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백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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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에는 에너지가 든다는 것

막판뒤집기· 2026. 10. 12.· 3,012자

방은 가만히 두면 어지러워진다. 벽지는 바래고, 카펫은 닳고, 형광등은 깜빡이다 꺼진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깨끗한 방이 있다면 누군가 에너지를 쓴 것이다. 그 사람이 손을 떼는 순간부터 방은 원래 가려던 쪽으로 다시 간다.

2026년 5월 27일에 국내 개봉한 110분짜리 공포 영화다. 유튜브에 올린 짧은 영상 연작으로 시작한 이야기를 그 영상을 만든 케인 파슨스가 스무 살에 첫 장편으로 옮겼다. 각본은 윌 수딕이 썼고 A24가 내놓았다. 클라크는 건축가가 되지 못하고 샌호세에서 손님 없는 할인 가구점을 운영하는 남자다. 상담사 메리 클라인에게 다닌다. 메리는 어릴 때 살던 집이 헐린 일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어느 날 클라크는 가게 지하실 벽에서 빛나는 틈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떨어진다. 영화는 1990년에 한 연구원이 같은 곳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기록 영상으로 문을 연다.

안쪽은 누런 벽지와 카펫과 형광등뿐인 방이 끝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제작진은 이 공간을 먼저 3D 소프트웨어로 짓고 그것을 실물로 옮겼다. 바닥이 어긋나고 물건이 벽을 뚫고 나오는, 컴퓨터가 렌더링을 실패한 것 같은 공간을 일부러 만들었다. 배우들이 세트 안에서 길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백룸 스틸컷

과학의 눈으로 보면 먼저 면적이 궁금하다. 세트는 사운드스테이지 네 곳에 걸쳐 지었고 벽지가 3만 제곱피트 넘게 들었다고 한다. 1제곱피트를 0.093제곱미터라고 치면 대략 2,800제곱미터다. 축구장 하나가 7천 제곱미터 남짓이니 그 절반이 안 된다. 그런데 화면에서는 끝이 없다. 끝없음은 면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같은 방을 다른 각도로 다시 찍고, 돌아온 자리가 처음 자리인지 알 수 없게 이어 붙여서 만든다. 무한은 공간의 성질이 아니라 기억의 실패다. 이 영화는 그 점을 알고 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정도를 재는 양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바깥과 에너지를 주고받지 않는 계에서 엔트로피는 줄어들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치우지 않은 책상, 손보지 않은 다리, 아무도 쓰지 않는 수영장. 셋 다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질서를 유지하려면 바깥에서 에너지를 넣어야 한다. 사람이 청소를 하고, 수리공이 볼트를 조이고, 관리인이 물을 간다.

클라크는 메리에게 백룸을 이렇게 설명한다. 현실 세계의 캐시 같은 곳이라고. 잊힌 장소가 여기 저장된다. 기억이 바래면 장소도 특징을 하나씩 잃고, 끝내 누런 벽만 남는다. 과학의 말로 다시 적으면 이렇다. 장소는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의 에너지로 유지된다. 문손잡이의 모양, 창가의 얼룩, 카펫의 무늬는 누군가 떠올릴 때마다 다시 칠해진다. 아무도 떠올리지 않으면 칠이 벗겨진다. 남는 것은 가장 흔한 색, 가장 흔한 바닥, 가장 흔한 조명이다. 백룸이 누런 이유가 그것이다. 특별한 것은 유지비가 들고, 흔한 것은 들지 않는다.

클라크는 메리에게 보여 주려고 가게 직원 캣과 캣의 남자친구 보비를 데리고 들어간다. 광고를 찍는다는 핑계였다. 보비는 보이지 않는 것에 끌려가고, 캣은 나중에 냉장고 안에서 머리만 발견된다. 그 안에는 사람을 베끼려다 실패한 것들이 있다. 영화는 이것들을 스틸 라이프라고 부른다. 흰 물질로 된 사람 모양이고, 통증을 못 느끼고, 양심이 없다. 그리고 괴물이 있다. 클라크가 가구점 광고에서 연기하던 해적의 복사본이다. 키가 2미터를 넘고 다리 하나가 의족이다. 광고는 보통 사람의 기억에서 가장 먼저 지워지는 것이다. 이 가구점에서는 가장 오래 남았다.

복사에 관한 사실 하나. 복사기로 뜬 복사본을 다시 복사하고, 그것을 또 복사하면 글자가 뭉개진다. 원본에 없던 얼룩이 생기고 있던 획이 사라진다. 정보를 그대로 옮기는 데에도 에너지가 들고, 아끼면 그만큼 잃는다. 스틸 라이프는 그 손실을 사람 모양으로 보여 준다. 얼굴이 뭉개진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뭉개진 것이다. 통증이 없고 양심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 둘은 복사할 때 가장 먼저 빠지는 정보다.

백룸 스틸컷

메리는 클라크를 찾으러 들어갔다가 그에게 붙잡힌다. 식탁 앞에 붙잡혀 앉은 채 상담을 다시 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클라크가 원하는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다. 메리는 그 말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한다. 그때 해적이 와서 클라크를 먹는다. 복사본이 원본을 삼킨다. 메리는 어릴 적 집 진입로에서 떼어 온 콘크리트 조각으로 괴물을 치고 도망친다. 그 조각은 어머니가 남겨 준 것이고, 손자국이 찍혀 있다.

마지막은 법칙으로 적을 수 있다. 집은 헐렸다. 집을 이루던 질량은 사라지지 않고 흩어졌다. 그중 한 줌이 손자국이 찍힌 채 한 여자의 가방 안에 남았다. 질량은 보존된다. 보존된 질량 한 줌이 2미터짜리 복사본의 머리를 친다. 그다음 가스가 퍼지고,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온다. 애싱크라는 조직이다. 1980년대 말에 이 공간을 우연히 발견하고 조사해 왔다. 필이라는 연구원이 메리를 심문한다. 메리는 그곳을 현실을 잘못 기억해서 만든 불량 복사본이라고 말한다. 나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필은 자기가 정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화면은 그 심문실을 어설프게 베낀 방으로 넘어간다. 거기 메리의 복사본이 가만히 앉아 있다.

백룸 스틸컷

법칙은 모른다. 벽지는 자기가 잊혔는지 모른다. 콘크리트는 그것이 어느 집 진입로였는지 모른다. 형광등은 클라크가 왜 지하실로 내려갔는지 모르고, 가스는 메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제2법칙은 가구점 하나가 망하는 것과 한 사람이 무너지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 둘 다 유지에 에너지가 들었고, 에너지가 끊겼고, 원래 가려던 쪽으로 갔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의미를 보았다. 메리는 헐린 집의 조각을 들고 다녔다. 그것은 집 한 채를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어서, 한 줌만 유지하기로 한 사람의 선택이다. 클라크는 반대였다.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는 말을 유지하려고 상담사를 붙잡아 앉혔다. 한쪽은 한 줌을 지켰고 한쪽은 전부를 요구했다. 영화는 둘 중 누가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한 줌을 든 사람이 괴물에게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게 읽은 것은 벽지가 아니라 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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