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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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방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신 분께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나. 병실에서 마사라는 분이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리고 묻고 나서도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가세요. 저는 그 장면에서 이분께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영화 속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분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누구에게도 제대로 대답을 듣지 못한 분이라서요.
병실의 이분은 환자복이 아니라 붉은 티셔츠에 진한 청색 바지를 입고 계셨습니다. 1인실 침대에 누워, 책 사인회를 하다가 친구에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잉그리드 님을 맞으셨어요. 오래 연락이 끊겼던 두 분이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그 옷차림부터 눈에 들어왔어요. 아픈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으셨던 거라고, 저는 그렇게 짐작합니다.
마사 님. 먼저 이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긴 이야기를 하신 건 말이 많아서가 아니었을 거예요. 전쟁터를 오래 다니신 분이 병실에 누워 치료마저 실패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남은 것이 이야기뿐이라는 걸 아마 제일 먼저 아셨을 테니까요. 음악을 듣는 것조차 아프다고 하셨지요. 그런 몸으로 딸의 아버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셨습니다. 젊은 시절 사귀던 남자가 전쟁에 갔다가 돌아와서 예전 같지 않았고, 결국 떠났고, 나중에 불난 집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요. 딸은 그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를 원망하게 되었다고요. 그 긴 이야기를 친구에게 처음 꺼내신 건, 아마 딸에게는 끝내 못 하신 말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이분이 하신 일을 저는 세 가지로 기억합니다.
첫째, 친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같은 방이 아니라 옆방에 있어 달라고요. 같은 방이 아니라는 게 저는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 보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혼자 두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그 부탁은 잉그리드 님에게 처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다른 친구들에게 부탁했고, 거절당한 뒤였어요. 세 번째쯤 되어서야 들어줄 사람을 만난 겁니다. 거절당할 때마다 어떤 마음이셨을지, 영화는 보여 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 빈자리를 메우지 않고 그냥 두려고요.
둘째, 더 치료받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좋은 죽음을 맞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분은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이 선택을 두고 옳다 그르다 말하는 건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분이 약을 구해 두고도 바로 쓰지 않고, 집을 빌리고, 친구와 한 달을 같이 지내는 쪽을 고르셨다는 건 말씀드리고 싶어요. 끝내는 일보다 끝내기 전의 시간을 더 길게 잡으셨어요. 그 한 달 동안 두 분은 가볍게 식사하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셨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들이었어요. 저는 그게 이분이 삶 쪽에 남겨 둔 마지막 자리였다고 믿어요.
셋째, 하지 않으신 일이 있습니다. 어느 아침, 2층의 빨간 문이 닫혀 있었어요. 열려 있으면 살아 있는 것, 닫혀 있으면 떠난 것이라고 두 분이 정해 두셨던 그 문이요. 잉그리드 님은 그 문을 보고 무너졌는데, 알고 보니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마사 님은 그걸 예행연습이라고 부르셨지요. 그런데요, 그날 이분은 친구가 얼마나 놀랐는지 보고도 계획을 바꾸지 않으셨어요. 미안하다고 하지도, 그만두겠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게 차갑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바꾸지 않은 게 오히려 친구를 지키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날 마음이 흔들렸다면 잉그리드 님은 남은 날 내내 자기 때문에 흔들렸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마지막 날, 이분은 샛노란 재킷을 꺼내 입고 집 밖 긴 의자에 누우셨습니다. 그 색을 고르신 마음은 영화가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집에서 두 분이 벽에 걸린 그림 속 사람들처럼 긴 의자에 나란히 누워 해를 쬐던 날이 있었어요. 그 의자를 고르신 거라고,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잉그리드 님 쪽도 잠깐 말씀드려야겠어요. 이분은 부탁을 받고 처음에는 망설이셨습니다. 그러다 받아들인 뒤에는 왜냐고 묻지 않으셨고, 그만두라고 말리지도 않으셨어요. 저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곁에 있는 사람은 대개 뭐라도 하고 싶어지니까요. 묻지 않는 것, 말리지 않는 것, 그저 매일 아침 계단을 올라 문을 확인하는 것. 이분이 마사 님께 드린 건 그것이었습니다.
이분이 들으신 말들을 떠올려 봅니다. 딸에게서는 원망을, 몇몇 친구에게서는 거절을, 그리고 떠나신 뒤에는 경찰이 친구를 믿지 않는 말을 들으셨을 겁니다. 듣고 싶으셨던 말은 아마 아주 짧았을 거예요. 알았다는 말. 옆방에 있겠다는 말. 그 말을 결국 한 사람에게서 들으셨고, 그래서 이 영화는 슬프기만 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 이분의 딸 미셸이 그 집에 옵니다. 어머니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요. 잉그리드 님과 미셸은 그 긴 의자에 나란히 눕고, 눈이 내립니다. 이분이 눈 오는 밤에 외우시던 오래된 소설의 마지막 문장,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위로 똑같이 내린다는 그 눈이요. 딸에게 끝내 하지 못한 이야기를, 옆방에 있어 준 친구가 대신 들려주게 되었을 거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확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장면에서 이분이 비로소 대답을 들으신 것 같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지금 누군가의 옆방에 계신 분이 있다면,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어요. 문을 열어 보는 일보다 계단을 오르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그 계단을 오르고 계신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하고 계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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