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다운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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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환자는 집에 있었다

삐딱하게보기· 2026. 10. 26.· 3,252자

7화에는 새 환자가 없다. 내가 읽은 줄거리들을 아무리 뒤져도 이 회에 클리닉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낯선 얼굴은 없다. 대신 주인공 후미의 동생이 제 눈꺼풀에 스스로 상처를 내고, 누나가 그 상처를 꿰맨다. 2026년 9월 17일에 여덟 편이 한꺼번에 공개된 미용외과 드라마 「다운타임」이 가장 많이 욕을 먹는 자리가 바로 여기, 5화부터 8화까지다. 나는 오늘 그 네 편을 변호하러 왔다.

혐의

혐의는 간단하다. 환자를 버리고 집안 싸움으로 갔다는 것. 일본의 리뷰 사이트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문장은 이런 꼴이다. 3화쯤까지는 제목대로 미용 수술 이야기가 중심이라 재미있었는데, 도중부터 도야마 집안의 소동이 중심이 되어 점점 식어 갔다. 다른 사람은 더 짧게 썼다. 후반의 집안 소동은 정말 필요 없었다고. 어느 블로그는 앞 절반은 걸작이고 마지막 회는 낙제라는 뜻의 제목을 달았고, 또 다른 글은 제작진이 한 가지 주제로 여덟 회를 버티지 못해 부모 자식의 진흙탕극을 주입했다고 적었다. 회차별 줄거리를 정리한 매체조차 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불화라는 흔한 주제로 흘러간 것을 아쉬워했다.

구체적으로 지목되는 것은 셋이다. 6화에서 드러나는 출생의 비밀. 클리닉을 세운 회장 신이 후미의 친아버지이고, 원장 린은 그의 양녀라는 것. 7화 끝, 바다로 가던 길에 일어나는 교통사고. 그리고 그 뒤로 앞 회의 환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 한 시청자는 어느새 그 환자는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만 늘었다고 썼다.

인정한다. 전부 사실이다. 다만 나는 이 혐의의 전제가 틀렸다고 본다.

다운타임 스틸컷

변론

전제란 이것이다. 후반에는 환자가 없다. 아니다. 환자는 있다. 수술대가 집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세어 보자. 5화, 린은 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당기는 수술을 맡는다. 같은 회에 후미의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진다. 6화, 어머니가 죽고, 딸은 그제야 어머니가 쌍꺼풀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과 1억 엔을 몰래 모아 두었다는 것을 안다. 7화, 동생. 8화, 후미 자신. 전반 네 회에 환자가 한 명씩 있었듯 후반 네 회에도 수술대에 오르는 얼굴이 한 명씩 있다. 다만 그 얼굴들이 모두 한집 사람이다.

7화를 보자. 동생은 어머니도 성형을 했으니 자기도 하겠다고 말한다. 이 아이는 후미와 아버지가 다르다. 그러니까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 이 아이가 누나와 나누어 가진 전부이고, 아이는 바로 그 받은 것에 스스로 손을 댄 것이다. 후미는 동생의 말을 제대로 들어 주지 못했음을 뉘우치고 직접 집도한다. 생각해 보라. 전반 네 회 동안 환자들이 들고 온 사연,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사람의 눈에 들고 싶다는 사연은 전부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한 시청자는 환자 이야기까지 포함해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가족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썼다. 드라마는 그 사연을 네 번 남의 집에서 보여 준 다음, 다섯 번째부터는 주인공의 집에서 보여 준다. 주제를 버린 것이 아니다. 주제를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면 사고는. 고백하건대 나도 그 장면에서 잠깐 멈췄다. 후미는 이미 7화에서 린에게 메일을 보냈다. 신이 자기 친아버지라는 것, 미용외과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 말로는 끝났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말로 끝난 것을 믿지 않는 드라마다. 1화부터 사람의 몸을 열어 보여 주며 왔다. 그래서 선언 대신 몸을 부순다. 그녀는 집에 빚을 받으러 오던 남자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바다로 가다가 차와 부딪치고, 얼굴을 크게 다친다. 한 블로거는 공중으로 날아가는 그 장면을 빼어나다고 썼고, 온 얼굴에 붕대를 감은 모습을 섬뜩하게 아름답다고 썼다. 나는 그 블로거 편이다.

