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왕과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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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 유치 신청과 그 후속 조치에 관한 보고

예민한책장· 2026. 10. 10.· 3,061자

우리 동네 사거리에는 현수막이 상시 두 장 걸려 있다. 한 장은 무엇인가의 유치를 결사 관철하겠다는 내용이고, 다른 한 장은 같은 것의 유치를 결사 반대하겠다는 내용이다. 무엇을 유치하자는 것인지는 두 현수막의 글자가 서로 겹쳐 있어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다만 양쪽 모두 우리 동네의 미래를 걸고 계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유치에 성공하면 동네가 산다고 하고, 유치를 막아 내도 동네가 산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동네는 어느 쪽으로 가도 사는 것인지, 아니면 현수막이 걸려 있는 동안만 사는 것인지, 나 같은 민간인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튼.

〈왕과 사는 남자〉 되겠다. 1457년 강원도 영월의 산골 마을 광천골의 촌장님께서, 유배 온 양반 한 분만 모셔 오면 그 댁에서 쓰는 쌀이며 베며 사람이며가 죄 마을로 흘러들어 동네가 단박에 펴진다는, 출처는 알 수 없으나 대단히 설득력 있는 소문을 들으시고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대감을 우리 광천골로 모셔 와야겠다고 결심하신 끝에, 제 마을을 유배지로 써 달라고 관아에 몸소 자청하여 마침내 가마 한 채를 유치해 내시는 이야기 되겠다. 요컨대 조선 초기의 지역 개발 사업 되겠다.

문제는 가마에서 내리신 분이 양반 정도가 아니었다는 데 있다. 얼마 전까지 이 나라의 임금이셨던 소년, 이홍위 되시겠다. 유치에는 성공했는데 유치해 온 것이 너무 컸던 것이다.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영화 좀 보셨다는 분들께서는 여기서부터의 전개를 능히 맞히실 것이다. 처음엔 서먹하고, 다음엔 오해가 있고, 오해가 풀리는 계기로는 하필 누가 앓아눕고, 하필 한밤중이고, 하필 약이라고는 없는 산골이고. 그다음엔 윗사람이 아랫것들의 밥을 같이 먹는 장면이 한 번, 아랫것들이 윗사람도 사람이더라 하고 깨닫는 장면이 한 번. 업계가 수십 년간 갈고닦아 온 표준 공정 되겠다.

과연 이 영화도 그 공정을 대체로 따르신다. 따르되 서두르지는 않는다. 다 차려진 밥상을 굳이 물리지는 않으면서, 숟가락 드는 속도만큼은 제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이 손님을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고, 그동안 영화는 밥을 짓고 일을 하고 또 밥을 짓는다. 양반이라는 것들이 우리를 도와준 적이 있느냐고 마을 사람 하나가 되묻는 대목이 있는데, 이 한마디를 들어 두면 뒤에 나오는 모든 친절이 공짜가 아니게 된다.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한편 한양에서는 높으신 분이 이쪽을 계속 들여다보고 계신다. 수양대군을 왕좌에 앉히신 일등 공신 한명회 되시겠다. 이분의 업무 처리 방식이 인상적인데, 본인이 직접 손을 쓰시는 법이 거의 없다. 사람을 보내고, 보낸 사람이 또 사람을 부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촌장님 댁 아드님이 마당에 끌려 나와 거의 죽게 되신다. 높은 데 계신 분이 아래를 어떻게 다루시는지에 관하여, 이 영화는 설명 대신 장면 하나를 내놓는 쪽을 택하셨다.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여기서 민원을 한 건 넣고자 한다. 이 영화의 초반에는 호랑이가 한 마리 나오신다. 이 호랑이의 생김새를 두고 말이 적잖이 나왔고, 배급사 측에서도 나중에 손을 보겠다는 취지로 답하셨다고 들었다. 호랑이 털 한 올이 얼마짜리인지는 나 같은 민간인이 알 도리가 없으므로 그 대목은 넘어가겠다. 다만 그 호랑이께서 등장하시는 시점이 하필 관객이 이 영화를 믿어 볼지 말지를 정하는 맨 앞이라는 점에 관하여는, 아직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고증에 밝으신 분들께서도 몇 가지를 짚으셨다. 관복의 빛깔이 어떻고 흉배가 어떻고, 금성대군 쪽에서 벌어진 일의 시간이 실제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든 지적은 담배였다. 이 땅에 담배가 들어오기 이백 년도 더 전의 이야기인데 담배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백 년을 앞서 담배를 피우신 분이 계시다면 그것대로 비범한 일이라, 나는 그 대목이 차라리 구수했다.

촬영에 관하여도 한 가지 알게 된 바가 있다. 소년이 실제로 머물렀다는 그 자리는 이미 이름난 관광지가 되어 있어서, 제작진께서는 동강의 지류 어딘가에 세트를 따로 지으셨다고 한다. 유배지조차 자리를 내주지 못해 새로 한 채 지어야 하는 형편인 것이다. 육백 년이 지나 그 땅이 끝내 유치에 성공한 셈인데, 촌장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뭐라 하실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칭찬도 한 건 적어 두어야 공평하겠다. 이런 영화의 촌장 역할이라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 일을 한다. 초반에 웃기고 후반에 우는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촌장님께서는 웃기는 동안에도 셈을 놓지 않으시고, 우는 대목에서도 끝내 큰 소리를 내지 않으신다. 사람이 변하는 과정을 장면 몇 개로 건너뛰지 않고 한 칸씩 밟아 가시는데, 그 성실함이 이 영화에서 제일 비싼 부분이지 싶다.

아쉬운 대목도 적어 둔다. 뒤로 갈수록 이 영화는 여러 가지가 되려고 하신다. 마을의 소동이었다가, 한양의 셈법이었다가, 쫓기는 이야기였다가 한다. 각각은 멀쩡한데 사이를 이어 주는 품이 얇아서, 방금 쌓아 올린 감정이 다음 장면까지 따라오지 못하고 중간에 주저앉는 일이 더러 생긴다. 이 역시 해명을 요청드리는 바이다.

제목에 관하여도 한마디 적어 둔다. 왕과 산다고 하면 왕을 모시고 사는 영광스러운 처지를 말하는 듯하지만, 영화가 끝날 즈음이면 이것이 실은 근무 조건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집에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의 끼니와 잠과 기분을 책임진다는 뜻이고, 끝에 가서는 그 사람의 마지막까지 책임진다는 뜻이다. 유치 공고문에는 그런 항목이 적혀 있지 않았을 것이다.

끝은 다들 아시는 그대로다. 복위를 꾀하던 일은 어그러지고, 소년은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 영화는 그 마지막을 크게 벌이지 않는다. 유치해 온 분을 끝까지 모시는 일만 남는다. 그게 다다.

오늘 저녁에도 사거리를 지났다. 현수막은 그대로 두 장이 걸려 있었다. 유치에 성공하면 동네가 산다는 그 문장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게 된다. 무엇을 유치하느냐보다 유치한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대접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을, 육백 년 전 산골의 촌장님께서는 이미 아셨던 모양이다. 뭐, 받아 놓고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렇지.

다음에 그 사거리를 지날 때는 겹쳐 걸린 글자를 기어이 읽어 볼 작정이다. 무엇을 유치하자는 것인지 정도는 알고 나서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해야 하지 않겠나. 촌장님께서도 소문만 듣고 덜컥 손을 드셨다가 평생을 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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