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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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원하는 걸 말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밥 주라고!」
이 영화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받아 적은 대사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차 안에서 외친다. 나머지 넷은 각자 다른 걸 원하면서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원하는 걸 말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다섯 식구가 낡은 승합차를 타고 부산에 간다. 108분이다. 사람이 다섯이라 카드도 다섯 장 적었다. 길에서 만난 남자 한 장, 영화 한 장을 보탠다.
순임 · 이휘향
한 일: 5년 전까지 골목 통닭집에서 통닭을 튀겨 식구를 먹였다. 배달을 나갔다가 쓰러졌다. 지금은 주간보호센터에서 사라져 한밤중 고속도로에서 발견되는 사람이다. 생일이라고 부산에 간다. 부산은 고향이다.
하지 않은 일: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묻는 것.
한마디: 밥 주라고. 이 집에서 가장 정확한 요구다.
배우는 이 역을 위해 요양원에서 한 달을 지냈다고 한다. 보도된 사실이라 적는다. 화면의 순임은 불쌍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게 이 영화가 제일 잘한 일이다.
영주 · 서영희
한 일: 생계를 책임진다. 시부모를 모시고 딸을 키운다. 센터에서 더는 못 맡겠다는 통보를 받은 뒤 생일 여행을 제안한다. 거래처 사장한테 차를 빌린다. 생닭 공급업체 차다. 옆면에 홍보 문구와 전화번호가 그대로 붙어 있다.
하지 않은 일: 여행의 진짜 목적을 식구에게 말하는 것. 요양원이다.
한마디: 거짓말을 한 사람인데 이 영화에서 가장 미안해야 할 사람이 아니다.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고, 그들은 뒷자리에 앉아 있다.
연출자 한 사람이 시나리오를 보여 줬을 때 「이런 며느리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의 대답은, 그런 며느리가 없는 건 이런 시어머니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대답이 영화보다 먼저 이해됐다.
창욱 · 김정태
한 일: 10년째 영화감독이 되려고 한다. 됐다는 말은 없다. 느린 승합차에 짜증을 내다가 고속도로에서 다른 운전자와 시비가 붙는다. 그 소동 중에 아버지 입에서 비밀이 나온다.
하지 않은 일: 센터의 통보에 신경 쓰는 것. 아들도 아버지도 그러거나 말거나였다고 영화는 적는다.
한마디: 꿈이 있는 남자는 집에서 제일 바쁜 사람처럼 군다. 제일 한가한 사람이면서.
굼벵이처럼 기는 건 차인데 화는 사람이 낸다. 느린 차가 잘못한 건 느린 것뿐이다.
이 배역을 맡은 배우가 이 영화의 공동 연출자다. 10년째 감독이 못 된 남자를, 이번에 감독이 된 사람이 연기한다. 영화 바깥에서 가장 조용히 웃기는 대목이다.
만철 · 남경읍
한 일: 베트남에 갔다 왔다. 상사로 전역했다. 고엽제 피해자다. 거친 말로 고집을 부린다. 그리고 며느리가 혼자 안고 가던 비밀을 차 안에서 터뜨린다.
하지 않은 일: 먼저 말하는 것. 시비가 붙고 나서야 입을 연다.
한마디: 비밀을 터뜨린 사람이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게 더 무섭다. 알면서 모른 척한 시간이 그 앞에 있었다는 뜻이다.
이 배우는 간담회에서 자기 역을 참전 후유증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 차에는 요양원으로 가는 사람 말고도 떠나는 사람이 한 명 더 타고 있다. 영화는 그걸 처음부터 말해 주지 않는다. 나도 여기까지만 적는다.
윤진 · 홍정민
한 일: 자기를 뱀파이어로 여긴다. 낮에는 햇빛을 받지 않는다. 관에 집착한다. 다만 항상은 아니다. 뱀파이어 모드와 인간 모드를 구분해서 산다.
하지 않은 일: 밖에 나가는 것. 할머니는 자꾸 나가고 손녀는 자꾸 안 나간다.
한마디: 모드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이 집에 이 아이뿐이다. 어른들은 한 모드로 108분을 산다.
왜 뱀파이어가 됐는지 영화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 쪽이다. 나는 그게 좋았다. 사춘기에 이유가 또렷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길에서 만난 남자 · 박상면
한 일: 여행 중에 만철과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 않은 일: 이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들렀다 간다.
한마디: 가족끼리는 못 하는 말이 남 앞에서는 나온다. 이 영화에 남이 한 명은 있어야 했다. 이 사람이 그 남이다.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적지 않는다. 남 앞에서만 나오는 말은 남인 내가 옮기는 순간 또 다른 말이 된다.
가족여행 · 2026
한 일: 치매, 참전, 실패한 꿈, 사춘기, 돌봄을 승합차 한 대에 다 실었다. 부산과 기장에서 찍었다. 연출자 한 사람은 치매를 앓은 자기 어머니의 말과 행동을 일기처럼 적었고, 그 기록이 시나리오가 됐다. 슬프지 않게 찍으려 했다고 그는 말했다. 두 사람이 함께 연출했다. 한 사람은 각본을 썼고, 다른 한 사람은 차 안에 앉아 있었다.
하지 않은 일: 슬픔을 강요하기. 주연 배우가 그 말을 그대로 했다. 슬프지만 슬픔을 강요하면 안 된다고.
한마디: 좋은 영화다. 한 줄 총평은 여기서 다 썼다.
가장 조용한 조각을 적는다. 차 옆면에 붙은 생닭집 전화번호다. 다섯 식구의 사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번호가 부산까지 따라간다. 누가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 닭을 시킬 수 있다. 가족은 못 시킨다.
요양원에 데려다주는 길을 생일 여행이라고 부르는 집. 그 집 다섯이 한 차에 탔을 때 원하는 걸 말한 사람은 한 명이었다. 밥 달라고 한 사람. 나머지 넷이 뭘 원했는지는 영화가 보여 준다. 그걸 서로에게 말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 차에 타고 있었다면 나는 몇 번째로 입을 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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