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스트리트 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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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은 연도가 아니라 간판이다

지도대장· 2026. 11. 04.· 3,430자

왜 2026년에 만든 영화가 1993년으로 갈까? 이 영화의 소개 글은 첫머리에 연도를 박아 둔다. 1993년, 류와 켄이 춘리의 제안으로 세계 최강의 파이터들이 모인 대회에 나간다. 원작 게임이 1991년에 나왔으니 2년 뒤다. 영화가 나온 해에서 거꾸로 세면 33년 전이다. 나는 이 숫자부터 들고 들어갔다.

기본 정보부터. 사쿠라이 키타오가 연출했고, 앤드류 코지가 류, 노아 센티네오가 켄, 칼리나 리앙이 춘리다. 제이슨 모모아가 블랑카,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이 독재자를 맡았다. 독재자 이름은 한국 자막에서 베가, 미국판에서 M. 바이슨이라 이 글에서는 그냥 독재자라고 부른다. 두 시간쯤 되고 한국에서는 2026년 10월 14일에 걸렸다. 1987년의 첫 대회는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보여 주고, 1993년부터 실사로 넘어온다.

그때

먼저 1993년이 어떤 자리였는지, 확인한 것만 적는다. 「스트리트 파이터 II」는 1991년 봄 오락실에 나왔다. 영문 백과에 정리된 기록으로는 기판이 22만 대 넘게 팔렸고, 1994년까지 미국에서만 2천5백만 명쯤이 이 게임을 해 봤다고 추정한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이 게임이 오락실의 쓰임을 바꿨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 오락실은 혼자 기계를 상대로 점수를 올리는 곳이었는데, 이 게임부터 옆 사람과 붙는 곳이 됐다. 혼자 하던 줄넘기가 둘이 치는 배드민턴이 되고, 혼자 읽던 책이 둘이 두는 바둑이 되고, 혼자 뛰던 달리기가 마주 보는 탁구가 된 셈이다.

한국도 같았다. 2003년의 한 일간지 기사는 1989년 오락 요금이 50원에서 100원으로 오르고 가정용 게임기가 퍼지면서 비어 가던 오락실에 청소년을 다시 불러들인 게 이 게임이었다고 적었다. 2018년의 게임 매체 기사는 승패를 두고 실제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TV 뉴스가 폭력성 특집을 내보냈다고 전한다. 바다 건너에서는 1993년 9월에 「모탈 컴뱃」이 가정용 기기 네 종으로 한꺼번에 나왔고, 그 무렵 미국 상원이 게임 폭력 청문회를 열어 이듬해 등급 제도가 생겼다. 그러니까 1993년은 격투 게임이 가장 뜨겁고 동시에 가장 미움받던 해다.

영화 속 1993년은 이 사정을 두 장면으로 보여 준다. 하나는 켄의 자리다. 켄은 유명 파이터다. 매니저 단을 두고 음악 방송 코너에 나오고, 건전지와 패스트푸드 광고를 찍고, 사람들 앞에서 맨손으로 자동차를 부순다. 자동차 부수기는 게임의 보너스 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1993년의 오락실 영웅이 현실로 나오면 어디에 서게 되는지 영화는 이렇게 답한다. 광고판 앞이다. 다른 하나는 류의 자리다. 류는 미국 거리에서 라면 수레를 끈다. 장사는 안 된다. 1987년 첫 대회에서 사가트를 꺾은 사람이 6년 뒤 손님 없는 수레 뒤에 서 있다. 같은 게임에서 나온 두 사람이 한쪽은 광고판 앞에, 한쪽은 수레 뒤에 있다. 영화는 이 거리를 1993년의 화면으로 채운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1막에 브라운관 TV를 일부러 많이 넣었다고 했다. 형광빛 색감과 그 시절 노래가 계속 깔린다.

스트리트 파이터 스틸컷

여기서 가설 하나. 이 영화가 1993년을 고른 건 향수 때문이다. 절반만 맞다. 감독이 한 말은 다르다. 가일의 머리나 게임 그대로의 옷 같은 이상한 요소를 지우지 않고 오히려 밑줄 치려면 그걸 받쳐 줄 세계가 필요했고, 그게 90년대 초였다는 것이다. 특정 날짜에 못 박은 게 아니라 「90년대 초이면서 조금 다른 세계」라고 했다. 그러니까 1993년은 추억이 아니라 알리바이다. 가일의 머리가 그렇게 서 있어도 아무도 묻지 않는 세계. 공간으로 보면 이 영화의 1993년은 시대가 아니라 무대 장치다. 그런데 감독은 같은 인터뷰에서 요즘 젊은 세대가 90년대 문화를 멋지다고 여기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절반은 향수가 맞다. 알리바이로 고른 연도를 향수로 팔았다.

