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아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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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파리가 좋았다 했고, 나는 강하 님이 걸렸다
「날 죽이고 싶지 않아?」 포스터에 적힌 이 한 줄을 보고 친구가 먼저 봤고, 나는 친구의 감상을 한참 들은 뒤에 봤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물속에 던져진 아이에게 아가미가 생기고, 호숫가 노인과 손자 강하 님이 그 아이를 거둬 곤이라 부르며 숨겨 키우는 이야기다. 2026년 9월에 개봉한 105분짜리 애니메이션이고, 원작은 2011년 소설인데 무대를 경기도에서 파리 센강으로 옮겼다. 친구와 나는 이 영화를 두고 두 가지에서 갈렸고 한 가지에서 합의했다. 아래는 그 대화를 기억나는 대로 옮긴 것이다. 친구 말은 친구가 한 말이고, 영화 속 사실은 내가 따로 확인한 것만 적었다.
친구 강하 걔는 그냥 가해자야. 어릴 때부터 곤을 괴롭히잖아. 그러다 「그래도 살아줬으면 하니까」 한 줄 하면 다 용서되는 거야?
나 용서는 모르겠고, 그 한 줄 전까지 강하 님이 하신 일을 보면 두 가지가 같이 간다. 갑자기 생긴 식구를 거슬려 하면서 제일 챙기고, 선을 넘게 괴롭히면서 또 지키려 든다. 곤은 그 눈치를 본다. 나는 그 모순이 이 영화의 전부라 하겠다.
친구 그게 전부면 곤이 너무 불쌍하지. 네 말은 때리는 사람 사정 봐주자는 거잖아.
나 사정을 봐주자는 게 아니라, 영화가 그 모순을 끝까지 안 풀고 둔다는 얘기다. 보통 이런 장르라면 가해한 쪽이 울면서 사과하고, 당한 쪽이 한 번 뿌리치고, 비 오는 날 화해하고, 끝에 둘이 물가에 앉는다. 이 영화는 그 수순에서 사과를 당사자끼리 시키지 않는다. 해류 씨를 통해 전한다. 직접 만나지 않고 사람 하나를 중간에 둔다. 다 차려진 밥상을 물린 것이다.
친구 그건 인정. 해류가 중간에서 편지 비둘기 노릇 하는 건 좋았어. 근데 두 번째. 파리는 왜 간 거야? 한국 소설인데.
나 감독님 말씀으로는 원래 배경을 그대로 그리면 가난 쪽으로 무게가 실릴 것 같아서, 사람들이 현실을 잊으러 가는 도시에 거꾸로 현실의 슬픔을 넣어 보고 싶었다고 한다. 해류 씨가 빠지는 다리도 퐁네프다. 강하 님 동네는 물의 도시처럼 집들이 물에 붙어 있다.
친구 그래서 좋았다는 거야. 그림이 진짜 예뻤잖아. 물속 들어가면 수면에서 빛이 내려오고, 등에 비늘이 번지고. 한국 변두리 호숫가였으면 그 색이 안 나왔을 거야.
나 색은 나왔다. 그건 인정한다. 다만 나는 가난을 치우고 나니 곤의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태운 차를 물로 몰기까지의 사정이 그림 뒤로 물러나는 게 걸렸다. 파리에서는 그 사정이 배경이 되고, 경기도였으면 전경이 됐을 것이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나도 모른다.
친구 넌 자꾸 소설 얘기를 해. 영화는 영화로 봐야지.
나 소설은 읽지 않았다. 배경이 바뀐 것도 기사로 알았다. 그러니 나는 영화만 본 사람으로서 말하는 것이고, 영화만 봐도 아버지 장면은 파리에 있는 게 어색했다는 것이다.
친구 어색한 건 오히려 사람들 걷는 거였어. 대화할 때 몸이 딱딱하게 움직이잖아.
나 그건 맞다. 물속은 유려하고 땅 위는 뻣뻣하다. 다만 나는 그걸 보고 「곤이 땅에서 불편한 걸 우리도 같이 느끼라는 건가」 하고 좋게 봐 드렸다. 제작진께서 일부러 그러셨는지는 알 도리가 없고, 그 점에 대해 어디에도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구수하다고 하자.
친구 목소리는? 둘 다 얼굴 아는 배우잖아. 얼굴이 자꾸 떠오르지 않았어?
나 처음 10분은 떠올랐고 그 뒤로는 안 떠올랐다. 곤 쪽은 낮고 느리고, 강하 쪽은 온도가 자주 바뀐다. 얼굴과 표정을 지우고 높낮이와 호흡과 침묵만 남긴 것이니 배우 두 분께는 손해 보는 장사였을 텐데, 그 손해 덕에 곤이 사람 얼굴을 안 갖게 됐다. 그게 이 영화에는 이득이었던 것이다.
친구 구수한 건 할아버지지. 호숫가에 떠오른 애를 그냥 데려와서 키우잖아. 신고도 안 하고.
나 신고했으면 영화가 10분에 끝났을 것이다. 노인께서 아이를 거두시고 집 안에 숨기셨기 때문에 그 뒤 모든 일이 생겼다. 이런 장르에서 신고 안 하는 어른은 규격 부품이다. 아무튼.
친구 그래서 결론은? 좋았어, 아니었어?
나 결론은 없고 합의는 하나 있다.
합의한 것은 해류 씨 쪽이었다. 직장과 어머니 돌봄에 지친 사람이 실수로 다리에서 떨어져 물에서 건져진 뒤, 자기를 건진 사람이 누군지 찾아다니고,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가족 사이를 오가며 말을 전한다. 친구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가 제일 좋았다고 했고, 나도 그 한 줄에서 처음으로 이 영화가 인어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가미는 곤에게만 있고 헤엄은 모두 친다. 보신 분들 중 강하 님을 어떻게 보셨는지, 파리가 좋으셨는지는 각자 다르실 것이다. 우리는 둘 다 끝나고 한참 말이 없었다는 데서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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