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스트리트 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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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가 공연이라는 걸 들키는 얼굴
결론부터. 이 영화에서 내가 끝까지 본 건 격투가 아니라 한 남자의 허세였다. 그리고 그 허세를 두 시간 동안 한 번도 놓지 않은 배우가 노아 센티네오다. 켄 마스터즈 역이다.
못난 고백을 먼저 하겠다. 나는 잘되는 친구를 보면 축하보다 계산이 먼저 나온다. 저 친구가 저렇게 된 데 내가 못 끼어든 이유를 세어 보는 쪽이다. 그래서 켄이 처음 나올 때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해변 집에 살고, 광고를 찍고, 사람들 앞에서 맨손으로 자동차를 부수고, 북극곰이라며 털옷 입은 사람과 쇼를 하는 남자. 1987년 첫 대회에서 사가트를 꺾은 류는 미국 길거리에서 손님 없는 라면 수레를 끌고 있는데, 그 옆에서 자란 켄은 광고판 앞에 서 있다. 파이터들 사이에서는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라고 영화는 말한다. 나는 그런 남자를 응원할 생각이 없었다.
기본 정보. 사쿠라이 키타오가 연출했고 한국에서는 2026년 10월 14일에 걸렸다. 두 시간쯤, 15세 이상 관람가. 앤드류 코지가 류, 칼리나 리앙이 춘리,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이 독재자(자막은 베가, 영어 대사는 바이슨), 제이슨 모모아가 블랑카, 앤드류 슐츠가 켄의 매니저 단이다. 1993년, 춘리의 제안으로 류와 켄이 세계 최강 파이터들의 대회에 나간다는 게 소개 글이다. 대회는 미끼고 뒤에 독재자의 음모가 있다.
켄을 맡은 배우가 한 선택을 세 장면으로 적는다. 배우 개인이 아니라 이 배역에서 한 일만.
첫째, 호텔 방. 메트롤라오에 도착한 켄이 방문을 열면 류가 앉아 있다. 6년 만이다. 켄은 화를 내며 덤비는데 몸이 안 따라온다. 오래 안 싸운 사람의 몸이다. 여러 평이 이 장면을 오래 묵은 원한이 슬랩스틱이 되는 순간이라고 적었다. 흔한 선택이라면 여기서 멋있게 한 대 치고 서로 노려봤을 것이다. 이 영화의 켄은 헛손질을 하고, 숨이 차고, 그러면서도 입은 쉬지 않는다. 류는 한 마디로 답하고 켄은 열 마디로 묻는다. 한 평은 이 대비를 끊임없는 수다와 단음절의 대답이라고 썼다. 나는 그 수다가 처음에는 시끄러웠고 중반부터는 안쓰러웠다.
둘째, 빗속 뒷골목. 류가 고백한다. 1987년 첫 대회에 켄도 초대받았는데, 질투가 나서 그 초대장을 자기가 없애 버렸다고. 켄이 평생 자기를 2등으로 여긴 이유가 거기 있었다. 켄은 여기서 처음으로 화를 숨기지 않는다. 한 평은 이 장면에서 켄의 분노가 비로소 밖으로 나온다고 썼고, 또 한 평은 이 배우가 켄의 자신감을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공연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썼다. 나도 그렇게 봤다. 광고 속의 웃음, 자동차를 부수던 포즈, 호텔 방의 수다가 전부 이 골목에서 벗겨진다. 싸움은 류의 파동권이 켄을 벽 너머로 날려 버리면서 끝난다. 켄은 파동권을 못 쓴다. 영화가 앞에서 못 박아 둔 설정이다.
셋째, 마지막. 켄은 대회를 버리고 잡혀간 류를 구하러 간다. 결승은 기권으로 넘어가고 킥복서 조가 우승하는데, 하늘에서 고우키가 내려와 조를 죽인다. 류는 어두운 힘을 깨워 고우키를 꺾고 그대로 폭주한다. 그 류를 멈추는 게 켄이다. 생애 처음 쏘는 불꽃 파동권으로. 흔한 선택이라면 이 장면은 둘이 서로 치며 울부짖는 쪽으로 갔을 것이다. 영화는 다르게 간다. 켄은 쓰러진 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채로, 둘이 몸 풀 때 부르던 노래를 부른다. 류가 깨어난다. 내가 고른 가장 좋았던 1초는 노래가 시작되기 직전, 켄이 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까 말까 하는 그 틈이다. 그 1초 동안 켄은 허세를 하나도 쓰지 않는다. 두 시간 동안 들고 있던 걸 거기서 내려놓는다.
이쯤에서 고백 하나 더. 나는 졌다. 이 남자가 시끄러운 건 자신이 없어서였고, 자신이 없는 건 친구가 자기를 지웠다는 걸 몰라서였고, 그걸 알고도 친구를 살리러 갔다. 잘되는 친구를 세어 보기만 하던 나는 그 자리에서 할 말이 없어졌다.
투덜댈 건 투덜대겠다. 격투 대회 영화인데 대회 경기가 제대로 나오는 건 두 번쯤이다. 켄이 복서 발로그를 기술로 이기고 달심을 승룡권으로 꺾는 장면은 볼 만한데, 그 뒤는 기권과 부전승이다. 블랑카는 엄마를 찾는 녹색 괴물로 나와서 한 평은 뜻밖의 깊이가 있다 하고 다른 평은 영화에서 가장 어색하다 했다. 나는 후자였다. 류의 액션이 조연들보다 단조롭다는 지적도 맞다. 좀 그랬다. 그리고 영화는 독재자와 붙지도 않고 다음 편을 약속하며 끝난다.
그래도 켄은 남는다. 어리숙하고 허술하고 수다스러운 켄을 두고, 돌처럼 둔한데 진짜로 웃기다고 쓴 평이 있었고, 우쭐대고 거만한 미국인인데 거슬리지 않을 만큼 매력이 있다고 쓴 평이 있었다. 둘 다 이 배우가 이 배역에서 한 선택을 말하고 있다. 잘난 금발 부자를 멋있게 연기하는 쉬운 길을 두고, 멋있어 보이려 애쓰는 사람을 연기했다. 그게 더 어렵다는 걸 나는 알고 있어서 부럽고 얄밉다.
아무튼 「스트리트 파이터」를 봤다. 켄, 다음 편에서도 그 노래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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