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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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의 사용 순서에 관한 보고

예민한책장· 2026. 10. 10.· 3,726자

우리 단지 상가 일층 복도에는 주인 없는 가죽 소파가 한 짝 놓여 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누가 버린 것을 누가 끌어다 둔 것인지, 등받이 한쪽이 터져 솜이 비어져 나온 그것을 어째서 아무도 치우지 않는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고,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소파에 앉는 순서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에는 경비 아저씨께서 앉으시고, 낮에는 세탁소 사장님께서 앉으시며, 해가 기울면 부녀회 일을 보시는 사모님께서 앉으신다. 서로 겹치는 법이 없다. 나는 이 순서가 어느 회의에서 의결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먼저 앉아 버린 뒤에 나머지가 조용히 물러선 결과인지를 꽤 오래 궁금해했다. 한번 여쭤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여쭙는 순간 내가 그 순서의 맨 끝에 편입될 것 같아서였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시간의 그 소파가 제일 서늘해 보인다는 것도, 나 같은 민간인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튼.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2> 되겠다. 지난 9월 9일부터 수요일마다 두 편씩 풀려 9월 23일에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편을 한꺼번에 내놓고 닫힌 여섯 편짜리로, 앞 시즌으로부터 꼭 아홉 해가 지난 1979년, 그러니까 10월 26일부터 12월 12일까지의 한 달 보름 남짓한 기간, 나라의 맨 윗자리가 비어 버린 바로 그 어수선한 틈에, 중앙정보부장 직무대행이라는 다소 길고 어딘가 임시직 냄새가 나는 직함을 달게 된 한 사내가 그 임시를 영구로 바꿔 보려다 어떻게 되는가를 여섯 시간 남짓 지켜보는 이야기다. 줄거리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할 정도로 간단하다. 자리가 비었고, 앉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직무대행」이라는 네 글자를 나는 보는 내내 들여다보았다. 우리 단지에서도 관리소장 자리가 비면 직무대행이 생기는데, 직무대행께서는 대체로 전임보다 부지런하시고, 부지런하신 까닭은 대행이기 때문이며, 대행을 떼려면 부지런한 것만으로는 어림없다는 사실을 대행 본인이 제일 잘 아신다는 점에서 이 직함에는 썩 잔인한 구석이 있다. 임시로 맡기되 임시인 줄을 매일 일러 주는 것이 이 네 글자의 기능이다. 작품 속 사내가 좀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는 것을 나는 연기로 보기 전에 직함으로 보았다. 대행을 오래 하면 사람이 저렇게 되는 모양이다.

권력 나오는 이야기를 좀 보셨다는 분들께서는 이다음 순서를 이미 외우고 계실 것이다. 윗자리가 빈다. 서열 둘째가 올라간다. 올라간 자에게는 형을 우러르던 아우가 있다. 하필 그 아우가 군복을 입고 있고, 하필 그 아우에게 지켜야 할 식구가 있고, 하필 형이 그 식구를 밑천으로 쓴다. 업계가 수십 년간 갈고닦은 표준 문안의 정수라 하겠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 수순을 따르는가. 과연 따른다. 차려진 밥상을 물리기는커녕 숟가락을 두 개 놓고 앉는다.

초반에 이 임시직 사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각하와 단둘이 마주 앉아 말을 고르는 것과,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비어 있는 대통령의 자리에 한번 앉아 보는 것이다. 앉아서 담배를 피운다. 그게 전부다. 나는 이 대목이 꽤 오래 마음에 걸렸는데,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아 보는 일이 어째서 앉은 사람의 얼굴을 저렇게 굳게 만드는지, 앉기 전보다 앉은 뒤가 어째서 더 불안해 보이는지를 설명할 재간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상가 소파를 떠올렸다는 말은 아직 하지 않겠다.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2 스틸컷

그다음부터는 사무가 시작된다. 궁정동 안가에서 일이 벌어진 뒤로 보안사 취조실이 열리고, 사람들이 불려 들어가고, 불려 들어간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고, 그 이름이 다시 불려 들어온다. 이 과정이 어찌나 질서정연한지 나는 보다 말고 결재선이 몇 단계인지를 세어 보았다. 세다가 그만두었다. 나라의 앞날을 가르는 일이 이렇게까지 서류 비슷한 모양으로 처리된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그럴듯한 구석도 있다. 큰일은 대개 작은 방에서 나는 법이고, 작은 방에는 대개 의자가 두 개뿐이다.

