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5
메이드 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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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비행기에서 가방을 지키는 법
고백하건대 나는 악당이 일하는 모습을 오래 보여 주는 이야기를 몹시 좋아한다. 악당이 어쩌다 악당이 되었는지 해명하는 대목은 대개 지루하고, 악당이 끝내 벌을 받는 대목은 그보다 더 지루하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그 사이에 있다. 사내가 제 손으로 일을 처리하는 동안의 손놀림, 거기서 드러나는 계산의 속도 말이다. 이 여섯 편짜리 이야기는 첫 회에서 그 손놀림을 아주 길게 보여 준다. 그것도 납치된 비행기 안에서.
1화는 1970년 일본항공기 납치 사건의 뼈대를 빌려 와, 그 안에 세상에 없던 사내 하나를 슬쩍 앉혀 놓는다. 히로뽕 가방을 든 중앙정보부 부산지부 정보과장 백기태다. 지상에서는 교신을 가로채 김포공항을 평양공항으로 위장하는 작전이 돌아가고, 기내에서는 이 사내가 제 가방의 행방을 계산한다. 나는 이 배치를 계약서라고 부르겠다. 조항은 두 줄이다. 난장판은 언제나 국가가 만든다, 그리고 이 사내는 어떤 난장판에 떨어뜨려 놓아도 제 몫을 챙겨 나온다.

기내는 각본가에게 가장 인색한 공간이다. 인물은 앉아 있고 동선은 복도 하나뿐이며 퇴장할 문이 없다. 그 좁은 데서 이 작품은 사내의 이력서를 한 장 완성한다. 그는 뛰지 않고, 소리치지 않고, 가장 소란한 순간에 가장 조용한 동작을 고른다. 1화를 통째로 실화에 담보 잡히고서도 허구의 인물을 주인공 자리에 앉히는 배짱에 감탄하다가, 나는 조금 분해졌다.
백기태의 직업은 국가요원이고 부업은 밀매다. 그는 제 범죄를 외화 획득이라 부른다. 이 작품의 가장 영리한 한 수는 그 두 가지를 다른 서랍에 넣지 않은 것이다. 공무와 범죄가 같은 서류철에서 같은 결재선을 탄다. 연출도 같은 말을 한다. 중앙정보부는 트여 있고 검사실은 닫혀 있으며, 카메라는 인물의 위계를 자주 수직으로 잡는다. 어느 쪽이 갇혀 있는지를 화면이 먼저 알려 주는 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부지런한 배우는 담배다. 인물들은 쉴 새 없이 피우고, 재떨이는 늘 손 닿는 자리에 놓여 있다. 시대 고증이라 해도 좋겠으나 내가 눈여겨본 것은 재떨이가 아니라 그것이 놓인 탁자의 지름이다. 붉은 조명이 깔린 라운지, 둥근 탁자 하나에 브랜디 잔과 유리 머그와 재떨이 둘과 성냥갑이 올라가 있고 그 위로 두 사람의 손이 닿는다. 탁자가 조금만 더 컸으면 저 둘은 흥정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조금만 더 작았으면 흥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소품을 맡은 이들이 어떤 회의를 거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저 지름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모든 거래가 성립하는 최대 거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탁자 건너편에 앉은 사람은 배금지다. 3화는 1970년대의 한 피살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이 접대부의 자리를 만든다. 그가 사내에게 건네는 말은 이 드라마 전체의 설계도에 가깝다.
넌 원하는 게 뭐야. 돈, 권력, 사랑 다 가지고 싶지? 아무도 날 깔보지 못하게. 나도 그래.
이것은 고백이 아니라 거래 제안이다. 욕망을 먼저 말하는 쪽이 판을 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말투다. 이 드라마에는 그런 말투를 쓰는 인물이 여럿 있고, 그들이 하나같이 같은 것을 원한다는 사실이 이야기를 굴린다.
현빈은 이 사내의 어깨를 만들기 위해 몸을 십삼사 킬로그램 불렸다고 한다. 몸을 불린 배우는 대개 그 몸을 쓰고 싶어 하건만, 이 배우는 좀처럼 쓰지 않는다. 그는 앉아 있고, 듣고, 다 듣고 난 뒤에 한 문장을 내놓는다. 불린 몸이 하는 일이라고는 방 안의 공기를 조금 무겁게 만드는 것뿐이다. 그 낭비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맞은편의 장건영은 검사다. 아버지가 히로뽕에 취해 어머니를 죽였다는 내력이 그를 이 사건에 붙들어 맨다. 그가 혼자 있는 장면 하나가 오래 남는다. 부엌이 딸린 좁은 방, 주전자와 밥솥이 놓인 선반 아래서 그는 전기스탠드를 통째로 손에 들어 올려 서류 위를 비춘다. 책상에 놓인 조명을 그대로 쓰지 않고 굳이 들어 올린다는 것은, 이 사람이 집에서도 퇴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정도 인물 소개는 대사 한 줄이면 끝나는 일인데, 굳이 램프를 들게 했다.

