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0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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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소리들이 둘러앉을 때
집 뒤 텃밭에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비가 오는데 들어가지 않아요. 헤어진 아내 생각에 젖어 있다가 비에까지 젖는 이 장면은 열 편짜리 이야기의 여섯 번째 토막에 잠깐 나옵니다. 저는 여기서 처음으로 웃음을 멈췄어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2010년 5월 24일부터 매주 월요일 아침 한 편씩 인터넷에 무료로 올라온 5분 안팎의 이야기 열 편을 묶은 작품입니다. 같은 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편의 영화로 상영된 뒤 12월에 78분짜리로 극장에 걸렸습니다. 주인공은 배우 매니저 재민이에요. 이혼한 전처 하라를 아직 잊지 못했고, 돈이 없어 단골 카페 가화를 사무실처럼 쓰고, 누나 재주와 목사인 매형 한철의 집에 얹혀삽니다. 맡은 배우 혁권은 중요한 자리마다 괜한 말을 늘어놓고요. 하라는 열 편 내내 얼굴 없이 전화 목소리로만 나옵니다.
지금 어떤 마음인 분이 보면 어디가 맞닿고 어디가 아플지를, 제 마음에 걸린 자리를 기준으로 적어 본 글입니다.

헤어진 지 한참인데 번호를 아직 못 지운 분께
세 번째 토막에서 재민은 오디션을 마치고 나오다 하라의 전화를 받습니다. 작품 소개문은 이때 이분의 마음을 「당황스러우면서도 설레는」이라고 적어요. 옆에 선 혁권은 무슨 일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요. 저는 이 대목이 정직하다고 느꼈어요. 끝난 관계인데 이름이 뜨면 손이 먼저 움직이는 것, 그건 이상해서가 아니에요. 아직 그 사람이 내 하루의 어디쯤에 남아 있다는 뜻일 뿐이에요. 감독은 인터뷰에서 제목의 뜻을, 이 남자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하라뿐이라는 말이라고 풀었습니다.
조심할 점이 있어요. 하라는 끝까지 목소리로만 있습니다. 얼굴도 사정도 보여 주지 않아요. 그래서 보는 쪽은 재민과 똑같이 전화기 너머만 들여다보게 되고, 아홉 번째 토막에서 다시 울리는 전화에 같이 두근거리게 됩니다. 그 기대가 어떻게 되는지는 마지막 토막에 나와요. 번호를 못 지운 분이라면 그 장면에서 자기 전화기를 한 번 내려다보게 될 겁니다.
가족 모임에서 혼자만 짝이 없는 자리에 앉게 되는 분께
다섯 번째 토막, 누나 집에 삼남매와 각자의 짝이 다 모입니다. 모두 둘씩인데 재민만 혼자예요. 소개문은 이분의 기분을 「착잡하다」고 적고, 매형 한철이 어설프게 위로하는 바람에 더 착잡해진다고 덧붙입니다. 앞선 토막에서 누나 부부는 재민의 생일상을 차리며 하라와 다시 만났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어요. 아끼는 마음과 눈치 없는 말이 한 식탁에 같이 올라오는 장면입니다.
저는 한철 이분을 미워하기 어려웠어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라고 작품도 말하고요. 위로할 줄 몰라서 어설픈 것이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닐 거예요. 아마 이분도 식탁 밑에서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을 겁니다. 다만 그 자리에 혼자 앉아 본 지 얼마 안 된 분이라면 이 토막은 웃기기보다 먼저 쓰릴 수 있어요. 명절 전날 밤보다는 명절이 지난 뒤에 보시는 편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남의 집에 얹혀살며 아침이 제일 고달픈 분께
여덟 번째 토막은 누나 집에서 맞는 재민의 아침으로 시작합니다. 소개문이 「고달픈 기상시간」이라고 부르는 그 아침이에요. 여섯 번째 토막의 텃밭 장면도 같은 집 뒤에서 벌어집니다. 동남아 여행 중인 부모님이 전화를 걸어 와 삼남매가 지루해할 만큼 긴 수다를 쏟아 놓는 동안, 재민은 혼자 밖에 나가 비를 맞고 있어요.
집이 있는데 내 집이 아닌 상태, 고마운데 숨 쉴 데가 없는 상태를 아는 분이라면 이 두 장면이 오래 남을 거예요. 조심할 점은 하나예요. 작품은 이 처지를 고쳐 주는 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아마 끝까지도요. 무언가 풀리는 걸 보고 싶어서 트는 분께는 맞지 않을 수 있어요.
남의 실수를 뒤치다꺼리하는 게 일인 분께
첫 토막부터 그렇습니다. 재민은 혁권과 함께 영화사 오디션에 갔고, 요즘 자기 주가가 오른다고 믿는 혁권은 괜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영화사 대표와 감독의 표정은 굳어 갑니다. 아홉 번째 토막에서 그 영화사가 반가운 전화를 걸어 와 배역을 제안하는데, 혁권의 설레발은 여전해요. 작품은 이분을 「가련한 매니저」라고 부르고, 어느 관객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사람이라고 적었습니다. 극 중에서 누군가 이분에게 자신을 지킬 방법으로 권투를 권하는 대목도 있어요.
저는 그 권유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들렸어요. 맞서 싸우라는 뜻이라기보다, 매번 삼키기만 하는 사람을 보고 있기가 안쓰러웠던 거겠지요. 조심할 점은, 이 작품이 혁권 같은 분들을 끝내 고쳐 놓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 옆의 그 사람도 안 바뀌겠구나 싶어 답답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혁권 이분에게도 자리를 하나 내주고 싶어요. 자기 주가가 오른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시절을 지나고 있을 거예요.
지금은 보지 않는 편이 나은 분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며 밤마다 전화기를 뒤집어 놓는 분. 마지막 토막은 재민이 통화를 끝낸 뒤 절망스러워진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다만 아홉 편 동안 쌓인 기대가 꺾이는 자리라는 것만 말해 둘게요. 지금 그 장면을 자기 일과 겹쳐 보기에는 너무 가까울 수 있어요. 몇 달 뒤에 보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이 작품의 끝이에요. 절망한 재민 주위로 이제껏 이분을 피곤하게 했던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한마디씩 훈수를 둡니다. 소개문의 표현을 빌리면 늘 그렇듯 괜한 소리들이에요. 그 하나마나한 소리들이 모여 우주를 이루는 게 아니냐고, 마지막 토막 제목은 150억 년을 가리킵니다. 감독은 이 작품을 어설픈 실연과 주변의 어설픈 위로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어요. 저는 그 「어설픈」이 이 작품에서 가장 다정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무너진 날, 우리는 대개 쓸 만한 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서 앉습니다. 괜한 소리라도 하면서요. 그게 위로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두지 않았다는 것만은 남아요.
그러니 지금 옆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근사한 말 대신 「밥은 먹었어요」 한마디만 건네 보세요. 5분짜리 열 편이 제게 남긴 건 딱 그만큼이었고, 그만큼이면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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