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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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하나」라는 말이 왜 웃긴가
「목적지는 하나, 속마음은 다섯」. 이 영화가 자기를 소개하는 문장이다. 포스터에서 이 문장을 읽고 나는 한참 서 있었다. 목적지가 부산이라면 맞는 말이다. 목적지가 요양원이라면, 다섯 중 한 사람만 거기서 내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목적지는 하나가 아니라 한 사람의 것이고, 나머지 넷은 배웅을 하러 가는 중이다. 홍보 문구는 아무 죄가 없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본 뒤에 다시 읽으면 이 문구는 농담처럼 읽힌다. 아마 그렇게 읽으라고 쓴 문장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코미디로 분류되지 않는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순임, 생계를 책임지는 며느리 영주, 영화감독을 꿈꾸는 남편 창욱, 베트남 참전용사 시아버지 만철,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 딸 윤진. 다섯 식구가 낡은 승합차에 타고 부산으로 간다. 108분짜리 가족 드라마다. 그런데 나는 진지하게 찍은 장면 앞에서 몇 번 웃었고, 웃고 나서 한 번씩 미안했다. 미안한 채로 그 장면들을 적어 둔다. 상황의 논리가 그렇게 흘러가서 웃긴 것이지, 누가 우스운 짓을 해서 웃긴 것이 아니라는 점은 미리 말해 둔다.
- 통닭을 튀기던 사람이 생닭 차에 실려 간다. 순임은 5년 전 쓰러지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통닭을 튀겨 식구를 먹였다. 가족이 급하게 빌린 차는 생닭을 배달하던 낡은 승합차다. 영화는 이 둘을 붙여서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아서 더 그렇다. 평생 닭을 다루던 사람이 이번에는 닭이 실리던 자리에 앉아 어디론가 운반된다. 나는 이것이 우연인지 설계인지 알 수 없는데, 우연이라면 더 무섭고 설계라면 꽤 짓궂다.
- 이 집에서 혼자 가장 멀리 간 사람은 치매 환자다. 여행의 발단은 순임이 주간보호센터에서 사라져 한밤중 고속도로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센터는 더 못 맡겠다고 통보한다. 그 뒤로 다섯 식구는 차를 빌리고 짐을 싸고 길을 나선다. 그런데 순임은 이미 혼자 고속도로까지 다녀왔다. 집 안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동안, 길을 잃었다는 사람이 가장 먼저 길에 나가 있었던 것이다. 로드무비의 첫 여행자가 길 잃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가 자기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 준다. 길을 잃는 것과 길을 떠나는 것이 같은 동작이라는 걸 영화는 알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손녀는 종이 상자 관 속에서 가만히 있는 연습을 하고, 할머니는 자꾸 밖으로 걸어 나간다. 윤진은 종이 상자로 관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눕는다. 뱀파이어 흉내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글들은 아이가 집 안에만 있으려 하고 할머니는 계속 밖으로 나가려 한다고 쓴다. 한 집에서 한 사람은 죽은 척을 연습하고 한 사람은 살아 있어서 걷는다. 뱀파이어는 늙지 않고 기억도 잃지 않는 존재다. 기억을 잃는 할머니와 한집에 사는 사춘기 아이가 그런 존재를 흠모하는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상자가 웃겼고, 그 상자가 왜 거기 있는지 짐작이 가서 금방 웃음이 멎었다.
- 기억을 잃어 가는 사람이 세월을 노래한다. 영화 중간에 순임이 옛 노래 한 곡을 부른다. 「세월아」라는 제목의 노래고, 같은 곡이 영화 끝에 다시 나온다. 세월에게 말을 거는 노래를 세월이 가장 많이 빼앗아 간 사람이 부른다. 그런데 노래는 끝까지 나온다. 옛 가사는 남고 어제 일은 사라지는 것이 이 병이라고 들었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슬픈 장면이고, 동시에 이 집에서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순임 하나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머지 넷은 각자 속마음을 숨기느라 한 곡을 끝까지 부를 여유가 없다.
- 한 사람을 떼어 놓으러 간 길에서 다른 사람을 잃는다. 영화 뒷부분에서 창욱은 해 지는 바닷가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듣는다. 연출을 맡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 장면이 화살촉처럼 정확하게 관객에게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고, 실내와 바닷가 중에서 해질녘의 열린 공간을 골랐다고 했다. 그 장면 자체는 조금도 웃기지 않다. 웃긴 것은 그 앞까지의 수순이다. 가족은 한 사람을 어디에 두고 올지 생각하며 왔는데, 걱정의 대상이 아니던 사람이 먼저 빠진다. 블랙코미디는 보통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계획이 틀리는 것이 아니라, 계획의 과녁이 틀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자기 안의 우스움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두 연출자 중 다른 한 사람은 치매 환자라고 해서 꼭 슬픈 것만은 아니라고, 그 사람도 자기 세계에서는 즐거울 수 있다고 말했고, 슬프지 않게 찍으려 했다고도 했다. 다섯 명이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한 차에 타는 설정 자체가 농담의 구조다. 다만 영화는 농담을 끝까지 밀지 않는다. 바닷가 장면에서 영화는 정색을 하고, 그 정색이 진심이다. 블랙코미디였다면 거기서 한 번 더 비틀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비틀지 않고 서 있다. 그게 약점인지 품위인지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둘 다일 수도 있다.
웃음 뒤에 따라온 생각은 이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순임이다. 혼자 고속도로까지 가고,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생일을 핑계로 다섯 식구가 한 차에 타게 만든다. 나머지 넷은 거짓말과 꿈과 고집과 종이 상자 안에 각각 갇혀 있다. 치매가 자유라는 말은 아니다. 그런 말은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돌봄을 받는 사람이 돌보는 사람들을 어디론가 움직이게 만드는 구조가 이 영화의 뼈대이고, 그 구조는 조금 우습고 많이 정확하다.
자, 볼까 말까. 치매를 다룬 영화를 피해 온 사람이라면 이 영화부터 봐도 된다. 울리려고 작정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다 보고 나서 포스터의 문장을 다시 읽어 보기를 권한다. 목적지는 하나다. 어느 하나인지는 끝까지 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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