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유부녀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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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 킬러를 봤다. MBC에서 금토 밤에 하던 14부작이다. 제목만 보고는 안 볼 생각이었다. 제목이 좀 그랬다.
제목에 '유부녀'가 들어간다. 요즘 잘 안 쓰는 말이다. 쓰면 농담이 따라붙는 말이기도 하다. 원작이 같은 제목의 웹툰이라 그대로 가져온 모양이다. 보고 나면 그 촌스러운 말이 왜 그대로 붙어 있는지는 알겠다. 이 사람은 저격수이기 전에 누구의 아내이고 누구의 엄마로 먼저 불린다. 직업이 뭐든 호칭이 먼저 온다.
주인공 유보나는 두루미전자 영업3팀 부장이다. 집에는 남편과 네 살 딸이 있다. 그리고 킬러다. 코드네임은 킹피셔. 물총새처럼 높은 데서 한참 보다가 한 번에 내려꽂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법망을 빠져나간 범죄자를 저격한다. 3년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편 권태성은 기자인데, 하필 예전에 킹피셔를 쫓던 기자다. 설정이 많다. 많은데 드라마가 그 설정을 대단한 것처럼 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영업3팀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비밀 조직이라고 해 놓고 이름이 영업3팀이다. 팀장 김봉팔은 특전사 출신이고, 팀에는 해커인 대리가 있고, 작전은 팀 단위로 굴러간다. 4회에서는 장기 매매 조직을 치고, 아동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표규철을 쫓는다. 그런데 화면에 비치는 건 자꾸 회사다. 팀장이 있고, 부장이 있고, 대리가 있다. 윗선의 지시가 있고, 보고가 있고, 일정이 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도 결재선은 있다.
일하는 동안 애는 누가 보나. 이 드라마가 재밌는 건 그 질문을 농담의 재료로 쓴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제일 살벌한 직업을 가져다 놓고, 정작 일정을 흔드는 건 집 쪽이다. 기획 의도에 적힌 '워라밸'이라는 말이 농담이 되는 자리가 거기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건 둘 다 안 무너뜨리는 기술이 아니다. 둘 중에 뭘 먼저 포기할지 매일 고르는 일에 가깝다. 적어도 내가 다녀 본 회사에서는 그랬다.
내가 제일 오래 붙들린 건 복귀라는 설정이다. 3년을 쉬고 돌아온 사람이 첫 업무를 받는다. 그 첫 업무가 저격이다. 회사 다녀 본 사람은 안다. 복직한 사람에게 주는 첫 업무는 대체로 좀 과하다. 그동안 쉬었으니 할 만하지 않겠냐는 얼굴로 준다. 못 하겠다고 하면 쉰 3년이 다시 소환된다. 그래서 복직한 사람은 묻기 전에 먼저 웃는다. 자리는 그대로 있었고. (나도 그 웃음을 지어 봤다.) 이 드라마는 그 과정에 총을 쥐여 줬을 뿐이다.
기획 의도에는 '워라밸 사수기'라고 적혀 있다. 워라밸이라는 말을 기획 의도에서 보면 좀 웃기다. 회사에서 그 말을 쓰는 사람은 대개 그걸 지켜 줄 권한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 회사도 작년에 그런 문구를 붙였다. 문구는 재작년 거 복사한 거였고.
같은 소재를 요즘 예능이 다뤘다면 수순이 있다. 관찰 카메라가 새벽 다섯 시 알람부터 찍는다. 도시락을 싼다. 아이를 깨운다. 머리를 묶으면서 지하철을 탄다. 자막은 '슈퍼맘의 하루'. 스튜디오에서는 패널들이 어떻게 저렇게 하냐고 감탄한다. 중반쯤 몰래 온 손님으로 남편이 들어온다. 손편지를 읽는다. 아내가 운다. 패널도 운다. 마지막 자막은 '세상의 모든 엄마를 응원합니다'. 응원은 공짜다.
일하는 엄마를 화면에 올릴 때 방송이 가장 자주 쓰는 방법은 그 사람을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인데, 대단해지는 순간 그 사람의 하루는 제도가 감당할 문제에서 개인이 감당할 능력 문제로 조용히 옮겨 가고, 그래서 다들 감탄만 한 채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태로 방송이 끝난다. 감탄은 편하다. 감탄받은 사람만 계속 뛴다.
이 드라마는 그 방법을 다 쓰지는 않았다. 유보나는 대단하다. 저격도 하고 육탄전도 한다. 그런데 그걸 모성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애를 지키려다 보니 강해졌다는 식의 말을 시키지 않는다. 그냥 직업이다. 복귀하고, 일을 받고, 눈치를 보고, 퇴근한다. 집에서는 반찬 걱정을 한다. 이 두 가지를 같은 무게로 놓는 드라마는 생각보다 드물다.
쟁점은 친절하게도 남편의 친구 입에 넣어 뒀다. 형사 이동진은 킹피셔를 체포하려 한다. 아무리 나쁜 놈을 골라 죽여도 사적 제재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쪽이다. 드라마는 이 사람을 답답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냥 끝까지 그렇게 두고, 그 친구가 틀렸다고 말해 주지도 않는다. 통쾌하게 가고 싶었으면 얼마든지 치울 수 있는 인물인데 안 치웠다.
공효진이 보나를 하는 방식도 심심해서 좋았다. 총을 들 때와 집에 있을 때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 눈빛이 돌변한다거나 하는 장치를 안 넣었다. 둘 다 그냥 일하는 얼굴이다. 본인이 살벌한 직업을 가졌다는 걸 본인만 안 대단해한다. 남편 쪽도 비슷하다. 기자인데 특종 앞에서 번쩍이지 않는다. 피곤한 사람 둘이 각자 자기 일을 하다가 집에서 만난다. 그 피곤이 이 드라마에서 제일 그럴듯했다.
마지막 회에서 보나는 선유도에서 레일라와 맞붙다가 남편에게 정체를 들킨다. 도망치던 레일라가 남편을 향해 총을 겨누자 보나가 몸으로 막고 대신 맞는다. 수술을 받고 깨어난다. 남편은 다 알고도 같이 살자고 한다. 그런데 보나는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혼자 반년을 보낸다. 그 반년이 이 드라마에서 제일 어른스러운 대목이었다. 다 알게 됐다고 다음 날부터 괜찮아지지는 않는다.
첫눈 오는 날 남편이 산장으로 찾아온다. 어디서 태어났고 그동안 뭘 했는지는 몰라도 된다고, 앞으로 천천히 알아 가고 싶다고 한다. 보나는 돌아온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 장면은 딸 운동회다. 학부모 이어달리기가 열린다. 보나가 마지막 주자로 나가서 역전한다. 전설의 저격수가 가진 체력이 학부모 이어달리기에 쓰인다. 나는 거기서 웃었다. 웃고 나서 좀 그랬다. 그러고 전화가 온다. 보나는 "오케이 가볼까"라고 한다. 끝났는데 안 끝났다.
원작 웹툰은 아직 연재 중이라 드라마가 알아서 끝을 냈다고 한다. 알아서 낸 끝이 운동회라는 게 좀 웃기고 좀 정확했다. 결국 지켜야 하는 건 조직도 정의도 아니고 금요일 오후의 반차였다. 운동회는 회사에 말을 해야 갈 수 있다. 말을 하려면 눈치를 봐야 하고, 눈치를 보려면 평소에 일을 더 해 둬야 한다. 저격은 그 다음 문제다.
나는 운동회에 나가 본 적이 없다. 이어달리기도 없다. 내일도 그냥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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