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3학년 2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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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서 바뀐 것과 바닥에서 바뀌지 않은 것
창우의 현장실습은 석 달이다. 10월에 시작해 12월에 끝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이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계속 생각했다. 열아홉 살이 공장에서 석 달을 보내는 일은 누군가 정한 것이다. 정한 사람들은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정한 조건 안에서 창우가 움직인다. 이 글은 그 조건을 들여다보는 글이다.
그때
영화의 배경을 제도 쪽에서 읽어 보면 이렇다. 2017년 11월 제주의 한 생수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나갔던 학생이 기계에 끼여 숨졌다. 그해 12월 교육부는 취업을 앞당기는 형태의 현장실습을 없애고 실습 기간을 여섯 달에서 석 달로 줄였다. 실습생의 신분은 학생으로 못 박혔고, 근로계약서 대신 표준협약서를 쓰게 됐으며, 임금이라는 말은 현장실습비로 바뀌었다. 2018년부터 적용된 이른바 학습중심 현장실습이다.
그런데 기간을 줄이자 기업이 빠져나갔다.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은 2016년에 3만 곳이 넘었는데 2019년 1월에는 1만 2천 곳 남짓으로 줄었다. 고졸 취업이 막힌다는 말이 나왔고, 교육부는 2019년 1월 말에 보완책을 냈다. 3학년 2학기를 전환학기로 두어 실습을 나가거나 전공 수업을 듣게 하고, 학생이 원하면 실습을 최대 여섯 달까지 다시 늘릴 수 있게 했다. 선도기업으로 뽑히지 않은 회사도 학교 운영위원회 심의만 거치면 실습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2021년 10월 여수의 요트 업체에서 실습 첫날 잠수 작업을 하던 학생이 숨졌다. 두 달 뒤 정부는 실습 기업 전부를 사전에 실사하겠다는 대책을 또 냈다.
줄였다가, 늘렸다가, 다시 조였다. 영화 제목이 3학년 2학기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학기는 2019년 이후 제도상으로 전환학기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수업을 듣는 학기도 되고 공장에 나가는 학기도 되는, 두 얼굴의 학기다.
영화는 이 사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사정이 밴 장면을 둔다. 첫 번째는 담임의 자리다. 창우는 처음 지원한 중견기업 실습에서 떨어진다. 담임이 다른 회사를 권하면서, 거기 취업이 되면 대학 진학과 병역특례까지 이어진다고 말한다. 우재가 묻는다. 중견이에요? 담임이 답한다. 중소야. 이 두 마디 안에 2019년의 보완책이 들어 있다. 창우가 가게 되는 남동공단의 작은 공장은 아마 그때 열린 문 덕에 실습생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총무팀의 다혜다. 감독이 밝힌 설정에 따르면 다혜는 2년 근로계약을 채우면 실습지원금과 취업장려금으로 800만 원을 받아 구제 옷 가게를 차릴 계획이다. 창우도 나중에 실습비와 취업장려금을 모아 엄마와 새집을 얻는다. 지원금이라는 말이 두 아이의 계획표 맨 위에 있다. 학생이 공장에 가는 일에 나라가 돈을 붙이는 구조, 그것이 그때의 사정이다.
지금
2026년 가을에 이 영화를 보면 무엇이 달리 보일까. 나는 종이와 바닥이 따로 논다는 것이 보였다.
종이에서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창우는 계약서에 이름을 쓰고, 작업일지를 쓰고, 출근부에 이름을 쓴다. 쓸 때마다 또박또박 공을 들인다. 지원금이 있고, 협약서가 있고, 전환학기라는 이름이 있다. 제도가 세 번 고쳐지는 동안 종이의 양은 분명히 늘었다.
바닥은 다르다. 창우가 일하는 공장의 2층 창고 난간에는 추락을 막는 장치가 없다. 작업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안전 펜스를 세우지 않은 자리에 창우가 무심한 얼굴로 서 있다. 위험한 일은 외주 업체가 한다는 말이 관리자의 입에서 나온다. 그 말이 맞다면 왜 실습생이 그 자리에 서 있을까? 실습 기업을 전부 사전에 실사하겠다는 대책은 2021년 12월에 나왔다. 영화 속 공장도 아마 서류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제도는 기간과 신분과 서류를 고쳤다. 여섯 달을 석 달로, 노동자를 학생으로, 근로계약서를 협약서로. 그런데 공장 바닥의 조건은 서류가 바뀐다고 같이 바뀌지 않는다. 난간은 서류를 읽지 않는다. 이 말은 절반만 맞다. 누군가 다친 뒤에 회사가 보호 장구를 꺼내 오는 장면이 있으니, 바닥도 결국은 움직인다. 다만 종이보다 훨씬 늦게, 사람이 다친 뒤에 움직인다.
감독은 취재 과정에서 들은 숫자를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직업계고 학생 가운데 30% 정도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30% 정도가 실습을 나가는데, 실습을 나간 학생의 40% 정도가 도중에 그만둔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우재가 먼저 떠나고 성민이 떠난다. 남는 것은 창우 하나다. 제도가 고쳐질 때마다 숫자는 조정됐지만, 남는 아이와 떠나는 아이의 비율은 그 숫자 바깥에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창우는 졸업식 날에도 공장에 출근한다. 전환학기는 끝났고, 실습생이었던 사람은 직원이 됐다. 종이에서는 이보다 깔끔한 결말이 없다. 영화는 일하는 그 얼굴을 가까이 잡고 끝난다. 표정이 없다. 나는 그 얼굴이 종이와 바닥 사이 어디쯤에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석 달이라는 숫자는 어른들이 회의실에서 정했다. 그 석 달을 몸으로 채운 것은 열아홉 살이다. 다음에 숫자를 고칠 때, 그 방에 창우 같은 아이가 한 명이라도 앉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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