총도 폭탄도 안 되는데 그 총과 폭탄을 쌓아 둔 창고가 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양이다. 이 영화의 바다에서 통하는 유일한 무기는 지금 내가 타고 있는 것이다. 웃고 나서 한 칸 생각이 간다. 그 규칙이 배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뒤에서 보여 준다. 그때는 웃지 못했다.
  2. 잠수함도 가라앉는다. 배가 터진 뒤에도 일행은 어딘가에 타고 있다. 잠수함이다. 그 잠수함도 후반에 바다로 돌아간다. 바다 티니핑 셋이 그나마 제일 바빴던 장면이 이 침몰 장면이었다는 후기를 읽었다. 어린이 영화의 탈것은 장난감과 같은 운명을 산다. 사서, 부서지고, 다음 장면에 새것이 있다. 나는 그 순환이 꽤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른 영화도 자동차를 그렇게 쓰는데, 다만 어른 영화는 그 차가 얼마짜리인지 먼저 보여 주고 부순다. 이 영화는 값을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값을 말하는 영화는 어딘가 비굴하고, 이 영화는 그 비굴을 피했다. 대신 소모를 택했다. 둘 중 하나는 택해야 했을 것이다.
  3. 용이 철학을 한다. 레비어스는 과거가 없는 존재다. 인간의 욕심과 환경 파괴에 바다가 스스로 내린 저주라고 영화는 설명한다. 그런데 이 저주가 마지막에 로미 앞에서 말을 한다. 사랑 따위로 변하는 것은 없다고. 그러고는 몇 분 뒤, 로미의 진심을 이해하고 스스로 흩어진다. 눈동자가 동그래지고, 거대한 몸이 물고기 떼로 바뀐다. 명제를 세운 쪽이 자기 몸으로 반례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이 한 장면이다. 나는 이게 웃겼고, 웃고 나서 레비어스가 꼭 틀린 것도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흩어졌다. 사랑은 사람을 고치지 않고 풀어 놓는다는 뜻이라면, 그건 어린이 영화가 하기에는 꽤 어른스러운 말이다. 영화가 그 말을 하려던 것 같지는 않다. 말이 저절로 나와 버린 쪽에 가깝다.
  4. 저주가 인질극을 한다. 레비어스가 왕비를 데려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고래보석에 선택받은 공주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다. 왕비는 딸을 향해 날아온 공격을 대신 맞아 물고기가 되고, 수정구에 담긴 채 심해에 보관된다. 바다가 내린 저주, 왕국 병사들을 한 번에 쓸어버린 힘이 하는 일이 엄마를 잡아 두고 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동네 유괴범의 계획이다. 그런데 이 계획은 성공한다. 로미는 온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모녀의 사랑에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돈을 건 존재는 사랑 따위로 변하는 것은 없다고 말한 그 용이다. 자기 말을 자기가 안 믿는 악당은 흔하지만, 자기 계획으로 자기 말을 반박하는 악당은 드물다.
  5. 엄마를 찾으러 가는 길에 파티가 있다. 해적선에서 파티가 벌어진다. 영화의 노래 중 하나가 해적들의 것이고, 제목부터 우리는 해적이다. 엄마가 물고기가 되어 심해에 갇힌 사이에 딸은 파티가 벌어지는 배에 타고 있다. 로미가 그 와중에 카이트와 친해지는 게 보기 싫었다는 후기를 여럿 읽었다. 그 불편을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순간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큰 걱정 속에서도 밥을 먹고 농담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걸 못 참는 것은 보는 쪽의 사정이다. 다만 영화가 그 정직함을 알고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노래가 필요한 자리에 노래를 넣었을 것이다. 결과가 정직했을 뿐이다.
사랑의 하츄핑: 고래보석의 전설 포스터

작품이 이 우스움을 알고 있는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자기 웃음을 전부 카이트와 해적 부하 둘에게 맡겼다. 공식 담당자가 있으면 나머지는 전부 정색을 하게 된다. 정색한 장면이 많아지면 그중 몇 개는 반드시 웃긴다. 확률의 문제고, 이 영화는 정색한 장면이 많다. 그러니 내가 웃은 것은 영화의 잘못이라기보다 영화의 분배 방식 때문이다. 웃음을 한 곳에 몰아 두면 다른 곳에서 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많이 웃었고, 마지막에는 웃지 않았다. 왕비가 딸을 위해 자기를 내놓는 장면과 그 뒤에 흐르는 노래, 그리고 바다에서 돌아온 모녀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는 웃을 데가 없었다. 옆자리의 아이가 울면서 엄마를 안았다는 후기를 읽었다. 그 아이는 이 영화의 정색을 다 믿은 사람이고, 나는 반쯤 믿은 사람이다. 반쯤 믿은 사람이 더 많이 웃는다. 그게 어른이 된다는 것의 손해인지 이득인지는 아직 계산이 안 끝났다.

추신. 쿠키 영상은 없다. 그걸 알고도 끝까지 보게 된다면 아마 노래 때문일 것이다. 엔딩 곡은 해적들의 것이다. 엄마와 딸의 영화가 해적의 노래로 끝난다. 이 영화는 끝까지 자기가 어디서 웃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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