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2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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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멈춘 아이

삐뚜름관람· 2026. 10. 24.· 2,631자

먼저 고백. 나는 높은 데서 못 뛴다. 수영장 1미터 다이빙대에서도 발가락으로 끝을 잡고 한참 서 있다가 뒤에 줄 선 애한테 양보한다. 그걸 서른 해째 하고 있다. 겁이 많은 게 아니라 신중한 거라고 우기는 것까지가 세트다.

아무튼 요괴 나오는 만화영화를 봤다. 아빠를 잃은 열한 살 모모가 엄마와 함께 도쿄에서 세토 내해의 작은 섬으로 이사 온다. 아빠가 남긴 건 「모모에게」까지만 쓰다 만 편지 한 장이다. 그 집 다락방에서 낡은 그림책이 나오고,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 셋이 요괴가 된다. 입이 안 닫히는 대장 이와, 물고기 머리에 길쭉한 카와, 말을 못 하고 제 과거도 잊은 꼬마 마메. 셋은 먹을 것을 훔치고 귤밭을 망치고 새끼 멧돼지를 훔쳤다가 어미한테 쫓긴다. 시끄럽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제일 연기를 많이 하는 건 그 시끄러운 셋이 아니라, 말이 제일 없는 모모다.

그림이 하는 연기 얘기를 하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각본부터 그림 콘티까지 7년을 썼다고 하고, 배경을 그리려고 섬을 돌며 사진을 9천 장 넘게 찍었다고 한다. 그 공이 풍경에만 간 게 아니다. 모모가 움직이는 방식에 갔다. 세 장면만 고른다.

장면 1. 다리

섬 아이들이 모모를 데리고 바다로 간다. 아이들은 높은 다리에서 그대로 바닷물로 뛰어내린다. 모모는 본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보기만 한다. 그러고는 혼자 집으로 간다. 이 장면에서 보통 만화영화의 여자아이는 둘 중 하나를 한다. 눈 질끈 감고 뛰거나, 울면서 못 뛰겠다고 하거나. 이 모모는 둘 다 안 한다. 그냥 안 뛰고 간다. 소리도 없고 변명도 없다. 나는 그걸 보고 좀 그랬다. 다이빙대에서 양보하고 내려오는 내 뒷모습이 저렇게 생겼겠구나 싶어서다. 나중에 요괴 하나가 머뭇거리는 모모를 뒤에서 밀어 물에 빠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밀려서 떨어진 건 뛴 게 아니다. 그건 나도 안다.

몸으로 하는 연기가 하나 더 있다. 요괴를 처음 제대로 보고 놀라 마을을 가로질러 달리는 장면이다. 겁에 질린 달리기인데 이상하게 신나 보인다. 그렇게 느꼈다고 적은 평이 있었고, 나도 그랬다. 무서운 것과 신나는 것이 한 몸에 같이 들어 있는 나이를 그림이 기억하고 있다.

장면 2. 다다미

요괴가 나오기 전까지 이 영화는 느리다. 느린 게 맞다. 모모는 심심하고, 외롭고, 낯선 아이들 앞에서는 새침하게 굴고 붙임성이 없다. 그 심심함을 그림이 어떻게 보여 주느냐가 이 영화의 솜씨다. 모모는 다다미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고 몸을 밀어 자리를 옮긴다. 선풍기 앞에 배를 내놓고 늘어진다. 떼를 쓴다. 말수가 적은 아이의 몸이 대신 떠드는 장면들이다. 이게 얼마나 얄미운 솜씨냐면, 어떤 관객은 이 영화의 인물들이 표정을 너무 안 쓴다고 불평했다. 맞다. 안 쓴다. 안 쓰고 버틴다. 요즘 애들 진짜 저렇게 움직인다고 쓴 관객도 있었다. 나는 두 번째 쪽이다. 크게 웃고 크게 우는 얼굴은 그리기 쉽다. 배 내놓고 늘어진 아이를 두 시간 동안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건 어렵다. 부럽고 얄밉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스틸컷

장면 3. 태풍

후반에 모모는 엄마와 크게 싸운다. 카와가 가져간 엄마의 손거울이 실랑이 끝에 깨진 일이 겹치고, 뺨을 맞는 장면도 있다. 태풍이 오는 밤에 모모는 집을 나가고, 모모를 찾아 나선 엄마는 지병인 천식이 도져 숨을 못 쉰다. 섬에 의사가 없다. 모모는 우편배달부 아저씨와 함께 뭍으로 이어지는 큰 다리를 건너 의사를 부르러 간다. 요괴 셋과 셀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이 비바람을 막는 방패가 되어 준다. 이 장면이 황당하다는 평도 있고, 여기서 펑펑 울었다는 평도 있다. 나는 두 번째였다. 다만 내가 운 건 영혼들의 장관 때문이 아니다. 장면 1에서 다리 위에 멈춰 섰던 아이가, 장면 3에서는 다리 위를 뛰고 있어서다. 같은 다리는 아니다. 그래도 다리다. 영화가 그걸 노렸는지는 모르겠다. 노렸다면 얄밉고, 아니라면 더 얄밉다.

가장 좋았던 1초는 맨 끝에 있다. 요괴 셋은 할 일을 마치고 물방울로 돌아가 하늘로 올라간다. 아빠의 편지는 끝내 모모에게 닿는다. 「모모에게」 뒤에 아빠가 쓰려던 말이 네가 자랑스럽다는 말이었다는 걸 모모와 엄마가 알게 된다. 그리고 모모가 아이들이 뛰어내리던 그 다리에 선다. 뛴다. 물속에 잠긴다. 떠오르기 전까지의 그 짧은 시간. 거기가 1초다. 영화는 그 1초 동안 아무 말도 안 시킨다. 처음부터 말이 없던 아이에게 끝에 와서 말을 시키지 않은 게 이 영화가 제일 잘한 일이다.

다른 식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거다. 모모가 뛰기 전에 하늘을 한 번 보고, 아빠, 하고 부르고, 음악이 커지고. 그게 흔한 선택이고 그렇게 만들었어도 나는 울었을 거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아이를 그냥 뛰게 했다. 뛰는 몸만 보여 줬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하나 더. 모모가 아빠와 마지막으로 싸웠다는 걸 처음 털어놓는 상대는 엄마도 친구도 아니고, 먹을 것만 밝히는 요괴 셋이다. 제일 만만한 상대한테 제일 무거운 말을 꺼내는 것. 그게 열한 살이 할 법한 일이고, 그걸 알고 그린 사람들이 있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포스터

다이빙대 얘기로 돌아가면, 나는 여전히 못 뛴다. 다음 여름에도 양보할 거다. 그래도 멈춰 섰다가 결국 뛰는 아이를 두 시간 동안 본 사람으로서, 변명 하나는 줄이기로 했다. 신중한 거라는 말은 이제 안 한다. 그냥 무서운 거다.

모모야, 네가 물 밖으로 올라오는 1초를 보려고 두 시간을 앉아 있었다. 잘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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