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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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하나」라는 말이 왜 웃긴가

고요한땀· 2026. 11. 03.· 2,716자

「목적지는 하나, 속마음은 다섯」. 이 영화가 자기를 소개하는 문장이다. 포스터에서 이 문장을 읽고 나는 한참 서 있었다. 목적지가 부산이라면 맞는 말이다. 목적지가 요양원이라면, 다섯 중 한 사람만 거기서 내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목적지는 하나가 아니라 한 사람의 것이고, 나머지 넷은 배웅을 하러 가는 중이다. 홍보 문구는 아무 죄가 없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본 뒤에 다시 읽으면 이 문구는 농담처럼 읽힌다. 아마 그렇게 읽으라고 쓴 문장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코미디로 분류되지 않는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순임, 생계를 책임지는 며느리 영주, 영화감독을 꿈꾸는 남편 창욱, 베트남 참전용사 시아버지 만철,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 딸 윤진. 다섯 식구가 낡은 승합차에 타고 부산으로 간다. 108분짜리 가족 드라마다. 그런데 나는 진지하게 찍은 장면 앞에서 몇 번 웃었고, 웃고 나서 한 번씩 미안했다. 미안한 채로 그 장면들을 적어 둔다. 상황의 논리가 그렇게 흘러가서 웃긴 것이지, 누가 우스운 짓을 해서 웃긴 것이 아니라는 점은 미리 말해 둔다.

가족여행 스틸컷
  1. 통닭을 튀기던 사람이 생닭 차에 실려 간다. 순임은 5년 전 쓰러지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통닭을 튀겨 식구를 먹였다. 가족이 급하게 빌린 차는 생닭을 배달하던 낡은 승합차다. 영화는 이 둘을 붙여서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아서 더 그렇다. 평생 닭을 다루던 사람이 이번에는 닭이 실리던 자리에 앉아 어디론가 운반된다. 나는 이것이 우연인지 설계인지 알 수 없는데, 우연이라면 더 무섭고 설계라면 꽤 짓궂다.
  2. 이 집에서 혼자 가장 멀리 간 사람은 치매 환자다. 여행의 발단은 순임이 주간보호센터에서 사라져 한밤중 고속도로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센터는 더 못 맡겠다고 통보한다. 그 뒤로 다섯 식구는 차를 빌리고 짐을 싸고 길을 나선다. 그런데 순임은 이미 혼자 고속도로까지 다녀왔다. 집 안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동안, 길을 잃었다는 사람이 가장 먼저 길에 나가 있었던 것이다. 로드무비의 첫 여행자가 길 잃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가 자기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 준다. 길을 잃는 것과 길을 떠나는 것이 같은 동작이라는 걸 영화는 알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3. 손녀는 종이 상자 관 속에서 가만히 있는 연습을 하고, 할머니는 자꾸 밖으로 걸어 나간다. 윤진은 종이 상자로 관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눕는다. 뱀파이어 흉내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글들은 아이가 집 안에만 있으려 하고 할머니는 계속 밖으로 나가려 한다고 쓴다. 한 집에서 한 사람은 죽은 척을 연습하고 한 사람은 살아 있어서 걷는다. 뱀파이어는 늙지 않고 기억도 잃지 않는 존재다. 기억을 잃는 할머니와 한집에 사는 사춘기 아이가 그런 존재를 흠모하는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상자가 웃겼고, 그 상자가 왜 거기 있는지 짐작이 가서 금방 웃음이 멎었다.
  4. 기억을 잃어 가는 사람이 세월을 노래한다. 영화 중간에 순임이 옛 노래 한 곡을 부른다. 「세월아」라는 제목의 노래고, 같은 곡이 영화 끝에 다시 나온다. 세월에게 말을 거는 노래를 세월이 가장 많이 빼앗아 간 사람이 부른다. 그런데 노래는 끝까지 나온다. 옛 가사는 남고 어제 일은 사라지는 것이 이 병이라고 들었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슬픈 장면이고, 동시에 이 집에서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순임 하나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머지 넷은 각자 속마음을 숨기느라 한 곡을 끝까지 부를 여유가 없다.
  5. 한 사람을 떼어 놓으러 간 길에서 다른 사람을 잃는다. 영화 뒷부분에서 창욱은 해 지는 바닷가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듣는다. 연출을 맡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 장면이 화살촉처럼 정확하게 관객에게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고, 실내와 바닷가 중에서 해질녘의 열린 공간을 골랐다고 했다. 그 장면 자체는 조금도 웃기지 않다. 웃긴 것은 그 앞까지의 수순이다. 가족은 한 사람을 어디에 두고 올지 생각하며 왔는데, 걱정의 대상이 아니던 사람이 먼저 빠진다. 블랙코미디는 보통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계획이 틀리는 것이 아니라, 계획의 과녁이 틀리는 것이다.
가족여행 포스터

그렇다면 이 영화는 자기 안의 우스움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두 연출자 중 다른 한 사람은 치매 환자라고 해서 꼭 슬픈 것만은 아니라고, 그 사람도 자기 세계에서는 즐거울 수 있다고 말했고, 슬프지 않게 찍으려 했다고도 했다. 다섯 명이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한 차에 타는 설정 자체가 농담의 구조다. 다만 영화는 농담을 끝까지 밀지 않는다. 바닷가 장면에서 영화는 정색을 하고, 그 정색이 진심이다. 블랙코미디였다면 거기서 한 번 더 비틀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비틀지 않고 서 있다. 그게 약점인지 품위인지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둘 다일 수도 있다.

웃음 뒤에 따라온 생각은 이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순임이다. 혼자 고속도로까지 가고,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생일을 핑계로 다섯 식구가 한 차에 타게 만든다. 나머지 넷은 거짓말과 꿈과 고집과 종이 상자 안에 각각 갇혀 있다. 치매가 자유라는 말은 아니다. 그런 말은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돌봄을 받는 사람이 돌보는 사람들을 어디론가 움직이게 만드는 구조가 이 영화의 뼈대이고, 그 구조는 조금 우습고 많이 정확하다.

자, 볼까 말까. 치매를 다룬 영화를 피해 온 사람이라면 이 영화부터 봐도 된다. 울리려고 작정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다 보고 나서 포스터의 문장을 다시 읽어 보기를 권한다. 목적지는 하나다. 어느 하나인지는 끝까지 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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