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유부녀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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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내린 셔터에 관한 보고

예민한책장· 2026. 10. 11.· 3,324자

우리 동네 반찬가게는 오후 다섯 시 반이 되면 셔터를 반쯤 내린다. 끝까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딱 허리께까지만, 그러니까 몸을 숙이면 들어갈 수야 있지만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애매한 높이에서 정확히 멈춘다. 처음에는 재료가 떨어졌나 했다. 그 다음에는 주인 아주머니께서 어디 편찮으신가 했고, 그 다음에는 저 반쯤이라는 것이 동네 상인들 사이에만 통용되는 어떤 신호인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뻗었다. 그러나 여섯 시 십오 분쯤이면 셔터는 어김없이 다시 올라가 있고, 진열대에는 아까 없던 코다리조림이 한 통 놓여 있으며, 아주머니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깻잎을 집고 계신다. 그 사십오 분 동안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코다리는 어디에서 오는지, 애초에 셔터를 절반만 내리는 데에 업계의 어떤 규칙이 있는 것인지, 나 같은 민간인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튼.

<유부녀 킬러> 되겠다. 올여름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열네 번에 걸쳐 방송된 드라마이고, 주인공은 두루미전자 영업3팀 부장이신 유보나 씨인데, 이분께서는 네 살 난 딸과 기자인 남편을 두고 계시며, 낮에는 사무실에 앉아 계시다가 때가 되면 법망을 빠져나간 사람을 조준경 너머로 들여다보신다. 줄거리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할 정도로 한 줄이다. 코드명은 킹피셔, 그러니까 물총새다. 높은 자리에 한참을 앉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한 번에 내리꽂는 새의 습성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드라마 좀 보셨다는 분들께서는 다음 전개를 맞히실 것이다. 주인공은 반드시 손을 씻고 싶어 하고, 하필 마지막 한 건이 남아 있고, 하필 그 한 건이 가족과 얽혀 있고, 하필 남편이 그 사건을 취재하고 있다. 업계가 수십 년간 갈고닦아 온 표준 문안의 정수라 하겠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그 표준 문안을 굳이 피하지 않는다. 피하기는커녕 상당히 성실하게 따라간다. 다만 따라가는 내내 카메라를 자꾸 엉뚱한 데에 세워 둔다.

이를테면 주인공께서 장총을 어깨에 걸치고 서 계신 자리가 야산도 아니고 옥상도 아니고 아이 방이다. 뒤쪽 서랍장 위에는 색색의 작은 깃발이 꽂혀 있고 바닥에는 장난감이 굴러다니는데, 그 앞에 총열이 어깨 위로 비죽 올라와 있다. 이 화면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하지 않는 쪽이 설명을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말을 한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부녀 킬러 포스터

내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장면은 뜻밖에도 캔 음료 하나였다. 시어머님 옥선자 여사를 노린 보이스피싱범을 쫓아가 캔 음료를 던져 맞히는 대목이다.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저격수의 기량을 생각하면 명백한 낭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의 구할은 원래 그 정도 선에서 끝나야 하는 일들이고, 그 정도 선에서 끝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다들 곤란을 겪는 것이기도 하다. 분홍색 재킷 차림으로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한 손에 캔을 쥐고 계신 모습에는, 이분의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오늘 저녁에는 장을 봐야 한다는 사정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대로 들어 있다.

일하는 쪽에서 이 드라마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케이블카 작전이었다.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재벌가의 탁종구 씨와, 다른 팀에서 쫓고 있던 천성길 씨를 한자리로 불러 모은 다음, 건너편 케이블카에 자리를 잡고 두 사람의 머리가 정확히 포개지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한 발을 쏜다. 그러고 나서 하시는 보고가 "원투 클라이언트 미팅 종료"다. 클라이언트 미팅이라고 하신다. 사람을 둘 정리하고 나서 올리는 보고의 문장이 분기 실적 회의에서 들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만큼 평범하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농담을 거는 방식이다.

다만 민간인으로서 한 가지는 여쭙고 싶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흔들리며 지나가는 두 대의 케이블카 안에서, 두 사람의 머리가 한 선 위에 겹치는 시간은 도대체 몇 초나 되며, 그 몇 초를 어느 시점에 어떻게 계산해 두셨는지에 대해서는 작중에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설계 오류라고 민원을 넣자니 결과가 너무 깔끔하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영 궁금하다. 차라리 장인의 솜씨로 보아 넘기기로 했다.

태공산 펜션에서 장기 매매 조직과 맞붙는 대목도 비슷한 태도로 찍혔다. 자다가 깨어 상황을 장악하고, 펜션 할배의 총을 빼앗고,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큰 사람들을 맨몸으로 넘긴다. 이런 자리에서 으레 따라붙는 각성의 수순, 그러니까 숨겨 두었던 과거가 눈빛으로 돌아오고 음악이 한 박자 늦게 깔리는 연출을 기대하신 분들께서는 다소 허전하실 수 있다. 이분은 그냥 일어나서 하실 일을 하신다. 일하는 사람이 일을 하면 대개 그렇게 된다.

물론 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육원 원장의 학대를 보고 새총으로 원장을 제압한 뒤 호흡기를 빼앗아 아이들을 지킨 아이가 이분이었고, 마마라 불리는 어른이 그 아이에게 "네가 저 아이들을 구한 거란다"라고 말해 준다. 나는 이 한 줄이 이 드라마의 설계도라고 생각한다. 구했다는 말을 들어 본 아이는 평생 구하는 사람이 된다. 다른 쪽 길을 권해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칭찬은 가끔 명령보다 오래간다.

그래서 해공동 건이 끝까지 남는다. 4년 전, 일곱 살 아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 아버지를 쐈다는 사건이다. 구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한 분이, 누군가의 일곱 살을 통째로 가져가 버린 셈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드라마는 서둘러 변명을 붙이지 않는다. 그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길게 설명해 통쾌함으로 덮어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다 차려진 밥상을 끝내 물린다. 남는 것은 일곱 살짜리 하나가 본 장면이고, 그 장면은 누구의 사정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남편 되시는 권태성 기자는 이 사건을 혼자서 밟아 나간다. 부동산 앞에 서서 허리를 숙이고 묻고, 회의실에 앉아 또 묻고,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묻는다. 11회에서는 8년 전 구급대 신고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취재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성실하게 하면 할수록 제일 알고 싶지 않았던 자리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 남편은 결국 알게 된다. 그게 다다.

지난주에 그 반찬가게 앞을 다시 지났다. 다섯 시 반이었고 셔터는 어김없이 허리께까지 내려와 있었다. 예전에는 저 집이 슬슬 장사를 접으시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뭐, 지금은 저 셔터 안쪽에 오늘 치의 일정이 하나 더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보고되지 않고, 누구의 결재도 받지 않으며, 끝나고 나면 여섯 시 십오 분에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깻잎을 집는 일정이다. 반쯤 내린 셔터라는 것은 결국 문을 닫은 것도 연 것도 아닌 상태로 사십오 분을 버티는 기술이고, 그 기술로 하루를 밀고 가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에는 코다리조림을 한 통 사야겠다. 다섯 시 반 말고, 여섯 시 반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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