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4
21 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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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심장, 소총
빨래를 개다가 멈췄다. 화면에서 누가 누구 남편이고 누가 누구를 쳤는지 정리가 안 돼서 수건을 든 채로 십 분을 서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이십 분은 뒤로 돌려 볼까 했다.) 그러다 그냥 놔뒀다. 어차피 이 감독 영화는 정리가 되는 순간이 따로 온다. 그 순간까지 수건이나 개면 된다.
이 영화를 혼자 놓고 보면 이상한 영화다. 같은 감독이 앞뒤로 만든 두 편 사이에 놓으면 그제야 자리가 보인다. 앞에는 2000년작이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자동차 둘이 부딪히고, 그 사고를 사이에 두고 개싸움으로 돈을 모으는 청년과 다리를 다친 모델과 개를 데리고 사는 노인의 세 이야기가 이어진다. 세 폭짜리 그림처럼 세 토막이고, 토막마다 개가 나온다. 뒤에는 2006년작이 있다. 모로코에서 소년 둘이 소총을 시험하다 관광버스의 미국 여자를 맞히고, 그 총이 원래 일본의 한 아버지가 사냥 안내인에게 선물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동안 멕시코 국경과 도쿄의 이야기가 같이 돈다. 사람들은 이 셋을 묶어 죽음 3부작이라고 부른다. 이름이야 누가 붙였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셋이 같은 틀을 쓴다는 것이다. 사고 하나, 모르는 사람 여럿, 섞인 순서.
2000년대 중반에 이런 영화가 꽤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인생이 한 사건으로 묶이고, 관객은 조각을 받아 들고 맞추는 영화. 요즘 OTT 시리즈라면 세 사람에게 한 회씩 주고 마지막 회에서 한 방에 모았을 것이다. 그때는 그걸 두 시간 안에 했다. 그래서 섞어야 했다. 순서대로 하면 세 이야기가 각각 사십 분짜리 단편이 되니까.

그 틀 안에서 이 영화가 다른 둘과 갈라지는 자리가 세 군데 있다.
첫째, 묶는 물건이 안 보인다. 앞 영화는 개다. 뒤 영화는 소총이다. 둘 다 손에 들 수 있고 화면에 찍힌다. 이 영화는 심장이다. 죽은 남편의 심장이 교수의 가슴 안으로 들어가고, 그다음부터 그 물건은 화면에 안 나온다. 그래서 교수는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자기 심장이 누구 것이었는지 알아내고, 그 여자가 다니는 수영장으로 찾아간다. 여자는 수영장이 자기를 살게 한다고 말한다. 앞뒤 두 영화에서는 사고 현장이 사람들을 모았다. 여기서는 사고 뒤에 누가 일부러 걸어가서 만나야 한다. 물건이 몸 안에 들어가 버리니까 사람이 대신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둘째, 제일 작다. 앞 영화는 한 도시 안에서 계층을 셋으로 갈랐고, 뒤 영화는 아예 대륙 셋을 갈랐다. 이 영화는 한 도시, 세 집, 두 시간 조금 넘는 길이. 세 편 중에 제일 짧다. 그런데 섞기는 제일 심하다. 앞뒤 영화가 토막을 섞었다면 이 영화는 장면을 섞는다. 그래서 수건을 들고 십 분을 서 있게 된다. 작은 이야기를 제일 잘게 썰어 놓은 셈이고, 그게 이 영화가 흐름을 따른 곳이자 가장 멀리 나간 곳이다.
셋째, 사고 낸 쪽에 시간을 제일 많이 준다. 앞 영화의 사고는 청년의 차가 낸 것이고 뒤 영화의 총은 아이들 장난이었다. 여기서 사고를 낸 건 전과자고, 영화는 그 뒤를 길게 따라간다. 자수하겠다는 그를 아내가 입 다물라고 말린다. 그는 자수한다. 감옥에서 믿음을 잃는다. 여자가 그를 처벌해 봐야 가족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고소를 거두자 풀려나고, 가족을 떠나 사막 공사장에서 일한다. 보통의 영화라면 이 남자는 사고 장면과 체포 장면, 두 번 나오고 끝이다. 이 영화는 그 사이를 다 보여 준다.
교수의 아내 쪽 이야기도 그렇다. 아내는 남편이 죽기 전에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갖고 싶어 하고, 남편은 아내가 별거 중에 임신 중절을 했었다는 걸 알고 돌아선다. 사고와 상관없는 이야기다. 앞뒤 영화라면 잘라 냈을 것이다. 여기서는 남긴다. 세 집 중 어느 집도 사고 전에 멀쩡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려고, 라고 나는 읽었다.

화면도 셋을 따로 칠했다. 전과자 쪽은 가로등 빛 같은 주황이고 교수 쪽은 푸르스름하며 여자 쪽은 둘을 다 쓴다고 한다. 촬영 쪽 인터뷰를 보면 인물의 형편이 나아질 때는 고운 필름을, 꼬일 때는 거친 필름을 썼다고 했다. 보면서 그걸 알아챈 건 아니다. 알고 나서 떠올려 보니 전과자 장면이 유독 누렇고 거칠었던 것 같긴 하다. 이 정도는 몰라도 되는 정보다.
흐름을 따른 곳은 분명하다. 사고 하나로 셋을 묶고, 순서를 섞고, 끝에 셋을 한 모텔에 모은다. 벗어난 곳도 분명하다. 묶는 물건이 안 보이고, 규모가 제일 작고, 사고 낸 사람과 사고와 상관없는 아내에게까지 시간을 준다. 앞 영화가 개를 보여 주고 뒤 영화가 소총을 보여 줄 때 이 영화는 심장을 못 보여 주니까, 그 대신 사람들을 오래 보여 준 것이다.
그리고 한 군데. 영화 안에서 여러 사람이 다른 자리에서 같은 말을 한다. 삶은 계속된다고. 서로 다른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위로로 들리는 자리가 한 군데도 없다는 게 이 영화가 앞뒤 두 편과 끝내 다른 점이고, 두 시간 동안 조각을 다 맞춘 사람 손에 남는 게 결국 그 흔한 문장 하나라는 사실을 나는 아직 못 넘기고 있다. 계속되긴 한다. 그게 전부다.
빨래는 다 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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