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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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구하러 갔던 분께
이분께 먼저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 건물 문을 혼자 밀고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오래 마음을 다잡고 계셨을까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진 한 청년이 다시 뉴욕의 거리에 서는 이야기입니다. 그 앞에 진 그레이라는 젊은 사람이 나타나요. 남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거기 있는 화를 꺼내 쓰는 능력을 가진 분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분을 그냥 이번 이야기의 악당이라고 보실 거예요. 그런데요,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이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이분의 행동을 한번 볼게요. 이분은 데미지 컨트롤이라는 기관을 공격합니다. 돈을 빼앗으려는 것도 아니고, 도시를 무너뜨리려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 안에 붙잡혀 있는 언니 사라를 찾으러 간 거예요. 언니도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 기관의 실험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분은 그걸 모르는 채로 언니를 찾고 있었어요.
영화는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을 길게 보여 주지 않습니다. 능력이 드러난 뒤 어머니가 두 사람을 멀리 보냈다는 것만 잠깐 지나가요. 그래서 그 집이 어떤 집이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겠더라고요. 이분이 아는 사람이라고는 언니 한 명뿐이었다는 것이요. 세상에 믿을 사람이 딱 한 명인 사람은, 그 한 명을 찾는 일에 자기 전부를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보셔야 해요. 이분은 그냥 달아날 수도 있었습니다.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으니 숨어 사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하필 자기를 가뒀던 그 건물로 제 발로 돌아갑니다. 무서운 곳을 다시 찾아가는 사람은 대개 거기에 두고 온 것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분이 두고 온 것은 언니였습니다.
이분이 쓰는 힘도 한번 들여다볼게요. 이분은 남의 마음에 들어가 거기 있던 화를 꺼내 씁니다. 없던 것을 만들어 넣는 게 아니라 이미 그 사람 안에 있던 것을 끌어올리는 거예요. 저는 이 대목이 참 서늘했습니다. 평생 자기 속을 들여다보이며 산 사람이, 이제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자리에 서 있는 거잖아요. 당해 본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을 배울 틈이 없었던 거죠.
그 건물 안에서 이분이 우뚝 멈춰 서는 대목이 있어요. 갇혀 있던 방의 환풍구에 'V-Max'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언니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글자이고, 언니가 능력을 써서 이분에게 보낸 글자였어요. 그 글자를 알아본 순간 이분은 압니다. 지금 자기가 서 있는 이 방이, 언니가 숨을 거둔 바로 그 방이라는 것을요.
그다음에 힘이 터져 나옵니다. 도시의 사람들이 선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서요. 저는 그 장면이 공격이라기보다 비명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이건 이분이 이상해서가 아니에요. 들어 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자리에서, 가장 나쁜 소식을 혼자 알아 버렸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그런 걸 알게 되면 어떻게든 소리를 내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고 그 뒤의 일까지 괜찮아지는 건 아니에요. 이분은 유리 조각을 공중에 띄워 한 사람을 겨눕니다. 그 사람이 한 일이 아무리 끔찍했어도, 이분이 그를 죽여도 되는 건 아니에요.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이 말은 꼭 한 번 하고 싶었어요. 이분을 이해하는 일과 이분을 말리는 일은 같이 가야 하거든요.
그 자리에서 스파이더맨이 한 일이 참 뜻밖이었어요. 그는 이분을 힘으로 눌러 제압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을 열어 이분을 안으로 들어오게 해요. 거기에 메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는 건 너라는 사람 자체 때문"이라고 말해 주던 사람이에요. 이분은 그 말을 남의 기억 속에서 듣습니다. 자기 몫으로 받은 말이 아니라 빌려 들은 말이었어요.

그런데 빌려 들은 말인데도 이분이 멈춥니다. 저는 그 짧은 멈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봤어요. 그 말에는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조건이 없었거든요. 이분이 평생 들어 온 말에는 늘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네 힘이 어디까지 가느냐, 그 힘을 어떻게 가둘 것이냐 하는 말들이요. 조건 없는 말은 사람을 멈춰 세웁니다. 그런 말을 처음 들어 본 사람일수록 더 그래요. 그 자리에서 스파이더맨은 혼자 할 일이 아니라는 뜻의 말도 건넵니다. 둘 다 혼자였던 사람이 하는 말이라 무게가 달랐어요.
