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유나바머: 비밀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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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만 보다가 영화가 끝났다

삐딱선· 2026. 10. 11.· 3,018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영화를 거의 종이만 보면서 봤다. 백 분짜리 영화에 하버드도 나오고 몬태나의 오두막도 나오고 폭탄도 나오는데, 내 눈에 계속 걸린 것은 사람들이 뭔가를 적어서 내는 장면, 그 종이를 누가 가져가는 장면, 거기 줄이 그어지는 장면이었다. 1959년, 열여섯 살에 하버드에 들어간 수학 영재가 심리학 연구에 참가 신청을 한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자기가 믿는 것을 적어 낸다. 성실하게 적었을 것이다. 그런 종이는 성실한 사람만 끝까지 채운다.

그 종이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게 된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저 종이 돌려받아야 한다, 지금 당장, 복사본까지'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중학교 때 장래희망란에 적은 문장을 담임이 소리 내어 읽은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종이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맞은편에는 젊은 법학도가 앉는다. 그는 학생이 적어 낸 신념을 한 줄씩 짚어 가며 공격한다. 그동안 학생의 몸에는 센서가 붙어 있고 얼굴은 촬영되고 있다. 자기가 쓴 문장이 자기를 치는 몽둥이가 되는 일을, 이 소년은 삼 년 동안 되풀이해서 겪는다.

유나바머: 비밀 실험 포스터

안내문에는 토론에 참여하게 된다고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 '참여하게 된다'라는 말이 오래 걸렸다. 참여하게 된다니, 누가 시키는지가 쏙 빠진 말 아닌가. 저런 문장은 꼭 나중에 책임질 사람이 없어야 할 자리에 미리 깔려 있다. 안내계의 미끄럼틀 같은 문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웃기려고 이름을 붙였는데 붙이고 나니까 하나도 안 웃겼다.

그리고 그 방에 앉았던 학부생은 이 소년 하나가 아니었다. 스물두 명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나머지 스물한 명을 거의 비추지 않는데, 나는 그 스물한 명이 내내 신경 쓰였다. 그 사람들도 종이를 냈을 것이고, 그 종이도 한 줄씩 공격당했을 것이고, 그중 누군가는 그날 저녁에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기숙사 식당에 갔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유명해지면 같은 방에 있던 사람들은 배경이 된다. 그게 나는 늘 좀 억울하다.

나는 영화가 그 종이들을 끝까지 따라갈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는 자꾸 1990년대로 건너간다. 그쪽에는 FBI 요원이 있고, 회의실이 있고, 남자 동료들이 있다. 그 요원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여러 수사관을 합쳐 만든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그 사람이 나올 때마다 1960년의 그 방이 궁금해서 좀 조급해졌다. 그리고 진지하게 걱정했다. 그 종이들은 지금 어디 있나. 캐비닛인가, 상자인가, 지하 창고인가. (이 연구 기록은 일부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사 쪽으로 건너가면 작명을 하나 만난다. 유나밤. 대학과 항공사와 폭탄, 그러니까 그가 건드린 것들의 머리글자를 떼어 붙여 만든 수사 코드명이다. 나는 이런 작명을 그냥 넘기지 못한다. 이름을 모르니까 피해 품목으로 사람을 만든 것이다. 분실물 보관함 작명법이라고 부르자. (분실물 보관함의 이름표에도 늘 '검정 우산', '회색 장갑' 같은 것만 적혀 있고 주인은 적혀 있지 않다.) 이름이 없는 자리를 품목으로 채우는 버릇은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이름을 십칠 년 동안 불렀는데도 그는 잡히지 않았고, 끝내 그를 드러낸 것은 머리글자가 아니라 그가 쓴 문장이었다.

그가 쓴 글은 3만 5천 단어였다. 나는 이 숫자를 보고 한참 앉아 있었다. 단어 3만 5천 개면 종이로 몇 장쯤 될까. 빽빽하게 눌러 담아도 일흔 장은 될 것이고, 줄 간격을 조금만 띄우면 백오십 장이 넘어간다. 그걸 타자기로 쳤다.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눌러서, 오타가 나면 종이를 빼서 다시 끼워 가며. 열여섯 살에 종이를 빼앗겼던 사람이 서른 몇 해가 지나 백 장이 넘는 종이를 직접 만들어 세상에 보낸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영화보다 산수에 더 오래 붙잡혀 있었다.

그 글이 신문에 실린다. 그 긴 글을 끝까지 읽은 사람 중에 그의 형수가 있었다. 형수는 어딘가 낯익은 말버릇을 느끼고, 그 말을 형에게 한다. 형이 읽고, 형도 안다. 나는 그 집 부엌의 식탁과 형광등과 식어 버린 커피를 봤다. (영화에 그런 장면은 없다. 없는데 나는 봤다.)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 얼굴이 아니라 문장에서 시작된다는 게 좀 무섭고 좀 다정했다. 가족이란 그 사람의 쉼표 위치를 아는 사이인 것이다.

그 방의 소년은 거의 가만히 있는다. 책상을 치지 않고, 울지 않고,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는다. 다음 주에 또 온다. 영화는 삼 년을 몇 장면으로 줄여 놓는데 줄여 놓아도 길게 느껴진다. 저 의자에 앉은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묻지 않고, 대신 기계가 그의 맥박을 적는다. 묻지 않고 재는 것. 그 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 줄로 줄이면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에 책이 한 권 나온다. 《모비딕》이다. 그는 밑줄을 그어 둔 책을 교수에게 건넨다. 밑줄이 그어진 자리는 아무리 철부지 인간이라 해도 바다는 그들을 죽일 것이라는 구절이다. 적어 낸 종이를 빼앗겼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자기가 고른 문장 하나를 손으로 건넨다. 나는 여기서 좀 울었는데 왜 울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돌려주는 방식이 너무 조용해서 그랬을 것이다.

책을 받는 쪽의 얼굴도 좋았다. 영화 내내 그는 묻는 사람이었다. 질문지를 만들고, 자리를 배치하고, 카메라를 켜 두는 쪽. 그러다 마지막에 처음으로 읽어야 하는 쪽이 된다. 남이 그어 놓은 밑줄을 눈으로 따라가야 하는 자리. 그 자리에 앉아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불편한지 안다. 읽는 일은 원래 읽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결국 밑줄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 밑줄은 공격의 준비물이었다. 남이 적어 낸 신념에서 칠 데를 고르는 일. 그다음에 밑줄은 알아보는 방법이 됐다. 남이 쓴 긴 글에서 아는 사람의 자리를 찾아내는 일. 같은 동작인데 방향이 반대다. 사람의 문장에 줄을 긋는 일에는 그 두 가지가 다 들어 있고, 어느 쪽으로 쓸지는 긋는 사람이 정한다. 그게 이 영화에서 제일 오래 남는 말인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책장에서 옛날에 밑줄을 쳐 둔 책을 한 권 꺼냈다. 왜 거기에 줄을 그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우려다가 그냥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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