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왕과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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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1457년, 강원도 영월의 산골입니다. 광천골의 촌장은 유배 온 양반을 받으면 마을에 재물이 돈다는 말을 듣고, 제 마을을 유배지로 써 달라고 관아에 매달립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대감을 우리 광천골로 오게 해야지." 그렇게 가마가 하나 들어오죠. 내려선 사람은 얼마 전까지 왕이었던 소년, 이홍위입니다.
영화는 그 소년이 자리에서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궁을 나서며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하고 묻는 소리가 먼저 깔리고요. 그러니까 이 영화가 따라가는 건 권좌가 아니라 거처입니다. 빼앗긴 자리를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밀려난 사람이 어디에 몸을 두고 누구와 지내는가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죠.
장항준이 연출하고 황성구와 함께 각본을 썼습니다. 117분이고 쇼박스가 배급했습니다. 단종을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놓은 한국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죠. 포스터에는 "역사가 지우려 했던 이야기"라고 적혀 있습니다. 문구는 꽤 비장한데, 정작 영화는 그만큼 비장하게 굴지 않습니다.
이런 설정은 대개 두 갈래로 갑니다. 하나는 궁에 카메라를 두고 계유정난 이후의 셈법을 따라가는 정치극이고요. 다른 하나는 유배지의 소년과 촌부가 서로를 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망설이지 않고 두 번째를 고릅니다. 궁은 가끔 들르는 곳이고, 카메라는 거의 내내 마을에 있어요.
어린 왕이 나오는 사극에서 그 아이는 대개 두 가지 용도로 쓰입니다. 어른들이 다투는 동안 옥좌에 앉아 있어 주는 상징이거나, 끝에 가서 우는 장면을 맡는 쪽이죠. 이 영화는 소년을 무력한 자리에 오래 두지 않습니다. 겁에 질린 얼굴에서 출발하긴 하는데, 결정을 내리는 얼굴 쪽으로 계속 옮겨 가요. 그 이동에 가장 공을 들인 영화입니다.
아쉬운 건 첫 번째를 버렸다는 쪽이 아닙니다. 유배지를 유치하면 마을이 산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꽤 구체적인 이야기거든요. 누가 쌀을 대는지, 군수는 무엇을 적어 올리는지, 보수주인이 된 촌장은 맡은 사람이 상했을 때 어디까지 책임을 지는지. 영화는 그 장부를 몇 장 넘기다가 덮고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쪽으로 넘어갑니다. 유배가 한 마을의 살림이 되는 대목, 그러니까 사람 하나를 맡아 두고 받는 대가로 동네가 굴러간다는 구조를 조금만 더 밀고 갔으면 이 영화는 다른 영화가 됐을 거예요. 틀린 선택은 아닌데, 열어 둔 서랍 하나가 닫힌 채로 남습니다.
마을 쪽 반응은 초반이 제일 좋습니다. "양반이 우리를 도와준다고요? 그런 양반을 본 일이 있습니까?" 이 한마디에 이 동네가 양반을 겪어 온 내력이 다 들어 있죠. 영화는 이 불신이 풀리는 과정을 선언이나 눈물이 아니라 밥과 일로 처리합니다. 설명을 덧대지 않아서 이 대목은 꽤 단단한 편이에요.

촬영은 영월 선돌과 문경새재 세트에서 했다고 합니다. 눈에 띄는 건 유배지가 감옥처럼 지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에요. 담장도 자물쇠도 없는 산골이고, 그런데도 아무도 떠나지 못합니다. 가두는 것이 울타리가 아니라 지형과 신분이라는 걸 굳이 대사로 설명하지 않는 쪽을 택했습니다.
통하는 건 권력이 사람을 쓰는 방식입니다. 한명회는 소년을 직접 건드리는 대신 그 곁부터 손을 봅니다. 촌장의 아들을 본보기로 끌어내 거의 죽여 놓는 장면이 그렇죠. 왕이었던 자의 몸이 아니라 그 옆에 선 사람들의 몸으로 값을 치르게 하는 겁니다. 사극이 보통 대사로 때우는 자리를 여기서는 장면 하나가 대신합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을 왕좌에 앉힌 일등 공신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그는 이미 다 이긴 사람이고, 서두를 이유가 없죠. 이긴 쪽이 느긋하게 구는 모습이 쫓기는 쪽의 조바심보다 무섭다는 걸 아는 배치입니다. 사극이 악역에게 곧잘 허락하는 과장된 웃음이 여기엔 없어요.
유지태는 목소리를 거의 높이지 않습니다. 자세와 시선만으로 방의 온도를 정해 놓죠. 유배지에서 소년의 눈빛이 달라진 걸 알아채고 그를 계속 지켜보는 인물인데, 그 지켜본다는 동사를 연기로 보여 줍니다. 과장이 없어서 오히려 더 성가신 사람으로 남아요.

걸리는 건 리듬입니다. 컷이 잦고, 감정이 올라오는 자리마다 웃기는 대목이 한 번씩 끼어들어요. 농담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소년이 무너지는 대목과 마을이 웃는 대목을 비슷한 간격으로 이어 붙이다 보니, 쌓이던 것이 몇 번 흩어집니다. 특히 초반 편집이 좀 바쁩니다.
후반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손님의 정체가 드러난 뒤로 영화는 여러 결을 빠르게 오가요. 마을의 소동이었다가, 궁 쪽의 셈법이었다가, 다시 쫓기는 이야기가 됩니다. 각각은 멀쩡한데 사이를 잇는 마디가 얇아서, 감정이 다음 장면까지 따라붙지 못하는 구간이 몇 번 생깁니다.
박지훈은 분노와 두려움과 죄책감을 한 얼굴에 겹쳐 놓고 시작합니다. 뒤로 갈수록 그 얼굴에서 겁이 빠지고 결심이 들어서죠. 대사로 선언하는 대신 눈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여러 번 있습니다. 촛불 앞에 앉아 붓을 드는 장면이 그 변화를 가장 조용하게 보여 줘요.

유해진은 생활 연기로 극의 바닥을 깔아 둡니다. 셈을 하던 사람이 정이 드는 순서를 서두르지 않고 한 칸씩 밟아요. 문제는 그 옆자리입니다. 걸음마 때부터 소년을 돌봤다는 궁녀 매화는 지키는 자리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촌장의 아들도 사건이 필요할 때 불려 나옵니다. 이름과 대사를 가진 인물은 여럿인데, 제 쪽 사정을 따로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아요.
끝은 역사가 이미 적어 두었고 영화도 그 끝으로 갑니다. 복위를 노린 움직임은 무너지고, 소년은 돌아가지 못합니다. 결말을 아는 관객을 앞에 두고 서스펜스를 짜는 대신, 이 영화는 아는 결말까지 가는 길을 천천히 걷는 쪽을 택했어요. 그래서 후반을 끌고 가는 건 반전이 아니라 각오입니다. 이 영화가 하려던 건 결말을 바꾸는 쪽이 아니라 그 옆에 누가 서 있었는지를 적어 두는 쪽이었을 겁니다. 그 정도면 됐죠.
(덧) 포스터에 이름이 오른 특별출연이 셋입니다. 영월군수, 금성대군, 그리고 이웃 마을 촌장이죠. 셋 다 잠깐 나와 제 몫을 하고 사라지는데, 그 짧은 출연들이 마을 바깥의 지도를 대신 그려 줍니다.
(덧) 초반에 호랑이가 한 마리 나옵니다. 그 CG를 두고 말이 좀 나왔고, 배급사도 뒤에 손보겠다고 했죠. 사극에서 호랑이는 예나 지금이나 비싼 동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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