지금

2026년에 보면 달리 보이는 지점이 세 군데 있다.

첫째, 대회 자체다. 1991년 게임은 여덟 나라 사람을 한 화면에 세워 놓고 고르게 했다. 영화는 그 선택 화면을 도시 하나로 지었다. 샤달루의 메트롤라오라는 도시에 각국 파이터가 모이고 사회자가 한 사람씩 소개한다. 오락실에서 옆 사람과 붙던 일을 나라와 나라가 붙는 일로 키운 것이다. 그런데 정작 화면에 나오는 경기는 몇 안 된다. 기권과 부전승이 이어져 킥복서 조가 결승까지 올라간다. 1993년의 오락실에서 가장 많았던 건 경기였는데, 영화에는 경기가 가장 적다. 대회를 미끼로 깔아 둔 독재자의 음모, 감옥에 갇힌 블랑카, 류의 힘을 뽑아내는 장치 쪽으로 영화가 가기 때문이다. 오락실을 지어 놓고 뒷방에서 노는 셈이다.

둘째, 1993년의 매너다. 영화는 그 시절의 화면만 가져온 게 아니라 그 시절의 농담도 가져왔다. 인터폴 요원 마빈이 춘리에게 집착하고, 독재자가 사람 외모를 깎아내리고, 블랑카가 겨드랑이 냄새를 맡는 개그가 나온다. 여러 평이 이 대목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썼다. 나는 이게 실수인지 설계인지 모르겠다. 1993년은 격투 게임이 폭력성 때문에 청문회에 불려 간 해다. 그해를 무대로 골랐다면 그해의 거친 농담도 같이 들어오는 게 자연스럽다. 다만 자연스럽다는 말과 괜찮다는 말은 다르다. 2026년의 객석은 1993년의 객석이 아니다.

셋째, 연도 표기의 빈틈이다. 2000년에 나온 노래가 1993년 거리에서 흐른다. 1987년 회상 장면에 1993년 노래가 깔린다. 몇몇 평이 짚은 대목이다. 감독이 「조금 다른 세계」라고 미리 말해 뒀으니 변명은 된다. 그러나 이 빈틈이 말해 주는 게 있다. 영화가 고른 건 1993년이라는 해가 아니라 90년대라는 덩어리다. 브라운관, 형광색, 광고 속 파이터. 특정 연도의 사정이 아니라 한 시절의 인상이다. 그래서 소개 글의 1993년은 숫자라기보다 간판에 가깝다.

스트리트 파이터 포스터

결말은 이렇다. 켄이 대회를 버리고 류를 구하러 가고, 켄이 빠진 결승에서 조가 우승하고, 하늘에서 고우키가 내려와 조를 죽인다. 게임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II X」에서 숨은 보스가 난입하던 일을 그대로 옮긴 장면이다. 류가 어두운 힘을 깨워 고우키를 쓰러뜨리고, 폭주한 류를 켄이 처음 쓴 불꽃 파동권으로 멈춘다. 독재자와는 붙지 않는다. 다음 날 류와 켄과 춘리와 몇 사람이 샤달루를 떠나며 독재자를 치자고 다짐하고 끝난다. 크레딧 중간에 사가트가 독재자 일행을 맞이한다. 여러 평이 3막이 없다고 썼다. 나도 그렇게 봤다. 그런데 1993년 오락실의 끝도 늘 이랬다. 동전이 떨어지면 다음 판을 약속하고 일어났다. 영화는 그 약속의 자세로 끝난다. 좋다는 말이 아니다. 그 시절을 고른 영화가 그 시절처럼 끝났다는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2026년의 영화가 1993년으로 간 이유는 둘이다. 이상한 것들이 이상하지 않게 서 있을 자리가 필요했고, 그 자리를 추억으로 팔 수 있었다. 둘 다 맞고, 둘 다 절반이다. 1993년 오락실에 줄을 서 본 사람은 자기 자리를 알아볼 것이고, 그 줄을 모르는 사람은 형광색 무대만 볼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재미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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