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5
노크 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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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 주는 사람을 어디에서 찍어야 하는가
질문에서 시작하겠다. 누군가 문을 두드릴 때 카메라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문 안쪽에서 열어 주는 사람의 등을 볼 것인가, 아니면 문 바깥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볼 것인가. 다시 묻겠다. 2015년의 영화 〈노크 노크〉는 왜 문 안쪽에, 그러니까 열어 주는 남자의 자리에 그토록 오래 머물렀으며, 그 자리를 마지막에 어디로 옮겼는가. 나는 이 질문에 어디서부터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문이 두드려지기 전부터 가겠다.
첫 번째 질문.
이 영화는 어떤 화면으로 열리는가. 아버지의 날 아침이다. 건축가 에반과 아내 카렌이 침대에서 서로를 향하고, 그 순간은 남편의 어깨에 남은 수술 자국 때문에 끊긴다. 아이들이 들어온다. 아이들이 들고 온 선물은 가족의 사진을 잔뜩 붙여 손수 만든 시계다. 집의 벽에는 액자에 든 가족사진이 가득하고, 아내가 만든 조각과 색이 큰 그림들이 방마다 걸려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첫 화면은 한 남자가 아니라, 한 남자가 자기 주위에 둘러 세운 사진들인 것이다. 카메라는 이 집을 미끄러지듯 지나가며 방과 복도와 창을 하나씩 가르쳐 준다. 당신은 이 집을 곧 속속들이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첫 번째 요청이다. 집을 외우라는 것. 왜냐하면 이 영화는 그 뒤로 이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해변으로 떠나고, 아내의 조수 루이스는 조각을 갤러리로 옮기기로 하고, 남자는 혼자 남는다. 비. 새벽 한 시에 가까운 시간. 문 두드리는 소리. 감독은 이 영화를 그의 눈으로 보게 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문은 안쪽에서 열린다. 바깥에 선 두 여자는 처음부터 보이는 쪽이고, 남자는 보는 쪽이다. 이 배치가 밤새 유지된다, 라는 사실을 당신은 나중에야 알게 된다.

두 번째 질문.
카메라는 언제 이 남자의 얼굴에 가장 가까이 가는가. 감독은 두 여자를 먼저 한 팀으로 찍고, 어떤 순간부터 따로 찍는다고 했고, 남자에 대해서는 그가 앉아서 불편하게 숨 쉬는 것을 클로즈업으로 보게 한 것이 전부 계산이었다고 했다. 소파. 가운을 입은 두 여자 사이에 앉아 아내의 작품집을 펼쳐 보이는 남자. 차는 45분 뒤에 온다고 했고, 그 45분 동안 카메라는 그의 숨을 본다. 숨을 본다, 라는 것은 그가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45분이나 견디라고 영화가 요청하는 것이고, 당신은 여기서 그가 일어서기를, 혹은 넘어가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가 여러 번 거절한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 준다. 그리고 거절이 끝난다. 아니, 다시 말하겠다. 거절이 끝나는 장면을 카메라가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거절하는 얼굴을 너무 오래 보여 줌으로써 당신이 먼저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지친 쪽이 먼저 문을 연다. 그것이 이 영화가 첫 밤에 당신에게 한 일이다.

