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여전히 찬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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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이라는 숫자의 이력서

고요한땀· 2026. 11. 04.· 2,790자

1942년 깊은 산골의 두 소녀는 열일곱이다. 2010년의 순옥은 여든다섯이다. 그 사이에 1991년이 하나 끼어 있다. 이 영화에는 숫자가 셋 나오는데 늙지 않는 숫자는 하나다. 열일곱이란 무엇인가. 이 글은 그 숫자 하나의 이력서다. 등장한 순서대로 적는다.

기본 사실부터. 송일곤이 연출했고 이혜숙의 희곡이 바탕이다. 118분, 12세 이상 관람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된 뒤 2026년 10월 21일에 개봉했다. 김혜자가 노년의 순옥, 차미경이 노년의 정임, 박서경과 최주은이 열일곱의 순옥과 정임, 문성현이 소년 두영, 조성하가 이장 곽씨, 이세영이 손녀 지안이다. 중간에 뮤지컬 장면이 있고, 이 글은 결말까지 적는다.

1942년, 처음 등장

산등성이에서 정임이 노래하고 순옥이 박수를 친다. 열일곱이 이 영화에 처음 나타나는 모습이다. 두 소녀는 한글을 모르고 악보도 못 본다. 그런데도 서울에 가서 한 사람은 가수가 되고 한 사람은 단장이 되자고 약속한다. 약속을 글로 쓸 수 없으니 몸에 새긴다. 서로의 팔에 증표를 새기고 누군가 말한다. 「이제 우리 몸에 새겼으니까는 우리는 항시 함께 있는기다」. 열일곱의 재산 목록을 적어 보면 이렇다. 노래 한 곡, 글자 모르는 손, 팔의 흠집 하나, 그리고 두영과 정임이 수줍게 나눈 좋아한다는 말. 재산 목록으로는 빈약하고 이력서로는 완벽하다. 열일곱은 가진 것이 아니라 약속한 것으로 이루어진 나이라는 뜻이다.

마을에는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며 소녀들을 데려간다는 소문이 돈다. 두 소녀는 화장막에 숨는다. 글자는 두영에게 배운다. 죽은 사람을 태우는 집 근처에서 글자를 배우는 열일곱. 나는 열일곱에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 봤다.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하는 법을 배웠다.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여전히 찬란하게 스틸컷

1991년, 경력 공백

다음 등장은 반세기 뒤다. 1991년 가을, 노년의 순옥은 카세트테이프로 「이태리의 정원」을 듣는다. 열일곱의 정임이 산등성이에서 부르던 노래다. 순옥은 정임을 다시 만났고, 둘은 서울의 노래자랑에 나가 그 노래를 부르려고 준비한다. 열일곱이 한 약속을 예순여섯이 이행하러 가는 셈이다. 그 노래는 1936년에 음반으로 나온 당대의 유행가다. 열일곱의 정임이 산에서 불렀을 때 노래는 여섯 살이었고, 1991년에는 쉰다섯이다. 노래도 늙는다. 사람보다 느리게 늙을 뿐이다. 그런데 정임이 자꾸 잊는다. 어디 가기로 했는지를 잊고, 끝내는 자기가 누구냐고 묻는다.

여기서 숫자가 어긋난다. 1942년에서 1991년은 49년이다. 두 사람은 같은 나이여야 하는데, 정임을 맡은 배우는 순옥을 맡은 배우보다 스무 살 가까이 젊다. 영화는 이 차이를 분장으로 덮지 않는다. 한 평은 이 나이 차에서 순옥의 간절함이 느껴진다고 썼다. 나는 처음에 그걸 캐스팅의 사정으로 읽었고, 그렇게 읽은 나를 영화가 뒤에서 바로잡았다. 열일곱의 이력서에 적힌 경력 공백은 49년이 아니었다.

2010년, 사실은 공백이 아니었음

1991년은 진짜가 아니다. 정임은 일본군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고, 노래자랑을 준비하는 두 노인의 가을은 2010년에 여든다섯이 된 순옥이 치매 속에서 그려 낸 시간이다. 한 평은 희미해지는 기억에 대한 두려움과 정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순옥의 시간을 1991년에 멈춰 세웠다고 썼다. 그렇다. 그러면 숫자가 맞는다. 1991년의 정임이 순옥보다 젊어 보인 이유는, 그 정임이 열일곱에서 억지로 늙힌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상은 자기가 본 것까지만 늙힐 수 있다. 순옥이 본 정임은 열일곱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상상 속 정임은 덜 늙었고, 그래서 자꾸 잊는다. 잊는 것은 정임이 아니라 그 정임을 만든 머리다. 이것은 내 풀이고, 영화가 이렇게 말한 적은 없다.

2010년의 순옥은 손녀 지안에게 말한다. 「너무 아까워 내 친구, 열일곱 정임이」. 그리고 「내가 가면 내 친구 기억할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열일곱이라는 숫자를 입 밖에 내는 사람은 여든다섯이다. 숫자는 그 나이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 나이에 누군가를 두고 온 사람이 센다. 1991년이 현실에서 어떤 해였는지도 적어 둔다. 피해자가 처음으로 공개 증언에 나선 해다. 영화는 그 연도를 설명하지 않는다. 열일곱에 끌려간 사람들이 처음 말하기 시작한 해에, 순옥은 열일곱의 약속을 지키러 서울에 가는 상상을 한다. 이 겹침이 우연일 리는 없는데, 영화가 그걸 말로 하지 않은 것은 옳았다.

여전히 찬란하게 포스터

크레딧, 마지막 등장

여든다섯의 순옥이 열일곱의 정임을 만나는 장면이 후반에 있다. 감독은 이 장면을 찍으며 현장에서 전율을 느꼈고, 주연 배우가 만족하지 못해 테이크를 더 갔다고 했다. 순옥이 마지막에 건네는 말은 기억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크레딧에 열일곱의 정임이 달빛 아래 노래하며 웃는 장면이 붙는다. 노래로 열었으니 노래로 닫겠다는 감독의 말이 있었다. 열일곱의 순옥을 맡은 배우는 촬영 당시 실제로 열일곱이었다고 한다. 숫자가 한 번은 영화 밖에서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열일곱이 열일곱을 연기한 장면을 여든다섯이 보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내 읽기를 한 번 의심한다. 나는 열일곱을 늙지 않는 숫자라고 썼다. 그러나 정임은 열일곱에서 멈춘 것이 아니다. 끌려간 뒤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은 영화 밖에 있다. 멈춘 것은 정임이 아니라 순옥의 셈이다. 순옥은 친구의 시간을 열일곱에서 멈춰 세웠고, 그래야 기억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나머지 세월을 혼자 셌다. 제목의 「여전히」는 그 셈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아마.

기억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숫자를 멈추는 일인가, 그 사람 몫까지 세어 주는 일인가. 순옥은 둘 다 했고, 나는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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