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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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억짜리 빈말

무뚝뚝· 2026. 10. 24.· 2,228자

현금 이십억. 이 드라마에서 제일 솔직한 대사가 그거였어요. 조직폭력배가 건설회사 회장한테 던진 요구인데, 열 회 동안 나온 말 중에 뜻이 딱 하나인 말은 그것뿐이더라고. 나머지는 다 멋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멋 들어간 말 세 개를 골라서, 그 말 대신 화면에 실제로 뭐가 있었는지 적어 볼게요.

올여름 SBS 금토에 열 회로 나간 드라마예요. 저축은행 회계팀 부장이 딸을 잃고 찾아다니는 얘기고, 원작은 웹툰이라고 들었어요. 나는 웹툰은 안 봤어요. 본 것만 말할게요.

그들이 한 말 하나. 중년 아재들의 통쾌한 반란, 사이다 액션극

소개글에 그렇게 써 있어요. 통쾌, 사이다. 그런데 2회를 보세요. 아버지가 깡패 부하 하나를 붙잡아 다리에 총을 쏘면서, 딸이 살아 있다고 믿으니까 너를 살려 두는 거라고 해요. 그러고 나서 단체 대화방에 그 여자애 시체는 처리했다는 메시지가 떠요. 그 사람은 거기서 멈춰요. 경찰이 오니까 그냥 끌려가요. 조사실에서 말도 안 해요.

이게 통쾌해요? 나는 안 그랬어요. 통쾌는 보는 사람 쪽 단어예요. 저 사람은 하나도 안 통쾌해요. 사이다는 마시는 사람이 시원하지, 병은 비어요. 이 드라마에서 병 쪽이 저 아버지예요. 5회에서 냉동창고에서 겨우 빠져나온 딸을 눈앞에서 또 놓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고 반란이라는 말을 쓸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건 반란이 아니고 미아 찾기예요. 전단지 붙이는 대신 총을 쓰는 것뿐이지.

김부장 스틸컷

그들이 한 말 둘. 「촉법소년 표현 좋네. 그럼 나는 무법중년 해야겠다」

이 대사가 화제가 됐어요. 말은 좋아요. 라임도 맞고. 그런데 무법이 실제로 뭐였는지 4회가 보여 줘요. 총을 맞았는데 병원에 못 가요. 가면 잡히니까. 혼자 지혈을 해요. 그러고 살아만 있으라고 중얼대면서 항구로 달려요. 그 옆에서 친구 하나는 프라이팬으로 총알을 막겠다고 들고 서 있고, 다른 친구는 뒤집힌 차 안의 동료한테 간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강물로 뛰어들어요.

법 밖으로 나가면 제일 먼저 없어지는 게 병원이에요. 그다음이 월급이고. 저 사람은 회계팀 부장이에요. 출근을 안 하면 월급이 안 나와요. 드라마는 그 얘기는 안 해요. 안 해도 나는 보여요. 저축은행 월급으로 딸 키우던 사람이 월급 끊기고 피 흘리면서 뛰는 거예요. 무법중년이라는 말은 멋있는데, 화면에 있는 건 멋이 아니고 손이에요. 피 멈추게 누르는 손. 나는 그 손이 대사보다 나았어요.

7회에서는 딸을 돌려보내고 스스로 잡혀 가요. 가기 전에 딸하고 생일상 앞에 앉아서 자기 과거를 털어놓고, 딸은 씩씩하게 기다릴 수 있다고 해요. 그러고 북으로 끌려가요. 무법의 끝이 그거예요. 멋있는 말 한 줄의 값이 그만큼이에요.

김부장 스틸컷

그들이 한 말 셋.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이건 회장 대사예요. 딸을 감싸느라 사람을 몇이나 망가뜨리고 하는 말이에요. 9회에서는 더 솔직하게 말해요. 「나도 내 딸을 위해서 널 제거한다.」 두 아버지가 같은 말을 하는 거예요. 딸을 위해서. 그런데 그 말 아래에 있는 장면이 달라요. 한쪽은 자기 피를 눌러요. 다른 쪽은 남의 이빨을 뽑아요.

4회에 그 장면이 있어요. 조직폭력배가 옛날에 회장한테 죽을 뻔했던 일로 따지러 갔다가 거꾸로 제압당해요. 회장 비서가 삶은 감자를 입에 물리고 이를 뽑아요. 그 사람은 바닥에 엎드려서 개가 되겠다고 해요.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이 나중에 회장 딸의 녹음을 조작해서 현금 이십억을 부르는 거예요. 이빨 뽑힌 값이 이십억이에요.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서 돈 얘기는 그 사람만 솔직하게 해요. 나는 그 사람이 제일 알아듣기 쉬웠어요. 나쁜 사람인데 말은 안 꼬아요.

회장은 끝까지 안 꼬이는 척하면서 꼬아요. 마땅히 해야 할 일. 그 말로 딸 대신 조폭을 범인으로 만들고, 친구들 아이를 인질로 잡고, 마지막엔 케이지 안에 세 아버지를 넣고 오 분을 줘요. 그 사람 입에서 딸을 위해서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이십억이 생각났어요. 세상에서 제일 비싼 빈말이 그거예요. 딸을 위해서.

결말은 아시는 대로예요. 회장은 잡혀가고 회사는 무너지고, 아버지는 서류에서 죽은 사람이 돼요. 그래야 쫓기지 않으니까. 딸은 이름을 바꿔요. 친구들이 이삿짐을 들어 주고, 아버지는 소개받은 인력사무소로 첫 출근을 해요. 저축은행 부장이 인력사무소 직원이 된 거예요. 글쎄, 그걸 이겼다고 해야 할지.

통쾌한 반란이라고 써 있던 자리에 내가 본 건 이거예요. 딸 하나 집에 데려오는 데 아버지는 월급을 잃고 서류에서 죽었고 딸은 이름을 잃었어요. 비싼 거예요. 그게 이긴 건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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