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5
메이드 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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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콧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끝내 못 알아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여섯 편짜리 드라마를 거의 귀로 봤다. 1970년대 부산이 어떻고 중앙정보부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화면에서 돌아가는 동안, 내 귀는 검사 아저씨가 흥얼거리는 콧노래만 따라다녔다는 뜻이다. 그는 서류를 들여다보다가도 흥얼거리고, 사람을 노려보다가도 흥얼거린다. 처음에는 그냥 버릇인 줄 알았다. 그런데 2화쯤 가니까 내 안의 무언가가 '저거 무슨 노래인지 알아내야 한다, 무조건 알아내야 한다' 하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들었다. 한 소절이라도 길게 이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음이 몇 개나 올라가는지 세면서, 아는 멜로디가 나오면 바로 멈추고 찾아보려고 손가락을 올려놓은 채로. (학창 시절에 수학여행 버스 뒷자리에서 누가 흥얼거리던 노래를 끝내 못 알아내고 삼 년쯤 괴로워한 적이 있다. 나는 이런 쪽으로 좀 집요하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절대 길게 부르지 않는다. 두 마디쯤 가다가 뚝 끊고, 다른 데를 보고, 또 두 마디. 사람 약 올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알고 보니 그 콧노래도, 가끔 터뜨리는 그 묘한 웃음소리도 만드는 쪽에서 일부러 붙여 준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딘가 어긋나 있는 인물이라는 걸 보여 주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머쓱해졌다. 나는 노래 제목을 찾고 있었는데 드라마는 그 사람의 성격을 알려 주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나는 계속 멜로디를 쫓았다. 알려 주는 것과 알고 싶은 것은 원래 잘 안 맞는다.
그러다 나는 엉뚱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티 나게 흥얼거리면서 잠복은 대체 어떻게 하지. 밤 부두에서 트렌치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뛰어다니는 장면이 있는데, 안경은 삐뚤어져 있고 넥타이는 풀린 채 날리고 있었다. 배 한 척과 쇠 파이프 더미밖에 없는 저 자리에서 혼자 뭘 어쩌려고 저러나 싶어서 나는 진지하게 걱정했다.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인물의 소지품을 자꾸 세는 버릇이 있다.) 드라마는 그런 걸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반대편의 그 남자, 그러니까 중앙정보부 아저씨는 콧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는 듣는다. 와이셔츠에 멜빵 차림으로 헤드폰을 쓰고 남의 목소리를 받아 적는 장면에서, 나는 둘의 차이가 소리 하나로 갈린다는 걸 알았다. 한쪽은 제 입으로 소리를 내고 한쪽은 남의 소리를 거둬들인다. 소리를 내는 사람은 어디 있는지 들키고, 소리를 모으는 사람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이 세계에서 안전한 쪽은 당연히 뒤쪽이다.

여기서 제목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원래 물건 엉덩이에 찍히는 말이다. 가방 안쪽이나 그릇 바닥을 뒤집으면 나오는 그 작은 글씨 말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라벨을 사람 뒤에 붙여 버렸다. 홍보 문구도 「힘 있는 놈들이 바꾸는 세상」이었는데, 이런 문장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나는 '라벨형 선언'이라고 이름 붙였다. 물건에 붙으면 품질 보증이고 사람에게 붙으면 생산 이력이 되는, 그런 종류의 문장. 물론 품질은 보증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한 방에 있는 장면은 몇 번이고 돌려 봤다. 검사실인데 어찌나 어수선한지 타자기와 서류 뭉치와 양은 주전자가 한 화면에 다 들어와 있고, 벽에는 지도와 수배 사진이 겹겹이 붙어 있다. 중앙정보부 아저씨는 그 난장판 한가운데 다리를 꼬고 앉아 있고, 검사 아저씨는 종이 한 장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 읽는다. 앉은 사람은 편해 보이고 선 사람은 바빠 보인다. 이 구도가 여섯 편 내내 거의 바뀌지 않는다.

검사 아저씨는 아버지가 약에 취해 어머니를 죽인 집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을 일로 하지 않고 생으로 한다. 증거를 만들고, 사람을 윽박지르고, 해서는 안 되는 방법까지 쓴다. 그걸 알고 나니 그 콧노래가 다르게 들렸다. 사람이 혼자 너무 오래 있으면 제 소리라도 내야 견디는 법이다. (혼자 있는 방에서 그가 노래를 멈추고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을 나는 머릿속으로 그려 봤다. 드라마에 그런 장면은 없다. 없는데 나는 봤다.)
6화는 담담하게 잔인하다. 검사는 기어이 수갑을 채우지만, 증언해 줄 사람이 고문 끝에 죽고 뒤를 봐주던 사람이 자리에서 밀려나면서, 잡힌 쪽은 풀려나 국장이 되고 잡은 쪽이 체포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국장이 된 남자가 시가를 물고 앉아 있는데,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깔리면서 화면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다. 세상이 이제야 제 색을 찾았다는 듯이. 나는 여기서 좀 울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내가 여섯 시간 동안 쫓아다닌 그 콧노래가 이 이야기의 음악 전부였다는 것을. 한쪽에는 바흐가 있다. 틀어 놓으면 저절로 흘러나오고, 방을 채우고, 앉아 있기만 해도 품위가 생기는 음악이다. 다른 쪽에는 제목도 모르는 두 마디짜리 콧노래가 있다. 끊기고, 어긋나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래도 계속 나온다. 세상이 색을 되찾는 장면에 깔리는 건 언제나 바흐 쪽이고 콧노래를 부르던 사람은 그 장면에 없지만, 나는 두 마디밖에 못 들은 그 노래 편이다.
그 콧노래가 무슨 노래인지는 끝내 못 알아냈다. 그날 밤 설거지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두 마디쯤 흥얼거리고 멈췄는데, 그게 그 노래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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