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5

노크 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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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는 누가 값을 치르는가

고요한땀· 2026. 10. 13.· 3,028자

나는 시식 코너를 지나치지 못한다. 이쑤시개에 꽂힌 만두 한 조각을 받고, 고맙다고 하고, 사지 않는다. 사지 않는 대신 고개를 두 번 숙인다. 공짜는 돈이 안 드는 것이 아니라 값이 다른 곳에서 청구되는 것이다. 이쑤시개 한 개의 값은 대개 약간의 굴욕이다. 나는 그 값을 매주 치른다.

그런 내게 공짜가 문을 두드리는 영화가 왔다. 2015년의 〈노크 노크〉. 뼈대를 한 문장으로 잡으면 이렇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이 문을 닫지 못하는 영화다. 열어 주는 데는 몇 초가 걸리고, 닫지 못하는 데는 이틀 밤이 걸린다. 그 이틀 사이에 집 한 채가 값을 치른다.

노크 노크 스틸컷

아버지의 날이다. 건축가 에반은 아내와 아이들을 해변으로 보내고 혼자 남는다. 아이들은 사진을 붙인 손수 만든 시계를 선물로 두고 간다. 밤에 비가 온다. 새벽 한 시 가까이 누가 문을 두드린다. 비에 젖은 젊은 여자 둘. 전화가 안 된다, 길을 잃었다, 택시 기사가 버리고 갔다. 그는 수건을 주고, 가운을 주고, 젖은 옷을 건조기에 넣고, 차를 불러 준다. 차는 45분 뒤에 온다. 45분 동안 그는 옛날에 디제이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아내의 작품집을 보여 주고, 여러 번 거절하고, 끝내 거절하지 않는다. 아침. 아내의 조각이 훼손돼 있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자 두 여자는 열다섯 살이라고 말한다. 마사지사가 왔다가 두 여자를 보고 나가 버린다. 그는 조각에 맞아 쓰러지고, 깨어나 보니 묶여 있다. 딸의 교복. 녹화. 조각을 가지러 온 조수 루이스는 흡입기를 빼앗기고 죽는다. 집은 벽마다 낙서고, 거실은 게임 쇼 무대가 된다. 새벽에 그는 정원 호스로 묶인 채 마당에 목까지 묻힌다. 돌이 빗나간다. 영상이 그의 페이스북에 올라간다. 두 여자는 개를 데리고 나간다. 가족이 돌아온다. 아들이 말한다. 아빠가 파티를 했네.

노크 노크 포스터

묶인 채로 그가 소리치는 대사가 있다.

공짜 피자였다고. 그냥 내 집 문 앞에 나타난 공짜 피자였다고. 내가 뭘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

나는 이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피자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피자가 문 앞에 왔다는 것은 누군가 주문했다는 뜻이다. 주문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면 값을 낼 사람도 내가 아니고, 값을 낼 사람이 내가 아니라면 그 피자는 내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셋 중 어느 것도 묻지 않았다. 문 앞에 왔으니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식 코너의 논리다. 다만 시식 코너에는 적어도 판촉 사원이 서 있다. 누가 이 만두의 값을 치르는지 명찰이 알려 준다. 문 앞의 피자에는 명찰이 없다. 상자 안에 영수증이 들어 있고, 영수증은 다음 날 아침에 읽힌다.

문을 열어 준다는 것은 베푼다는 뜻이다. 베푼다는 것은 아쉬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아쉬울 것이 없다는 것은 거절당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거절당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거절이라는 말을 자기 쪽에서만 쓴다. 그래서 그는 여러 번 거절한다. 거절하는 동안에도 수건을 내주고, 가운을 내주고, 건조기를 돌리고, 작품집을 펼치고, 디제이 시절을 이야기한다. 거절과 환대를 동시에 하는 사람은 둘 중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기도 모른다. 집주인의 권력은 문을 여는 데 있지 않다. 언제 닫을지를 자기가 정한다고 믿는 데 있다. 두 여자가 그 집에서 가져간 것은 조각도, 개도 아니다. 그 믿음이다.

45분은 긴 시간이다. 45분이면 라면을 세 번 끓일 수 있고, 지하철로 도시 반대편에 갈 수 있고, 축구 전반전을 다 볼 수 있고, 치과에서 신경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현관 앞에 서 있을 수도 있다. 그는 마지막 것을 하지 않았다. 현관 앞에 서 있는 대신 거실로 들였고, 거실 대신 소파를 권했고, 소파에서 작품집을 폈다. 기다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문 옆에서 기다리는 것과 집 안에서 기다리는 것. 전자는 손님에게 시간을 주고, 후자는 손님에게 집을 준다. 그는 후자를 골랐고, 고른 줄도 몰랐다. 영화는 이 45분을 꽤 길게 보여 준다. 길게 보여 주는 이유는 하나다. 보는 사람도 그 집에 들어와 앉게 하려고.

그러나 여기서 한 번 멈추어야 한다. 이 영화는 남자를 값을 떼먹은 손님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묶인 남자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분명히 강요이고, 영화는 그것을 가리지 않고 보여 준다. 두 여자는 나중에 이것이 게임이었다고, 잠깐은 그가 거절할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게임의 규칙은 이기는 쪽이 정한다. 공짜라는 말도 그렇다. 피자를 공짜라고 부른 사람과 피자를 보낸 사람 중 누가 값을 정했는가. 보낸 쪽은 값을 알고 있었고, 받은 쪽은 공짜라고 믿었다. 이 둘 사이에서 영화는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 대신 영상을 올린다. 영상은 편을 들지 않는다. 조회수만 오른다.

작품 밖으로 한 번 나가 보자. 첫 달 무료. 30일 체험. 가입만 하면 드립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문 앞에 온 공짜를 집 안에 들인다. 카드 번호는 나중에 묻고, 해지는 전화로만 된다. 공짜를 보낸 쪽은 우리가 닫지 못할 것을 알고 보낸다. 받은 쪽은 언제든 닫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을 비웃을 생각은 없다. 나도 세 개쯤 못 닫고 있다. 그중 하나는 영어 회화이고, 영어는 늘지 않았다. 다만 이 영화의 두 여자가 매우 성실한 마케팅 부서처럼 보였다는 것은 적어 둔다. 사전 조사를 하고, 비 오는 날을 고르고, 45분을 기다리고, 체험 기간이 끝나면 정가를 청구하고, 다음 고객을 찾아 떠난다. 다른 점은 해지 전화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아니, 그것도 같다.

그렇다. 공짜 피자는 값이 없는 피자가 아니다. 값을 치를 사람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피자다. 이 영화에서 그 값은 조각 하나, 조수 한 명, 개 한 마리, 그리고 벽에 걸린 사진들 전부였다. 아들이 파티라고 부른 것이 그 청구서다. 영화는 청구서가 어디까지 가는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가족이 집에 들어서는 데서 끝난다. 그 뒤는 보는 사람의 몫이고, 보는 사람은 대개 자기 집 문을 떠올린다.

다음 주에도 나는 시식 코너 앞에 설 것이다. 이쑤시개를 받고 고개를 숙일 것이다. 값을 아는 사람도 받는다. 다만 하나는 안다. 사지 않고 돌아설 때 등 뒤에서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 그 시선이 값이다. 생각보다 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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