8화 병실. 찾아온 신은 「도야마의 피를 이어 주지 않겠나」 하고 묻는다. 후미는 거절한다. 그러고 나서 자기 얼굴을 린에게 맡긴다. 수술 공포로 손이 떨린다는 사실을 자기가 세상에 알린 바로 그 의사에게. 병이 없는 사람에게는 칼을 댈 수 없다는 것이 그녀가 처음 내건 원칙이었다. 이제 그녀는 병인지 미용인지 가를 수 없는 얼굴을 갖게 됐고, 그 얼굴을 자기가 가장 믿지 않던 손에 맡긴다. 이 전환은 사고 없이는 불가능하다. 편지로는 안 된다. 사표로도 안 된다. 미용외과 드라마의 마지막 환자가 주인공 자신이 아니면 누구여야 했겠는가. 작위적이다. 그렇다, 작위적이다. 모름지기 드라마란 작위를 어디에 쓰느냐로 값이 매겨지는 물건이고, 이 작위는 제값을 한다.

그리고 2년 뒤. 후미는 어머니가 하던 스낵바를 고쳐 자기 이름을 건 클리닉을 열었다. 린이 찾아와 얼굴을 살펴보고, 그것은 자기 솜씨를 확인하는 눈이다, 「여기를 2억에 사고 싶다」고 말한다. 2억. 1화에서 후미를 이 세계로 끌어들인 집안 빚이 그 숫자였다. 빚으로 들어온 숫자가 값이 되어 돌아온다. 이걸 어떻게 썼나 싶다. 나라면 못 했다. 나라면 환자를 넷 더 썼을 것이다. 그게 안전하고, 그게 지루하다.

다운타임 포스터

상상 하나. 각본을 쓴 사람이 네 번째 환자를 다 써 놓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한 리뷰는 성형과 외모라는 주제 하나로 여덟 회를 채우기는 각본상 어려웠을 것이라고 썼다. 그 말이 맞다면 그 사람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을 것이다. 다섯 번째 환자, 혹은 집. 이것은 내 상상이고, 그 손이 실제로 무엇을 망설였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집으로 들어간 쪽이 더 비싼 선택이라는 것은 안다. 환자는 퇴원하면 그만이지만 가족은 퇴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욕을 먹는다. 욕을 먹는 쪽이 대개 더 많이 걸었다.

변호인에게도 양심은 있다. 아버지의 정체는 중반부터 보인다. 여러 글이 그렇게 적었고 나도 그 대목에서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사고 뒤 후미가 거울을 어떻게 보았는지, 상처가 남은 제 얼굴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드라마는 거의 보여 주지 않는다. 그것을 보고 싶었다는 시청자의 말 앞에서 내게는 반박할 문장이 없다.

판결은 당신에게

앞 네 편만 보고 끄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면 당신은 좋은 의학 드라마 한 편을 본 것이다. 뒤 네 편까지 보면 당신은 그 의학 드라마가 제 주인공을 수술대에 눕히는 것까지 보게 된다. 앞쪽은 깔끔하고 뒤쪽은 지저분하다. 나는 지저분한 쪽을 편든다. 어머니의 시신에 매달려, 한 시청자가 옮겨 적은 대로라면 「엄마, 엄마, 좋아해」를 몇 번이고 되뇌던 딸이 2년 뒤 그 어머니의 가게에서 남의 얼굴을 고치고 있다. 이 드라마가 끝내 성형을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 답하지 않는다고 불평한 글이 있었다. 답은 그 가게에 있다.

욕먹는 네 편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좋은 드라마로 끝났을 것이다. 좋은 드라마로 끝나는 것은 때로 가장 아까운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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