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포가튼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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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 유리창의 증명사진 보관 기한에 관한 보고

예민한책장· 2026. 10. 11.· 2,705자

우리 동네 사진관 유리창에는 증명사진이 여남은 장 붙어 있다. 흰 셔츠에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청년, 입매를 조금 굳히신 중년의 사모님, 턱을 당기라는 말씀을 과하게 성실히 따른 듯한 학생. 붙어 있은 지 족히 십 년은 되어 보이는데, 나로서는 저 사진들이 어째서 저기 붙어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견본으로 내어 두신 것인지, 찾아가지 않으셔서 남은 것인지, 찾아가지 않으셨다면 저 청년께서는 저 사진 없이 어느 회사에 원서를 넣으셨는지, 넣으셨다면 되셨는지, 되셨다면 지금쯤 저 얼굴에서 얼마나 멀어지셨는지, 그리고 사진관 주인께서는 대체 몇 해를 더 저것을 붙여 두실 작정인지, 떼어낸 뒤에는 어디에 두시는지, 버리시는지, 서랍에 모아 두시는지, 모아 두신다면 그 서랍은 가게의 비품인지 아니면 동네의 보관소인지. 나 같은 민간인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튼.

포가튼 아일랜드 되겠다.

드림웍스의 쉰 번째 장편이라는 이 영화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함께하는 마지막 밤을 보내던 두 절친이 어쩌다 신비한 포털을 열어 필리핀 신화의 섬 나칼리에 떨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값이 다름 아닌 둘이 함께한 평생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서로를 잊어버리기 전에 섬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줄거리라고 옮겨 적고 보니 다소 민망할 정도로 간명한 이야기를 백여 분에 걸쳐 들려준다. 요컨대 통행료를 기억으로 받는 섬이다. 받는 쪽도 내는 쪽도 영수증이 남지 않는 품목이니, 수금 방식이 꽤 영리하다 하겠다.

영화 좀 보셨다는 분들은 다음 전개를 능히 맞히실 것이다. 낯선 세계에 떨어진 주인공, 길잡이를 자처하며 나타나는 수상쩍은 동물, 초반의 들뜸, 중반의 다툼, 하필 그때, 하필 그 말, 하필 주워 담지 못할 말, 돌아서는 뒷모습, 그리고 마지막 십 분의 포옹. 과연 길잡이를 자처하는 동물이 나온다. 라우 되겠다. 개와 사람 사이를 오가는 존재인데, 업계 관례상 이 자리는 주인공보다 세상 물정에 밝고 결정적인 대목에서 한 수 가르쳐 주는 쪽이 맡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쪽은 허당이다. 길잡이라기보다는 그냥 일행이다. 빨간 조끼에 머리띠까지 매고 등장하시는 품이 어지간히 자신 있어 보이는데, 그 자신감의 근거에 대해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포가튼 아일랜드 스틸컷

이 영화가 섬에 풀어 놓은 식구들을 적어 보자면 이렇다. 아스왕이라 불리는 괴물들, 상하체가 분리되는 마나낭갈, 요정 두엔데의 왕, 눈이 셋 달린 아기 모양의 생물, 그리고 허영심 많은 인어 왕자. 인어 왕자께서 어쩌다 허영심을 갖추게 되셨는지, 눈이 셋이면 무엇이 하나 더 잘 보이는지에 대해 영화는 설명할 뜻이 전혀 없다. 그리고 설명할 뜻이 없다는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신화란 본디 해설을 붙이는 순간 시들해지는 물건이고, 할머니께서 손주에게 들려주실 때 「왜요」를 여쭙지 않는 것이 그쪽 업계의 오랜 예의였던 것이다. 요즘 영화들이 세계관이라는 이름으로 족보를 읊느라 바쁜 것을 생각하면, 그냥 무서운 것을 무섭게 내어놓고 마는 이 태도가 차라리 구수하다.

포가튼 아일랜드 포스터

섬을 지배하는 쪽은 마낭이다. 마나낭갈이라 불리는 전승 속의 존재로,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다. 제작진은 이 분의 움직임을 설계하기 위해 안무가를 따로 모셨다. 팝 앤 락, 그러니까 관절을 뚝뚝 끊어 치는 그 춤을 바탕으로 동작을 짰다고 한다. 괴물의 걸음걸이에 안무가를 붙이자는 기안이 대체 어느 부서에서 올라와 어느 선에서 결재가 났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으나, 결재하신 분께 뒤늦게 감사를 드린다. 이 분은 어둠 속에서 실루엣만 비쳐도 극장 공기가 한 단계 서늘해진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방편으로 하필 춤을 고른다는 것은 아무나 떠올리는 수가 아니다. 차라리 장인의 솜씨로 보인다 하겠다.

이 영화의 가장 번듯한 구석은 따로 있다. 기억을 꺼낼 때마다 작화가 통째로 바뀐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3D인데, 두 사람의 지난 시간이 끼어드는 대목에서는 화면이 2D로 접힌다. 1990년대 일본 만화의 선이다. 만드신 분들은 세일러 문과 드래곤볼 Z를 들어 그 감각을 가져왔다고 밝히셨다. 이제부터 회상입니다, 하고 자막이나 흐린 화면으로 알려 주는 대신 재질을 아예 갈아 버리는 쪽을 택한 셈인데, 이것이 짐작보다 훨씬 정확하다. 사람의 기억이 실제로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눈앞의 일은 입체이고 지나간 일은 평면이다. 두 사람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자꾸 사진을 남기는 것도 결국 같은 이치다. 입체를 평면으로 한 번 눌러 두어야 비로소 간수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가 두 분께 시키는 일은 하나다. 섬을 나가되 서로를 두고 나가지는 말 것. 광고 문구부터가 기억을 단 하나도 두고 오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게 다다.

극장을 나와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그 사진관 앞을 또 지났다. 유리창의 증명사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저것이 안 찾아간 사진으로 보이지 않았다. 저건 주인을 잃은 얼굴이 아니라, 누군가 대신 붙들고 있어 주는 얼굴이었다. 정작 당사자께서는 저 얼굴을 벌써 잊으셨을 것이다. 흰 셔츠를 입고 턱을 당기던 그 저녁을 기억하는 쪽은 사진관 주인이지 사진 속 청년이 아니다. 그러니 저 유리창은 견본대도 아니고 미인수품 보관대도 아니고,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기억 장치인 셈이다. 뭐, 기억이라는 게 원래 제 손으로 들고 다니는 물건이 아니라 남의 유리창에 얹혀 있는 물건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그 앞을 지나면 주인께 여쭤 볼 작정이다. 저 사진들, 언제까지 붙여 두실 거냐고. 그러고는 또 그냥 지나칠 것이다. 매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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