군복을 입으신 아우님 쪽을 보자. 이분은 형을 우러르다가 형을 의심하고, 의심하다가 식구를 보고, 식구를 보다가 다시 형을 본다. 중령 계급장을 달고 앉아 남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 이분의 직무인데, 직무 중에 가장 여러 번 들여다보게 되는 얼굴이 하필 제 형의 얼굴이 되고 마는 사정을 이분으로서는 상부에 보고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집안의 궂은 사업을 도맡아 오신 누님 쪽이 험한 데까지 굴러떨어지면서 저울은 기운다. 기울어지는 데 여섯 편은 짧다. 짧은 줄 알면서도 기울이는 쪽을 택한 것이 이 작품의 배포라면 배포겠다.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2 스틸컷

만드신 분은 앞 시즌이 애들 싸움 같았다면 이번은 어른들의 싸움이라고 하셨다는데, 보고 나니 과연 어른들의 싸움이다. 어른들의 싸움이란 무엇인가 하면, 고함을 지르지 않고, 멱살을 잡지 않고, 대신 전화와 서류와 자리 배치로 상대를 지우는 것이다. 수화기를 드는 손이 주먹보다 세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여러 번, 그것도 아주 조용한 음량으로 보여 준다. 그 점에서는 차라리 장인의 솜씨로 보인다. 이 바닥의 상투적인 장면들을 하도 반듯하게 다려 놓아서, 상투적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민망해지는 지경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2 스틸컷

다만 민원 하나는 접수해 두고 싶다. 앞 시즌에서 이 사내와 어깨를 겨루시던 검사 양반이 아홉 해 만에 돌아오시는데, 돌아와 보니 겨룰 자리가 전보다 좁아져 있다. 이번 판에는 맞설 분이 여럿이고, 이분은 그중 한 분이 되셨다. 아홉 해를 벼르고 오신 분께 배정된 지분으로는 다소 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는 네 번째 편쯤에서 했다. 물론 민간인이 편성에 관여할 바는 아니고, 관여하겠다고 나서면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내내 경계하는 종류의 행동이 되겠다.

여섯 편이라는 길이에 대해서도 한마디 적어 둔다. 만드신 분께서는 1화에서 6화까지 내처 달려가는 이야기라고 하셨다는데, 과연 쉬어 가는 편이 없다. 요즘 이런 이야기에는 중간에 한 편쯤, 인물들이 둘러앉아 지난 일을 복기하고 보는 사람에게 사정을 일러 주는 시간이 배정되게 마련인데 그런 배려가 여기에는 없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따라오시라는 식이다. 불친절하다고 적으려다, 요새는 불친절한 쪽이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사정을 떠올리고 적지 않았다.

마지막은 눈이 온다. 막다른 길목에서 형 앞을 아우가 가로막고, 아우가 총구를 든다. 화면이 바뀐다. 총소리가 한 번 난다. 그게 다다.

그 총이 어디를 향했는지, 향해서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끝내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민원을 넣자니 접수처를 알 수 없고, 알아도 담당자가 눈 내리는 길목에 서 있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는 이것이 설계 오류인지 설계 그 자체인지를 한참 따져 보았다. 만드신 분 말씀으로는 그 총소리가 한 시대를 닫는 소리라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고, 듣기 전에는 그런 줄 몰랐다는 것이 민간인의 솔직한 사정이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는 알겠다. 보여 주지 않기로 한 것과 보여 줄 것이 없는 것은 다르다. 그 둘을 가려내는 눈이 내게 있다고는 못 하겠으나, 가려내 보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그 눈 내리는 길목을 여러 번 되감았다.

며칠 전 상가에 내려갔더니 소파가 비어 있었다. 아침인데 경비 아저씨께서 앉아 계시지 않았다. 터진 등받이에 먼지가 앉은 것이 보였고, 나는 거기 앉지 않았다. 앉으면 순서가 생길 것 같아서였다. 뭐, 자리라는 것이 원래 그런 모양이다. 누가 앉아 있을 때는 그 사람이 보이고,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을 때라야 비로소 자리가 보인다. 비어 있는 자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은 앉아 본 적 없는 사람이 제일 세게 느낀다는 것도, 그 터진 소파 앞에서 알았다.

다음에 경비 아저씨를 뵈면 저 소파를 언제쯤 치우시느냐고 여쭤봐야겠다. 치우지 마시라는 뜻으로 들리도록 여쭤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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