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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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총구
눈이 내렸다. 길이 막혀 있었다. 사내가 멈춰 섰다. 사내의 앞을 아우가 막아섰다. 아우가 총을 들었다.
총구가 사내를 향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총소리가 한 번 났다. 거기서 끝났다. 총에 맞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때는 1979년이다. 시월에 맨 윗사람이 죽었다. 섣달에 군대가 움직였다. 그 사이의 한 달 보름이 이야기의 전부다. 여섯 편이 그 한 달 보름 안에 들어 있다.
아홉 해 전 사내는 물건을 밀어 날랐다. 나라의 일을 하면서 제 장사를 했다. 두 가지 일을 한 몸으로 했다. 아홉 해 뒤에는 밀어 나를 물건이 없다. 자리가 물건을 대신했다. 자리는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사내는 그 틈에 중앙정보부장 직무대행이 되었다. 사내의 일은 사람을 부르는 일이다. 불러서 앉히고, 앉은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받는다. 받은 이름을 적는다. 적은 이름을 다시 부른다. 사내는 그 일로 먹고산다.
초반에 사내는 맨 윗사람과 단둘이 마주 앉는다. 둘 사이에 책상이 하나 있다. 사내는 말을 고른다. 고른 말을 짧게 놓는다. 말을 고르는 일도 일이다.
사람이 사라지는 자리가 여러 번 나온다. 사라진 사람의 이름을 나는 다 외우지 못했다. 외우지 못한 채로 다음 사람이 불려 들어간다. 이름이 줄어드는 동안 사내의 자리는 높아진다. 높아진 자리에 사내가 혼자 앉아 있다.
사람은 옷으로 먼저 갈린다. 사내는 양복을 입는다. 조끼를 받쳐 입는 날도 있다. 아우는 군복을 입는다. 옷이 그 사람의 일을 먼저 말한다. 옷을 걷어 내면 남는 것은 손이다.
사내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맞은편 사람을 본다. 턱을 당기고 눈을 치켜든다. 사내는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사내의 손은 자주 포개진다. 포갠 손을 풀면 사람이 하나 없어진다. 나는 이 사내의 힘이 목소리에 있지 않고 손에 있다고 생각했다.

사내를 맡은 배우는 얼굴을 적게 쓴다. 눈썹을 올리지 않는다.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다. 감정을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표정을 아낀 자리에 눈이 남는다. 나는 그 눈만 오래 보았다.
세 사람은 한집에서 나왔다. 형이 있고 누이가 있고 아우가 있다. 셋 다 몸으로 돈을 벌었다. 형은 정보를 쥐고 누이는 물건을 쥐고 아우는 계급을 쥔다. 한집에서 나온 셋이 서로 다른 끝으로 간다. 그 집의 밥상이 어떠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사내에게는 누이가 있다. 누이는 집안의 불법 사업을 도맡았다. 누이도 그 일로 먹고살았다. 아홉 해 전 누이는 순한 얼굴을 한 젊은 여자였다. 아홉 해 뒤 누이는 약에 몸을 맡긴 사람이 되어 있다. 밥벌이가 사람을 거기까지 끌고 갔다.
사내에게는 아우가 있다. 아우는 군복을 입는다. 어깨에 중령 계급장이 붙어 있다. 아우는 형을 우러르며 자랐다. 아우의 일은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들여다보는 얼굴 가운데 하나가 형의 얼굴이 된다.

아우는 앉아서 묻는 쪽이었다. 마지막에는 서서 막아서는 쪽이 된다. 앉은 자세와 선 자세 사이에 여섯 편이 놓인다. 묻던 손이 총을 쥔 손이 된다. 나는 그 자세의 변화만 적어 둔다.
사내를 쫓는 남자가 또 있다. 아홉 해 전 그 남자는 검사였다. 그 남자는 사내를 쫓다가 자리를 잃었다. 아홉 해를 기다려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사내를 노리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 남자는 여럿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쫓는 일에도 품이 든다. 아홉 해를 기다린 사람의 몸은 아홉 해만큼 늙는다. 기다림은 밥을 주지 않는다. 그 남자가 아홉 해 동안 무엇으로 먹고살았는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이야기는 그 대목을 적지 않는다.
아홉 해라는 숫자가 이야기를 묶는다. 앞 이야기와 이 이야기 사이가 아홉 해다. 쫓던 남자가 기다린 시간이 아홉 해다. 아우가 형을 우러른 시간도 그 안에 들어 있다. 숫자 하나가 세 사람의 몫을 나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쥐고 있다. 사내는 서류와 전화를 쥔다. 누이는 돈을 쥔다. 아우는 총을 쥔다. 쥔 것이 다르면 쓰는 몸도 다르다. 사내는 앉아서 일하고 아우는 서서 일한다.
만든 사람들은 끝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다. 쏘는 손이 화면에 없다. 쓰러지는 몸도 없다. 소리가 하나 있을 뿐이다. 아우를 맡은 배우는 방아쇠를 당기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을 다시 적는다. 눈이 내린다. 길은 더 갈 데가 없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선다. 쫓던 남자가 있고, 쫓기던 사내가 있고, 둘 사이에 아우가 있다.
아우가 형의 앞을 막는다. 아우가 총을 든다. 총구가 형을 향한다. 형은 피하지 않는다. 형은 아우를 본다. 눈이 두 사람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총은 들기 전에는 무겁지 않다. 겨눈 뒤부터 무거워진다. 팔을 뻗은 채로 버티면 어깨가 먼저 아프다. 겨눈 시간이 길수록 손끝이 내려간다. 겨누는 일은 쏘는 일보다 오래 걸린다.
총은 쇠로 되어 있다. 쇠는 차다. 차가운 것을 오래 쥐고 있으면 손이 굳는다. 굳은 손으로는 방아쇠가 무겁다. 아우의 손이 떨렸는지 나는 보지 못했다. 화면이 거기서 돌아섰다.
눈은 소리를 먹는다. 눈이 쌓인 길에서는 발소리가 작아진다. 소리가 작아진 길에서 총성 하나는 크다. 그 하나를 듣고 화면이 꺼진다. 꺼진 뒤에도 소리는 귀에 남는다.
이 이야기에서 끝까지 보여 주는 것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었다. 부르는 일, 적는 일, 들여다보는 일, 막아서는 일이다. 일이 끝나는 자리에서 몸이 사라진다. 사라지는 몸은 화면 밖에 있다.
총성은 들린다. 총성은 보이지 않는다.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가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자리다. 나는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말할 수 없다.
아홉 해 동안 사내는 올라갔다. 올라간 끝에 길이 막혔다. 막힌 길에서 사내를 막아선 것은 쫓던 남자가 아니라 아우였다. 피를 나눈 쪽이 마지막에 왔다. 나는 이것이 이 이야기의 셈법이라고 생각했다.
권력을 쥔 사람의 일은 사람을 부르는 일이었다. 그 일을 오래 한 사람은 마지막에 불려 나왔다. 부르던 자가 불리는 자가 되는 데 아홉 해가 걸렸다. 한 달 보름이 그것을 끝냈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나는 말할 수 없다. 나는 눈을 보았다. 눈은 길 위에 쌓였다. 쌓인 눈은 발자국을 덮는다. 사람이 지나간 자리가 지워진다.
총소리가 난 뒤에도 눈은 내렸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화면이 먼저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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