불만을 하나만 적겠다. 정우성의 장건영은 초반에 과장된 웃음소리와 연극적인 발성으로 관객을 자주 밀어낸다. 연출을 맡은 이는 그 과장이 전문가의 자문까지 구해 설계한 방어기제라고 밝힌 바 있고, 6화까지 보고 되짚으면 과연 설계가 맞다. 그러나 6화에 가서야 해명되는 설계는 1화를 보는 사람에게 설계가 아니라 사고로 보인다. 관객이 끝까지 앉아 있어 줄 것이라 믿은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믿음은 고마우나 계약서에 그런 조항은 없었다.
5화에 이르면 이 드라마가 제 정체를 드러낸다. 사내는 저를 치려던 부산지부장을 먼저 치우고, 그가 숨겨 둔 비자금을 경호실장에게 바쳐 새 후견인을 얻는다. 여기서 비로소 알게 된다. 이것은 추적극이 아니라 승진 드라마다. 쫓고 쫓기는 두 사람이 실은 같은 사다리를 오르고 있고, 다만 한쪽은 증거로 오르고 한쪽은 봉투로 오른다.
그 사다리의 중간참에 취조실이 있다. 타일을 붙인 벽, 천장에서 내려온 갓등 하나, 와이셔츠에 멜빵 차림으로 고개 숙인 사람 앞에 선 사내. 방은 녹색으로 식어 있고 창호 너머에서만 주황색 불빛이 들어온다. 색이 둘로 갈라진 방에서 사람 하나가 사실을 만들어 낸다. 이 작품은 고문을 자극으로 쓰지 않고 행정으로 쓴다. 그 편이 훨씬 고약하다.

6화에서 검사는 기어이 수갑을 채운다. 증언해 줄 사람을 찾아냈고, 서류를 맞췄고, 손목에 쇠를 걸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며칠을 못 간다. 그를 받치던 대통령 비서실장이 실각하고, 증언해 줄 사람은 고문 끝에 죽는다. 증인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내는 풀려나 중앙정보부 국장으로 승진하고, 검사는 마약조직을 비호하고 뇌물을 받은 자로 몰려 체포된다. 1화에 써 둔 계약서가 여기서 도장을 받는다. 난장판은 국가가 만들고, 몫은 사내가 챙긴다.
나는 이런 종류의 뻔뻔함을 사랑한다. 여섯 시간을 들여 추적극의 외양을 반듯하게 갖춰 놓고 마지막 십여 분에 쫓긴 자를 승진시키고 쫓던 자에게 수갑을 채우는 것은 솜씨라기보다 악의다. 그리고 악의에는 적어도 계획이 있다. 필경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제 결말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다만 우리가 다른 결말을 기대하도록 여섯 시간 동안 공손하게 거들어 주었을 뿐이다. 모름지기 계약서란 끝까지 읽으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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