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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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되어 주겠다는 말이 무서워질 때

심장쫄깃러· 2026. 11. 01.· 2,941자

식탁에 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한 사람은 눈에 붕대를 감았고, 다른 한 사람은 끝내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아요. 목소리와 손끝만 오갑니다. 동생 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아주머니라고 했고, 그동안 전화로만 인사를 나눈 사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밥이 넘어가지 않았어요. 밥상 앞에 앉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조심스러울 수 있구나 싶어서요.

영화 「눈동자」는 2026년 6월에 개봉한 염지호 감독의 작품입니다. 스페인 영화 「줄리아의 눈」을 바탕으로 했고, 한 배우가 쌍둥이 자매 서진과 서인을 모두 맡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자매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 글에서 보고 싶은 관계는 서진과, 동생의 사건을 맡은 형사 도혁 사이입니다. 범인과 결말을 그대로 씁니다.

먼저 서진의 자리부터요. 이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인데 눈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쌍둥이 동생도 같은 병으로 먼저 시력을 잃었어요. 자기를 쫓아다니던 모델이 전자발찌를 끊었다는 소식에 서울을 떠나 동생 집으로 몸을 피했는데, 그 집 지하에서 동생을 잃은 채로 발견합니다. 경찰은 스스로 택한 죽음이라고 정리합니다. 서진만 아니라고 해요.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혼자 맞다고 말하는 사람의 자리는 참 외롭습니다.

그 자리에 도혁이 옵니다. 사건을 맡은 형사입니다. 처음에는 서진이 사건에 매달리는 걸 경계하는 쪽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분이 서진의 눈이 되어 줍니다. 동생이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 동생이 다녀간 호텔의 기록, 그런 것들을 서진은 혼자서는 확인할 수 없거든요. 눈이 어두워지는 사람 옆에 대신 읽어 주고 대신 걸어 주는 사람이 생긴 겁니다. 영화 중반까지 두 사람이 나란히 있는 장면은 참 든든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이 사람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하고요.

눈동자 스틸컷

그런데요, 영화는 바로 그 다행이라는 마음을 뒤집습니다.

서진은 눈 수술을 받고 붕대를 감은 채 퇴원합니다. 한 달 안에 붕대를 풀면 다시는 앞을 볼 수 없다는 말을 듣고서요. 그 집에 앞서 말한 아주머니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서진 앞에 쪽지 한 장이 놓입니다. 「그 아줌마는 남자야」. 얼굴을 보여 주지 않던 사람이 도혁이었습니다. 함께 단서를 쫓던 형사가 여자 옷을 입고 아주머니 목소리를 내며 서진의 밥상 앞에 앉아 있었던 거예요.

여기서 두 사람의 말이 엇갈립니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에 서진은 급히 불을 끄고 풀어 둔 붕대를 다시 감으려 하지만 시간이 모자랍니다. 돌아온 아주머니 앞에서 서진은 붕대가 비에 젖어 벗었다고, 아직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둘러댑니다. 도혁은 그 말을 믿는 척하며 아주머니 목소리로 묻고, 칼을 서진의 눈앞까지 들이밉니다. 정말 못 보는지 시험하는 겁니다. 한 사람은 보이는데 안 보인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알면서 모르는 척 묻습니다. 식탁 위에 오가는 말이 전부 거짓인데, 그 거짓말 하나에 목숨이 걸려 있어요. 저는 이 대목에서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했습니다.

눈동자 스틸컷

이제 도혁의 자리로 가 보겠습니다. 서기 쉽지 않은 자리입니다. 영화 끝에 경찰이 정리하기로는, 이분은 자기를 오래 통제해 온 어머니를 해친 뒤에 어머니를 자기 안에 남겨 두고 살았다고 해요. 어머니 목소리로 말하고, 어머니처럼 돌보고, 그 돌봄의 상대로 앞을 못 보는 사람을 골랐다고요. 서진의 동생도 그렇게 이분 손에 떠난 것으로 영화는 말합니다.

이분이 왜 하필 보지 못하는 사람 곁에 머물렀는지 영화는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짐작해요. 아마 이분에게 사랑은, 상대가 자기 없이는 한 발도 못 걷는 상태였을 거예요. 눈이 되어 준다는 건 그 사람의 세상을 다 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서진이 혼자 단서를 찾아 나설수록 이분은 더 가까이 왔습니다. 돕는 얼굴로요.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유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우리는 이런 사람을 영영 알아보지 못합니다. 영화가 중반까지 도혁을 그토록 미덥게 그린 건 아마 그래서일 거예요.

각자가 상대에게 바란 것을 적어 보면 이렇습니다. 서진이 도혁에게 바란 건 눈이었습니다. 자기 대신 봐 주되, 본 것을 그대로 말해 주는 눈이요. 도혁이 서진에게 바란 건 눈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영영 자기 손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요. 같은 말 같은데 정반대예요. 도와주겠다는 사람의 말이 무서워지는 순간이 바로 여기입니다.

관계가 바뀌는 장면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서진은 붕대를 감은 채 맨발로 빗길을 달리고, 불 꺼진 집에서 소리와 손끝에만 기대어 도혁과 맞섭니다. 중반까지 자기를 이끌어 주던 사람과, 그 사람이 가장 익숙한 어둠 속에서 싸우는 겁니다. 경찰이 들어오고 서진은 구해집니다. 도혁은 스스로 생을 끝냅니다. 그 뒤로 영화는 이분에 대해 더 말을 보태지 않습니다.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분을 더 설명하면 서진이 겪은 일이 작아질 테니까요.

눈동자 스틸컷

보고 나서 제 주변을 한 번 둘러봤어요. 누군가의 눈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병원 서류를 대신 읽는 자식, 어두워진 친구 대신 길을 짚어 주는 친구, 통장을 대신 봐 주는 배우자요. 그 자리는 대개 고맙고 따뜻합니다. 다만 한 가지만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어요. 내가 이 사람 대신 보는 걸 이 사람이 바라는지, 아니면 이 사람이 못 보는 상태를 내가 바라는지요. 답은 거의 앞쪽일 거예요. 그래도 한 번쯤 묻는 사람이고 싶다고, 저는 그렇게 믿어요.

무서운 영화냐고 물으시면, 피보다는 조용함이 무서운 영화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화면이 흐려지고 소리가 커집니다. 서진이 못 보는 만큼 우리도 못 보게 해 놓고, 그 옆에 믿을 만한 사람을 하나 앉혀 둡니다. 돕는 사람과 가두는 사람이 같은 얼굴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요. 잔인한 장면이 많지는 않지만, 눈앞까지 오는 칼날 하나는 오래 남습니다.

끝에 한 가지만요. 동생의 죽음을 혼자 믿지 않았던 서진 옆에, 처음부터 거짓 없이 서 있어 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저는 아직 답을 못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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