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너 말고 다른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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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무슨 파리예요

무뚝뚝· 2026. 10. 09.· 1,495자

10년 연애 이야기라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해요. 익숙해진 사랑이 어떻고 하면서 결국 예쁜 그림만 보여주거든. 설레다가 흔들리다가 다시 붙고, 뻔하잖아. 그래서 별 기대 없이 봤어요.

그런데 이 드라마가 안 하는 게 하나 있더라고요. 두 사람을 봐줄 만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쓰질 않아요. 일곱 살에 만나서 서른다섯까지 온 남녀가 있어요. 남자는 과자 회사 대리고, 여자는 영화감독인데 준비하는 작품마다 엎어져요. 거기 변호사가 하나 끼어들고, 여자는 첫눈 오던 밤에 그 사람하고 입을 맞춰요. 그걸 숨기고 울기만 하고. 그게 다예요.

너 말고 다른 연애 포스터

여자 쪽 일부터 말할게요. 영화감독이라는데 드라마가 그 직업을 멋있게 안 만들어요. 단편으로 상 좀 받았다는 사람이 지금은 찍을 작품을 못 잡고, 변호사 앞에 앉아 합의서를 받아요. 좋아하는 일 오래 하는 게 대단한 줄들 아는데, 안 되면 그냥 안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제일 피곤해 보이는 때가 영화 얘기할 때인 거, 그거 맞게 찍은 거예요.

남자 쪽은 더 그래요. 과자 만드는 회사 대리인데, 회사 로비에 사채업자가 찾아와요. 친엄마가 진 빚 3억을 갚으라고. 옆에서는 남궁호 대리 사채 썼냐고 묻고. 회사라는 데가 그래요. 사정은 안 궁금하고 소문만 궁금하거든. 돈은 남의 돈인데 얼굴은 제가 들어요.

그 와중에 남자가 파리 주재원을 알아봐요. 여자가 가보고 싶다던 도시라고. 마음은 알겠는데 파리는 무슨 파리예요. 여기서 우는 사람이 비행기 탄다고 웃나. 울면 왜 우냐고 묻는 게 먼저지. 묻기가 무서우니까 공고를 들여다보는 거예요. 그 마음은 나도 알아요.

변호사는 다르게 굴어요. "영화 관두게 해줄게요. 나랑 잠깐만 놉시다." 참 고약한 말이에요. 그런데 여자가 흔들린 건 그 남자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만두고 싶다는 걸 처음으로 알아봐서일 거예요. 응원이라는 게 사람을 못 쉬게 할 때도 있어요.

그 배우가 밥상 앞에서 우는 장면이 있어요. 차려놓은 밥이랑 메모를 보고 우는데, 서럽게 안 울어요. 예쁘게도 안 울고. 죄지은 사람 얼굴이 저렇지 싶게 울어요. 참 잘하더라고요. 남자 쪽 배우도 끝에 가서 소리를 안 질러요. 눈만 벌게져서 쳐다보고 끝나요. 저렇게 참는 연기 요새 보기 쉽지 않아요.

여섯 번째 회 끝 장면에서는 좀 웃었어요. 웃기려고 만든 게 아닌데. 그 녹음기가 원래 엄마 빚 때문에 증거 잡으라고 여자가 챙겨준 물건이거든. 그걸 트니까 두 번째 파일에서 애인 입 맞추는 소리가 나와요. 여자가 달려와 노트북을 덮는데 이미 늦었고. 사람이 그래요. 제일 챙겨준 물건한테 제일 크게 맞아요.

여자가 너무한다는 말이 많더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억울하냐 하면, 글쎄. 흔들린 게 잘못이라기보다 말을 안 한 게 잘못이지. 10년 같이 산 사람한테 판단할 기회는 줘야 하는 거잖아.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아직 안 끝난 드라마예요. 여섯 번 했나. 뒤에 둘이 어떻게 되는지 나는 몰라요. 궁금하긴 한데 맞혀 볼 생각은 없어요. 배울 것도 없고. 그냥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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