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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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한 벌로 군중을 재우는 법

삐딱하게보기· 2026. 10. 12.· 4,140자

고백하건대 나는 떼로 몰려오는 것들을 몹시 좋아한다. 하나하나는 어리석은데 모아 놓으면 돌연 영리해지는 것들 말이다. 개미, 새 떼, 그리고 극장 로비의 군중.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좀비라는 장르는 오래도록 야박했다. 그 많은 떼가 한 번도 서로 의논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의논부터 시켜 놓고 시작한다.

영화는 112 신고 전화 한 통으로 문을 연다. 생화학 테러를 예고하는 목소리다. 그리고 곧 초대장 한 장이 나온다. 권세정이 받아 든 컨퍼런스 초대장에는 '소통의 불완전함에서 발생하는 비극'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단상에서는 뇌도 신경도 없이 길을 찾아내는 황색망사점균 실험이 발표된다. 각본이 관객에게 계약서를 내밀고 그 자리에서 도장까지 찍어 보이는 대목이라 하겠다.

서울 도심의 초고층 빌딩이 봉쇄되고 감염자들이 쏟아진다. 처음에는 네발로 긴다. 그러다 돌연 일제히 멈춘다.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머리를 쳐들며 경련한다. 경련이 끝나면 두 발로 걷는다. 그다음 경련이 끝나면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낸다. 게임이 저장되는 동안 화면이 잠깐 멎는 것 같은 이 장면을 나는 몇 번이나 되새겼고, 되새길수록 조금 분해졌다.

군체 스틸컷

떼의 몸짓이 유난히 기이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감독은 감염자 무리의 움직임을 현대무용팀과 함께 짰다고 밝힌 바 있다. 추상적인 감정을 몸으로 옮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뇌가 하나로 붙어 버린 무리의 동작을 맡긴 것이다. 그래서 이 떼는 달려들 때보다 멈춰 있을 때가 더 무섭다. 같은 각도로 고개를 꺾은 수십 개의 목이 한 박자로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것이 안무라는 사실이 오히려 공포를 키운다. 무용수에게 좀비를 맡긴 사람의 속셈이 자못 짓궂다.

공간을 고른 솜씨도 적어 둘 만하다. 이 영화는 도시를 보여 주지 않는다. 봉쇄된 빌딩 한 채가 세계의 전부이고, 층과 층 사이가 국경이 된다. 컨퍼런스홀, 등산복 매장, 통제실, 주차장이 차례로 전선이 되는 동안 카메라는 좀처럼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떼로 뭉친 것들을 다루는 영화가 정작 화면은 좁게 쓰는 이 역설이 영리하다. 넓은 데서 몰려오는 떼는 재난이지만, 닫힌 복도에서 몰려오는 떼는 계산 문제가 된다.

생존자들은 등산복 매장으로 숨어든다. 마네킹과 입간판 사이에 서서 숨을 죽인다. 처음에는 통한다. 그러나 떼는 이내 사람과 마네킹을 갈라내는 법을 배운다. 더 고약한 것은 그다음이다. 휠체어를 쓰던 최현희가 휠체어를 버리고 최현석의 등에 업히자, 감염자들도 서로를 업기 시작한다. 살아남는 요령을 가르쳐 준 쪽이 살아남으려던 쪽이라는 이 뻔뻔한 설계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소통이 주제라고 선언한 영화답게, 이 영화는 통신 도구를 하나씩 꺼내 쓴다. 신고 전화로 열고, 초대장 문구로 판을 깔고, 통제실의 통화로 바깥과 가느다랗게 이어 둔다. 권세정이 불 켜진 휴대폰 화면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글자로 뜻을 전하는 장면도 그 목록의 하나다. 입으로 말하면 떼가 알아듣고 따라 하니, 사람 쪽이 오히려 말을 버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말을 빼앗긴 인간과 말을 배우는 떼가 한 건물 안에서 자리를 맞바꾸는 이 구도는 공들여 세운 것이다.

군체 스틸컷

이쯤에서 계산서를 한 장 들여다보자. 감독은 처음 쓴 시나리오가 168페이지였고 그대로 찍으면 세 시간을 넘길 것 같아 100페이지로 줄였다고 말했다. 68페이지를 버린 셈이다. 완성된 영화는 122분이고, 극장에서 관객이 체험하려면 빠른 속도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 그가 댄 이유였다. 버려진 68페이지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남은 100페이지가 설명보다 행동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보는 내내 느껴진다. 인물의 사연이 얇다는 말은 그래서 절반만 맞다. 얇아진 것이 아니라 잘려 나간 것이다.

