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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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하나로 사람을 찾을 수 있는가
나는 배달 음식을 시켜 놓고 지도 위의 점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점이 움직이면 안심하고, 점이 삼 분쯤 멈춰 있으면 불안해진다. 음식이 식을까 봐는 아니다. 저 점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끝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의 좌표만 안다. 요즘 내가 사람을 아는 방식이 대체로 그렇다.
그런 내게 이 영화는 얄궂은 농담처럼 보였다. 한 사람을 모두가 잊은 뒤에, 그를 찾는 방법만 잔뜩 남은 영화다. 앞 이야기에서 피터 파커는 세상에서 자기 존재를 지웠다. 사 년이 지났다. 아무도 그를 모른다. 그런데 그를 찾는 일은 오히려 늘었다.
이 사 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공백? 잠복? 유예? 혹은 그냥 근무? 영화는 그 기간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대신 그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만 보여 준다. 사람을 구했고, 주머니 사정을 걱정했고, 밤에 돌아다녔다. 이름 없는 기간을 견디는 방법은 결국 그날의 일과뿐이다.
영화는 관광버스 한 대를 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구조는 금세 끝나고, 유탄발사기를 든 남자가 그를 들이받는다. 피터는 다락방에 산다. 손목에서 거미줄이 저절로 나오고, 눈이 새카매지고, 가끔 정신을 잃는다. 그사이 옛 친구 네드는 앱을 하나 만들었다. 스파이더맨의 동선을 좇는 추적 앱이다. 그는 그 앱으로 친구를 찾는 중이다. 자기가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은 모른 채로.

네드의 앱은 성실하다. 성실해서 쓸쓸하다. 그는 데이터를 모으고, 동선을 겹쳐 보고, 용의자를 좁힌다. 그렇게 좁힌 끝에 플래시 톰슨을 의심한다. 틀렸다. 그러나 틀린 쪽으로 아주 열심이다. 세상에는 방법이 정교해질수록 답에서 멀어지는 일이 있다.
플래시를 떠보려고 간 파티에서 피터는 MJ를 만난다. 그는 가짜 이름을 댄다. MJ는 커피숍에서 일한다. 그 자리에서 피터는 MJ가 원칙을 이유로 큰 회사의 일자리를 거절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MJ가 다른 사람과 입을 맞추는 것을 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세상에서 MJ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고, 동시에 MJ에게는 처음 보는 사람이다.
가짜 이름을 대는 장면을 나는 한참 생각했다. 가명은 보통 숨기려는 사람이 쓴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숨길 것이 없다. 진짜 이름을 대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가명은 거짓말이 아니라 체념이다. 사실을 말해도 전달되지 않을 때 사람은 사실 말하기를 그만둔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가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거절할지 안다는 뜻이다. 무엇을 거절할지 안다는 것은 그의 다음 문장을 미리 안다는 뜻이다. 다음 문장을 미리 안다는 것은, 그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피터는 안다. 그래서 가만히 서 있다. 이 영화에서 안다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형벌에 가깝다.
그는 자기 몸을 어떻게 해 보려고 사람을 찾아가기도 한다. 대학 캠퍼스 돌바닥 위를 브루스 배너와 나란히 걷는다. 배너는 유전자를 건드리지 말라고 말린다. 자기 몸을 자기가 고쳐 보려다 평생이 그 꼴이 된 사람의 충고다. 피터는 듣는다. 듣고 나서 제 손으로 억제 장치를 만든다. 충고란 대개 그렇게 쓰인다. 들은 다음에 어기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상대하는 것들도 만만치 않다. 지붕 위에서 달려드는 자들, 손바닥만 한 쇳조각, 날아드는 표창, 정부 기관의 서류, 자기 손목에서 멋대로 나오는 거미줄. 그는 날아온 표창을 손가락 두 개로 잡는다. 잡는 솜씨는 늘었는데 잡을 것은 늘지 않는다. 영웅의 일이란 결국 남의 사정을 대신 잡아 주는 일이다. 대신 잡아 주다 보면 자기 사정은 뒤로 밀린다.

영화 중반에 또 한 사람이 들어온다. 진 그레이다. 그는 남의 마음에 들어가 그 안에 있던 것을 꺼내 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찾는 방식이다. 네드는 지도로 찾고, 진 그레이는 마음으로 들어가 찾는다. 지도 쪽은 번번이 빗나가고, 마음 쪽은 한 번에 닿는다. 다만 마음 쪽은 들어가는 순간 상대를 다치게 한다. 정확한 방법과 안전한 방법은 좀처럼 같은 것이 아니다.
마지막에 피터는 총을 맞는다. 병원에 눕는다. 밖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서 있다. 이 장면은 묘하다. 이름을 모르는 채로도 고마워할 수는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고마워하는 것은 따로 논다. 나는 이 대목이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를 정리해 주는 사람이 하필 그를 쏜 남자다. 유탄발사기로 그를 들이받았던 사람, 총을 겨눈 사람이 병원 앞에서 사람들의 눈을 돌려 준다. 적과 아군의 구분이 흐려져서 감동적인 것이 아니다. 누가 나를 도와줄지 끝까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냥 민망할 뿐이다. 세상의 도움은 대체로 예산 계획처럼 오지 않고 소나기처럼 온다.
그렇다고 이름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피터는 편지를 쓴다. MJ는 그 편지를 읽는다. 읽고 나서도 그는 예전처럼 되지 않는다. 사실을 아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편지는 사실을 옮길 수 있지만 사 년을 옮기지는 못한다. 그래서 MJ는 사랑할 수는 없지만 믿을 수는 있다는 쪽에 선다. 나는 이 결말이 야박하다고 생각했다가, 곧 생각을 고쳤다. 야박한 쪽이 대개 정확한 쪽이다.
그러나 나는 네드를 비웃을 수 없다. 사람을 잃은 자리에 무엇이라도 놓아 보는 것이 인간이 하는 일이다. 누구는 기일을 적어 두고, 누구는 전화번호를 지우지 않고, 누구는 앱을 만든다. 네드가 만든 것은 결국 그리움의 공학 버전이다. 방법이 어설퍼서 그렇지 마음은 정직하다. 어설픈 방법을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을 나는 대체로 신뢰하는 편이다.
우리도 비슷하게 산다. 읽음 표시, 마지막 접속 시각, 가족 위치 공유, 택배 송장 번호, 배달 지도의 점. 이것들이 관계를 대신하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라고 해야 한다. 좌표는 사람이 아니지만, 좌표라도 보고 싶은 마음은 사람의 것이다. 나는 어느 편도 들고 싶지 않다. 둘 다 조금씩 민망하고 조금씩 다정하다.
영화가 다 끝난 뒤에 짧은 장면이 하나 붙는다. 네드의 앱이 신호를 잡는다. 점이 도시를 벗어나고, 대기권을 지나고, 그대로 우주로 나간다. 추적은 끝내 성공한다. 좌표는 정확하다. 거기 사람은 없다.
나는 그 화면을 보다가 내 배달 지도를 떠올렸다. 점은 언제나 도착한다. 사람은 가끔 도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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