이분이 그동안 들어 온 말들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분을 데리고 있던 곳의 이름은 '피해 통제국'이에요. 그 이름 안에서 이분은 사람이 아니라 '통제할 피해'입니다. 이 말에는 '관리'만 있고 '사람'이 없어요. 아마 이분이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은 훨씬 짧았을 거예요. 무섭지 않았냐는 말,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말이요.
이분 곁에 있던 또 한 사람은 총을 든 어른이었어요. 그는 끝까지 이분을 없애야 할 것으로만 봅니다. 그리고 실제로 방아쇠를 당겨요. 세상이 이분을 그동안 어떻게 다뤄 왔는지가 그 한 발에 다 들어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겁이 나는 사람을 만나면 사람들은 먼저 없앨 방법부터 떠올리거든요. 그 사람의 사정을 묻는 일은 늘 뒤로 밀립니다.
이분이 끝까지 하지 않은 말도 하나 있습니다. 도와 달라는 말이에요. 그 긴 시간 동안 이분은 누구에게도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아요. 도와 달라는 말은 들어 줄 사람이 있다고 믿을 때 나오는 말이거든요. 한 번 멀리 보내지고 한 번 갇혀 본 사람은 그 말이 잘 안 나옵니다. 말주변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말을 받아 줄 자리를 가져 본 적이 없어서예요.
이분 앞에 선 사람도 사정이 비슷했어요. 아무도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도시에서, 혼자 무거운 것을 들고 살던 사람입니다. 알아주는 이 없이 버티는 일이 어떤 건지 몸으로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분이 그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닮은 사람은 설명을 길게 하지 않아도 알아보거든요.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저 사람은 힘이 세지 않으냐고요. 그런데 힘이 세다는 것과 자기를 지킬 줄 안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이분은 도시 하나를 멈춰 세울 수 있는데도, 자기 언니 한 사람은 지키지 못했어요. 힘이 아무리 커도 그 힘을 쓸 자리를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부터 다칩니다. 저는 이분이 세다고 느껴질수록 더 어려 보였어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중요해요. 총알이 날아오고, 스파이더맨이 대신 맞습니다. 그때 이분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아요. 구급대가 올 때까지 붙잡고 그 사람을 살려 둡니다. 저는 이 대목을 참 오래 생각했어요. 평생 빼앗기기만 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누군가를 살려 보낸 거예요.
남겨진 것도 하나 있어요. 이분을 가둬 두었던 그 기관은 자기들이 한 일로 조사를 받게 됩니다. 아무도 묻지 않던 일이 드디어 묻는 일이 된 거예요. 언니의 이름이 서류 위에 올라가기까지, 이분은 혼자서 그 먼 길을 갔습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이분을 거들어 준 어른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게 저는 내내 걸렸어요.
그러고 나서 이분은 버스를 타고 도시를 떠납니다. 아무도 미안하다고 해 주지 않았고, 언니가 돌아온 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이분은 이제 자기 손으로 사람을 살려 본 사람입니다. 내 힘이 누굴 해치는 데만 쓰이는 게 아니라는 걸,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알게 된 거예요. 이게 이분께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분을 그냥 안됐다고만 말하고 넘어가고 싶지는 않아요. 안됐다는 말은 그 사람을 조금 멀리 두는 말이거든요. 이분이 한 일 중에는 분명히 말려야 할 일이 있었고, 이분이 겪은 일 중에는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될 일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는 같이 말해야 맞아요. 한쪽만 말하면 그 사람이 반쪽만 남습니다.
혹시 주변에 이런 분이 계신가요. 큰일을 겪고도 담담하게 말하는 사람, 끝까지 도와 달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요. 우리는 보통 그런 분께 이제 괜찮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괜찮냐는 물음에는 괜찮다는 답 말고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어요. 그 대신 이렇게 한번 말해 보세요.
그동안 네가 어땠는지는 아직 못 들었어. 나 여기 있을게.
답을 재촉하지 않고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 지금은 그거면 충분합니다.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한 명만 생겨도 달라져요. 이분은 남의 기억 속에서 빌려 들은 말 한마디에 손에 든 유리 조각을 내려놓았습니다. 빌려 들은 말도 그만한 힘이 있는데, 직접 건네는 말은 어떻겠어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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