좀비물에는 저 유명한 법칙이 하나 있다. 머리를 부수면 그 한 구가 멈춘다는 법칙이다. 이 영화는 그 법칙의 단위를 통째로 바꿔 놓는다. 여기서 머리는 한 구의 두개골이 아니라 떼 전체가 공유하는 기억이다. 그러니 싸움의 목표도 달라진다. 몇 구를 쓰러뜨렸느냐가 아니라, 저들이 무엇을 알고 있고 그 앎을 어떻게 틀리게 만드느냐가 전부가 된다. 액션 영화의 목표를 산술에서 정보로 옮겨 놓은 이 한 수가 이 영화의 가장 비싼 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것은 총도 칼도 아닌 외투 한 벌이다. 후반부에서 권세정은 균사체로 뒤덮인 외투를 떼 한복판으로 던진다. 그러자 감염자들이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하고, 끝내 멈추지 못한다. 앞선 동료가 남긴 자취만 따라 돌다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개미들의 행렬, 앤트밀이다. 불과 쇠가 널린 건물에서 결정적인 무기로 옷 한 벌을 고른 선택을 보라. 틀린 정보를 입혀 둔 천 조각 하나가 수백을 세워 놓는다. 이 배짱 앞에서 나는 감탄했고, 감탄한 만큼 분해졌다.

군체 스틸컷

이 모든 것의 설계자는 서영철이다. 그는 떼 속을 제집처럼 걸어 다니고, 던져진 외투를 손수 벗겨 내 학습을 처음으로 되돌린다. 무기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무기가 심어 둔 오해를 지우는 방식으로 반격하는 악당은 흔치 않다. 그가 원한 것은 사람의 뇌를 전부 하나로 잇는 일이었다. 소통이 불완전해서 비극이 생긴다면 아예 완전하게 이어 버리자는 결론이다. 초대장의 그 문구는 인사말이 아니라 계약서의 작은 글씨였던 셈이다.

여기서 영화가 계약을 지키는 방식을 하나 더 확인하게 된다. 첫 장면 단상에 올랐던 점균이 마지막에 무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발표용 표본으로 소개된 것이 외투에 묻어 떼를 쓰러뜨리는 물건이 되기까지, 영화는 중간에 그것을 한 번도 자랑하지 않는다. 심어 둔 물건을 끝에 가서 쓰는 수법이야 각본가라면 자다가도 쓴다. 다만 심어 둔 것을 두 시간 동안 입 밖에 내지 않고 참는 일은 자다가는 못 한다.

감독은 AI가 보편적인 사고의 총합으로 움직인다면 소수에 속한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생각에서 이 디스토피아를 지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면 이 영화의 괴물은 사납기보다 공정하다. 떼는 미워하지 않고 다만 평균을 낼 뿐이다. 평균에서 밀려난 자가 먹힌다는 설정은 좀비보다 훨씬 오래된 공포이기도 하다. 그 거대한 설계의 바닥에 깔린 것이 결국 지극히 사사로운 원한이라는 점은, 영화가 제 주제에 스스로 놓은 덫처럼 보인다.

불만은 하나만 적는다. 건물 보안요원 최현석이 중반을 넘기면서 돌연 특전사처럼 싸운다. 감염자에게는 경련 한 번마다 배우는 장면을 그토록 정성껏 붙여 주었건만, 사람이 갑자기 능숙해지는 데에는 아무 장면도 붙여 주지 않았다. 떼에게는 학습의 근거를 주고 주인공에게는 주지 않는 것은 관객을 다소 얕본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배우는 존재를 주제로 삼은 영화에서 사람만 공짜로 배우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공들여 쓴 계약서에 한 줄이 비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한규성에게 주어진 퇴장도 짚고 싶다. 특별출연이라는 이름으로 잠깐 들렀다 가는 배우에게 보통은 멋진 한 방을 쥐여 준다. 이 영화는 그를 남의 아이를 부축하다 붙잡히는 사람으로 쓴다. 공개된 한 장면에서 그는 교복 차림의 학생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 뒤를 돌아보고 있고, 그 어깨 너머로 기어 오는 것이 보인다. 잠깐 나오는 사람에게 영웅의 자리 대신 남을 돌보다 늦는 자리를 준 배치는 인색해 보이지만, 떼와 맞서는 이야기에서는 그편이 정직하다.

군체 스틸컷

이 영화가 칸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걸렸다는 사실도 한 번 짚고 싶다. 자정에 피와 점액을 보러 모인 관객 앞에서, 떼가 일제히 멈추고 경련하는 장면이 어떻게 보였을지 상상하면 조금 즐거워진다. 그 부문은 원래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자리다.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굳이 생각할 거리를 들고 간 것이 이 영화의 태도다. 점잖은 얼굴로 저급한 것을 끝까지 편드는 일에는 언제나 품이 든다.

끝에서 서영철은 불타는 차 안에서 죽는다. 그가 멎자 떼도 일제히 멎는다. 머리를 끊으면 몸이 멈춘다는, 영화가 처음에 써 준 각서 그대로다. 그런데 영화는 거기서 한 걸음을 더 간다. 굳어 있던 것들 가운데 하나가 의식을 되찾고 포효한다. 약속을 다 지킨 다음 도장 찍힌 계약서를 관객 앞에서 한 번 흔들어 보이는 짓이다. 그것도 아주 뻔뻔하게.

모름지기 떼란 하나가 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마지막에 깨워 둔 한 마리는 필경 그 일을 하라고 남겨 둔 것이겠다. 나는 그 한 마리 편을 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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