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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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력이라는 자리
우리가 어떤 사람을 두고 오래 일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 말 안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섞여 있다. 하나는 경력이고 다른 하나는 내력이다. 경력은 이력서의 칸에 적히는 것이어서 햇수로 환산되고, 업종이 바뀌면 대개 값이 사라진다. 내력은 그 햇수가 한 사람의 몸에 남긴 것이다. 종이를 쥐는 손의 각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남의 일이 밀려 있을 때 먼저 움직이는 쪽의 발 같은 것. 둘은 같은 세월에 함께 쌓이지만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둘을 한 낱말로 부르고, 그래서 한쪽이 끝나면 다른 쪽도 끝난 줄로 안다.
은퇴라는 말이 쓸쓸하게 들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끝난 것은 경력인데, 끝났다고 여겨지는 것은 사람이다. 그 둘을 떼어 놓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이야기로 해내기는 더 어렵다. 나는 이 영화가 그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고, 왜 그런지를 말해 보려 한다. 다만 촬영이나 편집에 대해 말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이야기와 인물뿐이다.
김도영이 연출한 이 영화는 2026년 9월 16일에 개봉했고 상영 시간은 백삼십이 분이다. 2015년에 나온 같은 제목의 영화를 다시 만든 것이다. 김기호는 서른일곱 해를 출판사에서 일하고 은퇴했으며,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혼자 지낸다. 그는 실버 인턴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론칭 삼 년 만에 업계가 주목하는 회사가 된 패션 브랜드 우투투에 들어간다. 대표 이선우는 그 삼 년 동안 매출 백억을 만든 사람이다. 기호는 인턴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한다. 그가 처음 마주하는 사무실에는 상자와 옷이 산처럼 쌓여 있다.

질문은 이것이다. 서른일곱 해를 쌓은 사람이 그 햇수가 아무 값도 갖지 못하는 자리에 놓일 때, 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 이 영화는 기호의 경력을 거의 쓰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가 흔히 택하는 길이 있다. 옛 직업에서 익힌 기술이 결정적인 순간에 새 직장의 위기를 풀어 주고, 그 보상으로 노인이 자리를 얻는 길이다. 그 길은 편하지만 사람을 도구로 만든다. 쓸모를 증명한 자에게만 자리를 내주겠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 길로 가지 않는다. 기호가 하는 일은 선배에게서 서류를 받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일처럼, 누가 해도 되는데 아무나 그렇게는 하지 않는 일들이다. 서류를 받아 든 그의 자세에는 서른일곱 해가 남아 있지만, 그 서른일곱 해가 출판사의 것이었다는 사실은 끝내 쓰이지 않는다. 남은 것은 경력이 아니라 내력이다.
그가 경력을 꺼내 보이려 할 때 영화가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이 말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 기호는 젊은 사람들의 말을 익혀 와서 써 본다. "어쩔티비", "킹받으세요" 같은 말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미 유행이 지난 말이라는 것이다. 배워 온 것은 통하지 않는다. 팔토시를 두르고 노트북 앞에 앉아 눈치를 살피며 간식을 먹는 그의 모습은,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무엇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의 모습이다. 영화는 그 모습을 서둘러 거두지 않는다. 다만 길게 보여 준다. 나는 이 길이가 이 영화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둘째, 영화는 그의 내력을 회사가 아니라 회사 바깥에서 먼저 보여 준다. 퇴근한 뒤의 하루가 있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추고, 카페에서 휴대폰을 들어 화면 너머의 가족과 이야기하고, 집에서는 꽃을 다듬고, 누군가에게서 찻잔을 건네받는다. 이 장면들은 줄거리를 한 걸음도 밀고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래서 중요하다. 쓸모의 바깥에 놓인 동작들이기 때문이다. 꽃을 다듬는 손과 서류를 바로 쥐는 손이 같은 손이라는 것을, 영화는 설명하는 대신 나란히 놓는 방식으로 말한다. 내력이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직장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하루를 지내는 방식 전체에 배어 있는 것.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노년을 미화하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처음부터 흠 없는 어른을 세워 두고, 그가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를 미덕으로 삼는 것 아니냐고. 틀린 데가 없는 말이지만 정확하지도 않다. 기호가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거의 같은 사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인물을 가운데 세워 둔 이야기에서 변하는 것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눈이고, 이 영화가 오래 지켜보는 것은 그 눈이다. 기호가 성장하지 않는 대신 회사가 그를 알아보는 법을 배운다. 그러니 이 영화가 하지 않기로 한 것은 노인의 성장담이고, 대신 하기로 한 것은 한 사람을 알아보는 과정의 기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선우 쪽의 사정도 함께 읽어야 공평할 것이다. 삼 년에 백억을 만든 사람은 그 삼 년 동안 무엇을 치렀을까. 영화는 그에게 결함을 붙여 벌하지 않고, 다만 그에게 쉴 자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공개된 장면 사진 가운데 기호가 선술집 카운터에 앉아 젊은 사람과 마주 보며 웃고 있는 것이 한 장 있는데, 나는 그 구도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회의실도 사무실도 아닌 자리다. 직급은 사람을 세로로 세우고, 마주 앉는 일은 사람을 가로로 놓는다. 이 영화가 가장 잘하는 일은 인물을 가로로 놓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의 후반에 선우가 전 직원 앞에 서서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네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 이름을 붙이기는 쉽다. 세대의 화해라든가, 뒤늦은 인정이라든가. 그러나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다. 여기서 뒤집힌 것은 부탁의 방향이다. 잘 부탁한다는 말은 본래 자리를 구하는 쪽이 하는 말이다. 면접장에서, 입사 첫날에, 목에 끈을 걸고 하는 말이다. 그 말을 이제 자리를 내주는 쪽이 한다. 고용이 사람을 세로로 세우는 관계라면, 부탁은 그 관계를 잠시 가로로 눕히는 말인 셈이다. 내력은 이렇게 누군가에게 알아봐질 때 비로소 자리가 된다.
이 영화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한 사람의 세월을 알아보는 일이 그 세월의 쓸모를 찾아내는 일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쓸모를 찾아내는 쪽은 쓸모가 다하는 날을 함께 데려온다. 알아보는 쪽은 그렇지 않다. 경력은 업종이 바뀌면 값을 잃지만 내력은 그 사람이 가는 자리를 따라 옮겨 간다고,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른일곱 해가 적힌 칸은 비워질 수 있다. 그 햇수가 손에 남긴 것은 비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오래 일한 사람이라고 부를 때 실은 그 두 번째 것을 부르고 있는 것이라면, 은퇴라는 말도 조금은 덜 쓸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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