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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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고등학생이 아니라서
히어로 영화가 성장을 이야기한다고 하면 나는 일단 의심부터 해요. 성장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보통은 울릴 준비를 하거든. 주인공을 한참 괴롭혀 놓고 마지막에 근사하게 일으켜 세우죠. 그 수순이 하도 뻔해서 별 기대 없이 봤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걸 안 하더라고. 앞 이야기에서 세상을 구하고, 대신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진 사람이에요. 아무도 그를 모르는 채로 몇 해가 지났어요. 그 사이 몸에 변이가 와서 손목에서 거미줄이 저절로 나와요. 자기가 자기 몸을 어쩌지 못하는 거지. 거기다 남의 마음속에 들어가 화를 꺼내 쓰는 상대를 만나요. 그게 다예요.
나는 이런 영화를 볼 때 저 사람이 뭘로 먹고사나를 먼저 봐요. 친구 둘은 좋은 학교에 갔어요. 하나는 오래된 친구고 하나는 연인이죠. 둘 다 멀리 가서 공부를 해요. 이 사람은 남았어요.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사람한테는 이력도 없잖아. 밤에 나가서 사람 구하는 일은 돈이 안 되고요. 그걸 어떻게 메우고 사는지까지는 영화가 보여 주지 않아서 나도 몰라요.

이 사람 일터는 길이에요. 사무실도 없고 같이 일하는 사람도 없죠. 높은 건물 사이를 혼자 오가면서 일해요. 퇴근이라는 게 없는 일이잖아요. 그게 얼마나 고단한 일이에요. 영화가 그 고단함을 그럴듯하게 꾸미지 않아서 나는 그 점이 좋았어요.
가면 쓴 사람 이야기는 늘 비슷해요. 벗을까 말까로 두 시간을 끌죠. 이 영화는 그걸 덜 따질 수밖에 없어요. 이미 아무도 모르니까 벗어도 소용이 없거든. 숨길 게 없는 사람은 할 말이 줄어요. 말이 줄면 그제야 몸이 보여요.
영화 안에서 누가 그 사람한테 물어요. 너는 피터 파커냐, 스파이더맨이냐. 나는 이런 질문이 제일 싫어요. 둘 중에 고르라는 말은 결국 아무것도 안 주겠다는 말이거든. 사람이 그렇게 반듯하게 둘로 나뉘나요. 고르라고 할 거면 먼저 방세부터 내 주고 고르라고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봤어요.
좋았던 건 싸우기 전에 몸을 푸는 대목이에요. 비장하게 뛰어드는 게 아니라 목이랑 어깨를 돌려요. 이젠 고등학생이 아니라서, 그러면서요. 싸우기 전에 몸 푸는 사람이 나오는 액션은 나도 처음 봤어요. 늙는다는 건 서러운 게 아니라 귀찮은 거거든요. 몸이 먼저 알고 미리 푸는 거지. 그 배우가 그걸 참 담백하게 하더라고요.

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영화는 그 사람 몸이 말을 안 듣는 걸로 거의 다 끌고 가요. 손목에서 뭐가 자꾸 나오고, 힘이 저 혼자 세져요. 쓰려고 쥐는 게 아니라 쥐어지는 거지. 나이를 먹으면 비슷한 일이 생겨요. 쓰던 대로 썼는데 몸이 다르게 대답하는 거요. 그게 무섭다기보다 성가셔요. 그 성가심을 영화가 꽤 오래 붙잡고 있어서 나는 보기가 좋았어요.
말을 안 듣는 몸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기계를 하나 차고 다녀요. 눌러 놓는 거죠. 눌러 놓으면 당장은 편해요. 대신 눌러 놓은 건 언젠가 올라오고요. 마지막에는 그걸 벗어요. 벗고도 괜찮아지는 데까지 가는 게 이 영화가 한 일이에요.
상대는 남의 마음에 들어가서 화를 꺼내 쓰는 사람이에요. 총도 안 들고 사람을 망가뜨리죠. 이런 상대가 제일 고약해요. 밖에서 때리는 건 피하면 되는데 안에서 흔드는 건 피할 데가 없잖아.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됐는지 더 듣고 싶지는 않았어요. 사연을 길게 들으면 미워하기도 어려워지거든. 미워할 사람은 미워하게 두는 편이 나아요.

아는 얼굴도 여럿 나와요. 초록색 덩치도 나오고, 가슴에 해골 그린 남자도 나오고요. 반가운 사람이 많으면 한 사람한테 돌아가는 시간이 줄어들죠. 나는 그게 좀 아깝더라고. 아까워도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다들 자기 사정이 있으니까요.
만든 사람이 앞 편들과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그런 걸 미리 알고 보지는 않아요. 알고 보면 자꾸 견주게 되거든. 보고 나서 들으니까 그런가 보다 싶었어요. 손이 바뀌었는데 사람은 그대로 남아 있더라고. 그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에요.
앉아 있는 시간은 길어요. 두 시간 반 가까이 되더라고. 중간에 한 번쯤 다리를 폈으면 싶었어요. 요즘은 다들 길게 만들어요. 짧게 만들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길어도 지루하지 않으면 그만이긴 하죠.
제목이 새 출발 비슷한 뜻이라던데, 나는 새 출발이라는 말도 잘 안 믿어요. 사람이 어디 새로 시작이 되나요. 하던 자리에서 조금씩 고쳐 가는 거지. 이 사람도 그래요.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름 없이 일하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예요. 그 정도면 됐어요.
마지막이 좋았어요. 가게에서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나요. 친구는 그를 전혀 몰라요. 그런데 이름을 대고 손을 내미니까 그 친구 손이 먼저 움직여요. 둘이 예전에만 하던 이상한 악수를 하더라고. 그러고는 이름을 불러요. 나는 거기서 좀 웃었어요.
머리는 지워졌는데 손이 기억하고 있는 거지. 사람이 그래요. 머리로 정리한 건 금방 지워지고, 몸이 외운 건 안 지워져요. 오래 같이 지낸 사람들끼리는 그런 게 하나씩 있잖아요. 나는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일 솔직했다고 봐요.
이 사람이 하는 일은 결국 남을 구하는 일이에요. 구해 놓고 생색낼 데가 없죠. 기억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나는 생색 안 내고 일하는 사람을 오래 봐 왔어요. 그런 사람들이 대개 제일 오래 일하더라고. 요란한 쪽이 먼저 그만둬요.
세상을 구하고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됐으니 억울하겠죠. 그게 억울하냐 하면, 글쎄. 알아주는 사람 없이 하는 일이야 세상에 널렸잖아요. 알아달라고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일이 잘 안 돼요. 이 사람은 그걸 아는 것 같더라고. 아는 사람은 티를 안 내요.
젊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뭘 느끼는지는 나도 몰라요. 나이가 다르면 눈에 걸리는 데가 다르니까요. 나한테는 몸 푸는 장면하고 악수하는 장면, 그 둘만 남았어요. 두 장면 다 말이 거의 없어요. 남는 건 늘 그런 쪽이더라고요.
끝나고 한참 있다가 짧은 장면이 하나 더 나와요. 사람은 안 나오고 화면 하나만 보여 주더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잘 몰라요. 아는 사람들은 알겠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일어나서 나와도 돼요. 나는 그냥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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