다음 날 아침의 화면을 말하겠다. 이 집의 창에는 가느다란 슬랫 블라인드가 걸려 있고, 밤새 내린 비가 창에 맺혀 그 블라인드와 함께 집 안에 줄무늬 그림자를 드리운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 위에 올라앉은 두 여자의 몸에도 그 줄무늬가 지나간다. 교복 차림의 벨과 검은 옷의 제네시스. 나는 이 줄무늬를 처음에는 그저 집의 무늬라고 생각했다. 아니, 다시 말하겠다. 그것은 집의 무늬가 아니라 집이 그 안의 사람에게 그은 선이다. 첫 번째 질문에서 당신이 외운 집, 사진으로 벽을 채운 그 집이, 아침이 되자 그 벽의 주인에게 창살을 드리우는 것이다. 카메라가 자리를 바꾼 것이 아니다. 빛이 자리를 바꿨다. 같은 창, 같은 블라인드, 같은 거실인데, 밤에는 그가 보는 쪽이었고 아침에는 그가 보이는 쪽이다. 조각은 훼손되고, 두 여자는 열다섯 살이라고 말하고, 남자는 아내의 조각에 맞아 쓰러지고, 묶인다. 영상이 찍힌다. 그를 찍는 카메라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영화 안의 전화기. 이 두 번째 카메라가 어디로 가는지가 마지막 질문이다.
이 영화는 1977년에야 개봉한 〈데스 게임〉을 다시 만든 것이다. 그 영화에서 집에 들어온 두 여자 중 하나를 연기한 배우가 이번에는 이웃으로 나온다. 감독은 〈호스텔〉과 〈그린 인페르노〉를 만든 사람이고, 이 영화를 로스앤젤레스의 집으로 보이게 하면서 실제로는 산티아고의 어느 집에서 찍었다. 말하자면 이 집은 처음부터 다른 곳인 척하는 집이다. 사진으로 가득한 벽이 그 집의 주인을 좋은 아버지로 보이게 하듯이. 나는 이 겹침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확인한 것 이상을 말하지는 않겠다.
마지막 장면을 쓰지 않으려 했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새벽. 남자는 정원 호스로 묶인 채 마당에 목까지 묻힌다. 돌이 들어 올려지고, 빗나간다. 두 여자는 그것이 게임이었다고, 자기들은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밤에 찍은 영상을 그의 페이스북에 올린다. 사진 설명은 아버지의 날을 기념하며, 라고 달린다. 그리고 전화기를 그의 얼굴 앞 흙 위에 놓는다. 여기다. 밤새 그의 눈이었던 카메라가, 이제 그의 눈앞에 놓인 작은 화면이 된 것이다. 그는 댓글이 달리고 조회수가 오르는 것을 본다. 본다, 라는 동사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그에게 벌이 된다. 그는 밤새 보는 쪽이었고 아침에 보이는 쪽이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자기가 보이는 것을 보는 쪽이 된다. 카메라는 그 순간 그의 눈에 있지 않다. 흙 위의 전화기 화면과 그 화면을 보는 얼굴 사이, 그 짧은 거리에 있다. 두 여자는 개를 데리고 나가고, 영화는 그 영상이 퍼져 나가는 바깥세상을 끝내 보여 주지 않는다. 이 영화가 보여 주지 않기로 한 것은 바깥이다. 대신 가족이 돌아온다. 엉망이 된 집. 화면에는 가족과 집이 있고, 아들이 말한다. 아빠가 파티를 했네. 첫 장면에서 사진을 붙인 시계를 들고 들어왔던 아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그 사진들의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는 쪽에 선다. 카메라는 마지막 순간 남자의 자리를 떠나 집을 보는 쪽에 선 것이다.
나는 이 자리바꿈을 지지한다. 문을 열어 주는 남자의 눈으로 시작해, 그 남자를 보는 전화기 화면을 지나, 그 집을 보는 아이의 자리에서 끝나는 이 순서를, 나는 이 영화가 자기 이야기에 대해 내린 가장 정직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많은 장면이 당신을 불편하게 할 것이고, 어떤 장면은 당신이 견디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카메라의 자리가 옮겨 가는 이 세 걸음만은 지지한다.
마지막 질문은 당신에게 넘기겠다. 당신이라면 그 전화기를 흙 위에 내려놓는 손을 찍었겠는가, 아니면 그것을 올려다보는 눈을 찍었겠는가. 그리고 아이가 들어와 집을 보는 그 마지막 순간, 당신의 카메라는 아이 뒤에 서 있겠는가, 아이 앞에 서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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