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4
셀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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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얼굴로 끝까지 달린 사람
「빨리 와야 해요, 라이언.」 이 말을 영화 내내 듣는다. 다락에 갇힌 여자가 전화 너머로 하는 말이고, 한 리뷰는 거의 모든 장면에 이 대사가 나온다고 꼬집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쪽, 그러니까 라이언을 맡은 배우가 그 재촉을 받을 때마다 어떤 얼굴을 하는지가 이 영화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먼저 고백. 나는 이 영화를 미뤄 둔 지 오래다. 휴대폰 한 통으로 90분을 끈다는 설정이 뻔해 보였고, 주인공이 나중에 큰 영화에서 방패를 드는 배우라는 것도 알고 있어서 괜히 심드렁했다. 아무튼 「셀룰러」를 봤다. 2004년 9월에 미국에서 나온 94분짜리 스릴러다. 납치된 과학 교사 제시카가 부서진 전화기를 이어 붙여 아무 번호나 누르고, 그게 산타모니카 부두에서 놀던 청년 라이언의 휴대폰에 걸린다. 그 뒤로 그는 전화를 끊지 못한 채 로스앤젤레스를 가로지른다.
이 글은 그 배우가 라이언이라는 배역에서 한 선택 세 개만 본다. 배우 개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배역에서 보이는 것만 쓴다.
장면 1 · 부두에서 전화를 받을 때
라이언은 처음에 한심하게 나온다. 친구 채드와 부두에서 휴대폰으로 영상 찍는 얘기나 하고, 방금 여자친구 클로이에게 차였고, 평일 낮에 해변을 어슬렁거린다. 한 리뷰는 이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차였다는 것과 새 휴대폰이 있다는 것뿐이라고 썼다. 대본이 그를 가볍게 써 놓은 건 사실이다.
그 가벼운 사람에게 낯선 여자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장난 전화로 여긴다. 그러다 여자의 말을 믿게 되는데, 이 전환이 문제다. 두 리뷰가 똑같이 지적하길, 대본은 이 사람을 순식간에 영웅으로 만든다. 자연스럽게 설득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다른 배우라면 여기서 흔히 하는 선택이 있다. 목소리를 내리깔고 눈빛을 바꿔서, 이제 진지한 영화가 시작됐다고 관객에게 알리는 것. 이 배우는 그걸 안 했다. 한 리뷰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라이언에게 믿을 만한 만큼의 어색함을 남겨 둔다. 전화를 들고 뛰기 시작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아까 그 한심한 청년이다. 해변에서 놀던 몸 그대로 뛴다.
나는 이게 부러웠다. 진지해지는 척하지 않고 진지해지는 것. 나는 회사에서 급한 일이 떨어지면 일단 표정부터 바꾼다. 일은 그대로인데 얼굴만 바쁘다. 라이언은 반대다. 얼굴은 그대로인데 몸이 먼저 간다.
장면 2 · 휴대폰 가게에서 번호표를 받을 때
배터리 경고가 뜬다. 라이언은 휴대폰 가게로 뛰어 들어가는데, 점원은 번호표를 뽑고 줄을 서라고 한다. 한 유명한 평론가가 이 대목을 두고 사람 약 올리는 거만함이라고 썼을 정도다. 그는 참다가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 차에서 총을 가져와 가게를 턴다. 충전기 하나 때문에.
리뷰들이 가장 많이 꼽는 장면이고, 웃기면서 조마조마하다는 평이 많다. 그런데 한 리뷰는 반대로 이 장면을 문제 삼았다. 그가 총을 꺼내는 데 망설임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두 쪽 다 맞다고 본다. 망설임이 없는 건 대본이고, 그 망설임 없는 행동을 숨이 찬 채로 하는 건 배우다. 2026년에 이 영화를 다시 본 어떤 글은 이 배우가 다음 고비를 어떻게 넘을지 끊임없이 당황하면서 마지못해 영웅 노릇을 한다고 적었다. 바로 그 당황이다. 총을 든 사람이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가게 안의 사람들보다 관객이 먼저 걱정하게 된다. 저 사람 저러다 큰일 나겠다, 하고. 다른 배우라면 총을 든 순간 멋있어졌을 것이다. 여기서는 더 불쌍해진다.
그 뒤에 그는 텔레비전 뉴스에 범죄 행각을 벌이는 청년으로 나온다. 차를 두 대 훔치고 가게를 털었으니 그럴 만하다. 그런데 가게에서 나올 때 미안하다고 하고 충전기 값은 냈다고 한다. 나는 이 사소한 것이 좋았다. 영웅이 되는 중에도 돈은 내는 사람. 좀 그랬다, 이런 데서 감동받는 내가.
장면 3 · 다시 부두, 사람들 사이에 서 있을 때
납치범들은 경찰이다. 제시카의 남편이 우연히 찍은 영상 때문에 가족이 잡혀 온 것이고, 라이언은 그 영상을 손에 넣어 부두에서 가족과 바꾸자고 한다. 영화가 시작한 자리로 돌아온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범인들이 무전기로 인파 속에서 라이언을 찾으며 말한다. 「휴대폰 든 놈이야.」 그런데 부두에는 전부 휴대폰을 들고 있다. 한 리뷰는 이걸 2004년다운 정확한 묘사라고 했고 다른 리뷰는 유치하다고 했다. 나는 배우 쪽을 봤다. 인파 속에 섞여 서 있는 라이언은 이제 더는 당황하지 않는다. 그는 바다로 뛰어들어 부두 밑을 지나기도 한다. 90분 전 해변에서 놀던 몸이 이제 쓸 데를 찾은 셈이다.
가장 좋았던 1초는 마지막이다. 총격이 끝나고 제시카가 그에게 어떻게 보답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라이언의 답. 「다시는 나한테 전화하지 마요.」 농담인데, 나는 그 한 줄이 이 배우가 배역에서 한 선택의 결론처럼 들렸다. 하루 종일 당황하고 뛰고 훔치고 빌었던 사람이 마지막에 하는 말이 멋진 말이 아니라 지친 사람의 말이다. 다른 배우라면 여기서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라이언은 그냥 지쳐 있다. 그게 좋았다.
솔직히 평은 갈린다. 한 평론가는 이 배역이 배우를 별로 만들었다고 했고, 어떤 리뷰는 그냥 무난하다고 했고, 어떤 리뷰는 매력은 있는데 주연감은 아니라고 했고, 어떤 리뷰는 아예 밋밋하다고 했다. 나는 별로 만든 쪽에 손을 든다. 이유는 위에 쓴 대로다. 당황한 얼굴을 끝까지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중간에 한 번쯤은 멋있어지고 싶어지니까.
볼까 말까 묻는다면, 휴대폰이 아직 안 터지던 시절의 조마조마함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보라고 하겠다. 요즘 전화기로는 이 영화가 성립이 안 된다.
라이언, 다음에 전화 오면 받지 마. 그래도 받을 거지. 그래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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