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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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다시 쓰기까지

고요한땀· 2026. 10. 24.· 2,648자

안경이란 무엇인가. 눈이 나쁜 사람이 쓰는 물건이다. 나는 그렇게 알고 살았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안경은 시력과 상관이 없어 보인다. 쓰고 있으면 무릎을 꿇고, 벗으면 사람을 제압한다. 그래서 안경 하나만 따라가 보려고 한다. 열 회를 다 보고 남은 것이 안경이라니, 안경이 아니라 내 눈이 문제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올여름 SBS에서 금요일과 토요일에 열 회로 방송한 드라마다. 웹툰이 원작이라고 한다. 저축은행 회계팀 부장이 사라진 딸을 찾는 이야기인데, 안경의 이력서로 다시 쓰면 네 줄이 된다.

1. 쓰고 있을 때

처음에 그는 안경을 쓰고 있다. 상생저축은행 회계팀 부장. 낡은 서류 가방과 평범한 양복. 공식 인물 소개는 그를 「갈라진 발꿈치와 굽은 어깨」로 요약한다. 발꿈치가 갈라진 사람과 안경을 쓴 사람은 겹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내 가설인데, 근거는 거울 속의 나 하나다.

퇴근길에 건달들에게 맞는다. 맞고 나서 자기가 사과하겠다고 한다. 새벽에 딸의 아침밥을 차리고 교복을 다린다. 딸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다 싸움이 났고, 상대 아이의 아버지는 건설회사 회장이다. 학교에 불려 간 그는 회장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딸이 묻는다. 「아빤 왜 내 편이 아니야.」 그는 안경을 쓴 채로 그 말을 듣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좀 불편했다. 무릎 꿇는 아버지가 창피해서가 아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어도 똑같이 꿇었을 것이고, 다른 점은 하나다. 나는 안경을 벗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안경을 벗어도 세상이 그대로인 사람이 세상의 대부분이다. 이 드라마는 그 대부분이 아닌 한 사람의 이야기고, 그래서 보는 것이다.

김부장 스틸컷

2. 벗을 때

딸이 밤새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딸을 학교 후문으로 유인한 아이를 찾아간다. 1회의 마지막 장면이다. 안경을 벗는다. 순식간에 제압하고 묻는다. 「우리 민지 어딨어.」 그가 북파 임무를 열일곱 번 수행한 특수공작원이었고 코드네임이 66이었다는 사실이 이때 나온다.

이 장면이 소름 돋았다는 평이 많았다. 나도 돋았다. 다만 돋고 나서 생각이 한 칸 갔다. 건달들에게 맞을 때는 벗지 않았다. 무릎을 꿇을 때도 벗지 않았다. 자기가 맞는 것은 참고, 딸이 없어지는 것은 참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안경은 시력을 고치는 물건이 아니라 참는 것을 도와주는 물건이다. 쓰면 눈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참아지는 안경. 그런 것이 있다면 나도 하나 사고 싶다. 출근용으로.

2회에서 그는 경찰서 조사실에 앉아 있다. 딸의 시체를 처리했다는 메시지를 보고 체념한 채 끌려간 사람이다. 거기서 딸의 번호로 전화가 온다. 형사들을 제압하고 수화기를 들어 딸이냐고 묻는다. 이 장면에서 그가 안경을 썼는지 벗었는지 나는 확인하지 못했다. 솔직히 얼굴만 봤다. 사물 하나로 전부 읽겠다고 해 놓고 사물을 놓쳤다. 이 글의 신뢰도는 여기서 한 번 깎인다.

3. 벗은 채로

4회. 총을 맞고도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지혈한다. 살아만 있으라고 되뇌며 항구로 달린다. 딸은 냉동창고에 있다. 6회. 안보 차관을 제압한 채 나타나 딸에게 말한다. 「아빠 왔다. 이제 집에 가자.」 7회. 딸을 돌려보낸 뒤 스스로 투항한다. 감금실에서 누군가 그에게 주사기를 꽂고, 눈을 뜨면 북한의 고문실이다. 고문 기술자가 고향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며 그를 66이라고 부른다.

안경을 벗은 동안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 번호로 불린다. 그 번호가 원래 그의 것이 아니라 옛 동료의 것이었다는 설정도 나온다. 안경을 벗으면 이름이 번호가 되고, 번호는 남의 것이다. 안경을 벗은 그는 자기 자신도 아닌 셈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나는 내 해석을 의심한다. 격투할 때 안경이 걸리적거려서 벗는 것일 수도 있다. 안경을 쓰고 싸우는 사람은 안경이 깨지기 마련이고, 소품을 아끼려는 제작진의 결정이었다고 해도 나는 반박할 자료가 없다. 상징을 읽는 사람의 약점은 상징이 아닌 것도 읽는다는 데 있다. 안경을 쓴 사람의 약점과 비슷하다. 잘 보이니까 없는 것도 보인다.

김부장 스틸컷

4. 다시 쓸 때

10회. 친구들의 아이들이 인질로 잡히고, 그는 친구 둘에게 일부러 맞아 주면서 빠져나갈 길을 찾는다. 회장을 죽지 않을 만큼만 때리고 건물 옥상에 매달아 둔다. 회장은 구속되고 건설회사는 무너진다. 그리고 특수임무국이 그를 사망 처리한다. 유골함이 나온다. 9회 예고에 유골함이 비쳐서 죽는 결말이냐는 말이 돌았는데, 유골함은 진짜였고 죽음은 가짜였다. 서류에서 죽어야 자유가 되는 사람이다.

납골당에서 울고 있던 딸 앞에 그가 나타나 다녀왔다고 말한다. 딸은 새 이름을 받는다. 지민. 민지를 뒤집은 이름이다. 둘은 새 집으로 이사하고 친구 둘이 이삿짐을 든다. 그리고 세 아저씨가 안경을 다시 쓴다. 마지막에 그는 소개받은 인력사무소에 첫 출근을 한다. 그가 올려다볼 만큼 큰 남자가 실력을 봐야겠다고 한다. 안경을 다시 쓴 뒤의 일이다. 다음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안경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짧을 줄은 몰랐다. 안경을 쓴 사람은 살아 있고, 벗은 사람은 번호이고, 다시 쓴 사람은 서류상 죽은 사람이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어딘가에 사망 신고가 되어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나도 어디 서류에 죽어 있어서 이렇게 평범한 걸까.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확인하면 평범하지 않아질 것 같아서다.

추신. 안경을 쓰고 싸우면 안경이 깨진다는 말은 내 경험이 아니다. 나는 싸운 적이 없다. 안경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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