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철들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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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을 찍고 나온 분께
현숙 씨. 법원에서 나와 차를 몰다가 신호등 앞에 섰을 때, 거기 서 있는 사람을 보셨지요. 이혼 도장을 찍고 나온 날이었어요. 오래 별거한 남편이 길 건너에 있었습니다. 이분은 차 안에서 혼자 중얼거려요. 많이 늙었네. 그 한마디를 듣고 저는 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철들 무렵」에는 아픈 사람도 있고 돈이 없는 사람도 있고 꿈이 안 풀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제 눈에 제일 오래 남은 분은 아픈 사람이 아니라 이분이었습니다. 남편이 암 진단을 받았는데 병실에 달려가지 않는 전처. 딸이 간병하다 지쳐 가는데 그 자리를 대신 서 주지 않는 엄마. 영화를 보다 보면 이분을 서운해하기가 참 쉽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요, 이분이 한 일과 안 한 일을 하나씩 세어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먼저 한 일이에요. 이분은 일을 마치고 퇴임하셨고, 혼자 노후를 보내기로 하셨습니다. 그 생활에 애착이 많으세요. 그리고 오래 미뤄 둔 이혼을 끝냈습니다. 도장을 찍었어요. 서류로만 남아 있던 결혼을 서류로 정리한 겁니다. 그 서류는 사실 남편에게도 필요한 일이었어요. 법적인 아내가 있다는 이유로 남편은 기초생활보장을 신청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이분이 도장을 찍은 것은 자기를 위한 일이면서, 결과적으로 남편의 길을 터 주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로 한 일은 잔치예요. 어머니 옥남 씨가 구순을 맞습니다. 형제가 다섯인데, 나머지 넷이 어머니를 모시는 일을 이분에게 넘기려 해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혼자 사니까. 혼자 산다는 것이 왜 돌봄을 맡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 영화는 묻지 않고 그냥 보여 줍니다. 이분은 그 압력을 정면으로 받는 대신 구순 잔치의 진행을 떠맡아요. 잔치를 치르는 것으로 자기 몫을 하겠다는 거지요. 모시는 일은 못 하겠고,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되기 싫은 마음. 저는 그 마음이 이해됐어요.
그리고 안 한 일입니다. 남편의 병에 직접 나서지 않았고, 딸의 불안에도 직접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딸 정미 씨는 혼자 병실을 지키다 시들어 가고, 효도계약서까지 씁니다. 간병에 쓴 시간과 돈을 돌려받겠다는 문서예요. 딸이 그런 문서를 쓰는 동안 엄마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영화는 이분의 지난날을 길게 보여 주지 않아요. 그러니 저도 지어내지 않겠습니다. 다만 화면에 있는 것만으로 짐작해 보면, 아마 이분은 가족을 위해 쓰는 시간을 이제 막 끝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퇴임을 했고, 별거를 했고, 혼자 사는 집을 꾸렸습니다. 그렇게 만든 시간에 다시 남편의 병과 어머니의 노년이 들어오려 하니, 문을 닫은 거겠지요. 이상해서가 아니에요. 자기 시간을 처음 가져 본 사람은 그 시간을 누가 가져갈까 봐 조심하게 됩니다.
그래도 짚을 것은 짚겠습니다.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딸이 혼자 지친 것은 사실이고, 엄마가 거기 없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이분이 지킨 시간의 값을 딸이 치렀습니다. 영화는 이분을 나무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괜찮다고도 하지 않아요.
이분이 들은 말을 생각해 봅니다. 형제들에게서는 혼자 사니까 네가 모시라는 말을 들었어요. 딸에게서는 말 대신 계약서가 왔습니다. 남편에게서는 아무 말도 오지 않았고, 신호등 앞에서 본 것은 늙은 얼굴뿐이었어요. 이분에게 온 말은 전부 무엇을 맡으라는 말이었습니다. 네 시간은 네 것이라고 말해 준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말을 결국 해 준 사람이 있습니다. 어머니예요. 구순 잔치가 끝나고 옥남 씨가 자식들 앞에서 선언합니다. 나한테 너희는 과거야. 나도 미래를 그려 봐도 되지 않겠니.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겠다는 말이지요. 저는 이 장면을 이분의 자리에서 다시 봤습니다. 모셔야 할 어머니가 먼저 손을 놓아 준 거예요. 아흔의 어머니가 퇴임한 딸에게, 너도 네 미래를 살라고 한 셈입니다. 이분이 듣고 싶었던 말은 아마 이 말이었을 거예요. 그 말이 남편에게서도 딸에게서도 아니고, 가장 돌봄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서 왔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좋은 대목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숙 씨. 도장을 찍고 나온 날 신호등 앞에서 그 사람을 보고 늙었다고 하셨지요. 그 말에는 미움도 없고 그리움도 없었어요. 그냥 본 것을 말한 거예요. 오래 같이 살았던 사람을 그렇게 볼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리셨을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그 자리까지 오신 것만으로도 이분은 이미 많은 일을 하신 거라고, 저는 그렇게 믿어요.
추신. 이 영화를 보실 분께 한 가지만 부탁드려요. 병실에 안 온 사람을 미워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디에 있었는지 한 번만 더 보세요. 영화는 그 자리를 꼭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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