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3학년 2학기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갈변한 사과와 멈추지 않는 날
사장실. 사장이 사과를 먹는다. 깎아 둔 지 오래돼 누렇게 변한 사과다. 그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나는 이 컷에서 이 영화를 믿기로 했다. 물건 하나로 사람을 설명하는 영화는 대사 열 줄로 설명하는 영화보다 늘 옳다.
솔직히 말하자. 나는 노동을 다루는 영화의 물건들을 대체로 믿지 않는다. 새 작업복은 너무 새것이고, 공장은 너무 깨끗하거나 너무 더럽고, 소품은 메시지를 들고 서 있다. 이 영화의 물건 세 개를 꺼내 판정한다. 맞는지 틀렸는지.
물건 1. 그라인더, 그리고 오지 않는 가죽 앞치마
그라인더는 스위치를 꺼도 바로 멈추지 않는다. 날이 관성으로 돈다. 영화는 이걸 여러 번 보여 준다. 우재가 그라인더를 쓸 때마다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실수를 반복하고, 그때마다 가죽 앞치마와 팔 토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은 몇 번이고 나온다. 앞치마는 오지 않는다. 누군가 그라인더를 놓쳐 팔을 꿰맨 뒤에야 회사가 보호 장구를 내놓는다.
판정. 물건은 맞다. 장치는 틀렸다. 그라인더 자체는 정직한 물건이다. 꺼도 도는 날은 비유가 아니라 기계의 성질이고, 영화는 그 성질을 과장 없이 찍는다. 어떤 글은 이 그라인더가 너무 예상 가능한 상징이라고 했다. 나는 반대다. 상징이 되기 전에 먼저 물건인 것이 좋았다. 틀린 쪽은 앞치마다. 정확히는 앞치마가 없는 상태를 영화가 너무 오래 끌고 간 것이다. 대사로 여러 번 요구되는 물건이 끝내 화면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 부재가 물건보다 커진다. 소품이 메시지를 들고 서 있는 걸 믿지 않는다고 앞에서 썼다. 없는 소품도 메시지를 들 수 있다는 걸 이 영화에서 배웠다. 그게 영화의 선택인 건 안다. 그래도 가죽 앞치마가 한 번쯤 걸려 있는 걸 보고 싶었다.
물건 2. 사장실의 갈변한 사과
다시 사과로 돌아간다. 감독은 취재 중에 실제로 그런 사장을 만났다고 했다. 제작진에게는 새 사과를 내주고 본인은 갈변한 사과를 먹는 사람. 영화는 그걸 그대로 옮겼다. 창우가 일하는 회사는 송대리가 요청한 안전장비를 좀처럼 사 주지 않는 회사다. 사장은 사과도 아낀다. 두 사실이 한 컷에 겹친다.
판정. 맞다. 이 사과는 사장을 악인으로 만들지 않아서 맞다. 아끼는 사람은 모든 걸 아낀다. 자기 사과도, 남의 앞치마도. 악의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이고, 사과는 그 무서움을 한 알로 보여 준다. 여기도 뻔하다는 평이 있었다. 뻔하다는 말은 알아보기 쉽다는 말이다. 나는 알아보기 쉬운 물건이 싫은 게 아니라 설명하는 물건이 싫다. 이 사과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먹힌다. 사장이 사과를 씹으며 안전이 어쩌고 하는 대사를 한 줄이라도 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껐을 것이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았다.
물건 3. 캐비닛 이름표
우재의 캐비닛에 이름표가 붙어 있다. 회사가 잘못 뽑아서 김오재라고 적혀 있다. 우재는 그걸 그냥 두지 않고 우재라고 고쳐 쓴다. 손글씨로. 인쇄된 틀린 이름 위에 얹힌 맞는 이름.
판정. 맞다. 이 영화에서 제일 멋있는 물건이다. 창우는 영화 내내 이름을 쓴다. 계약서에, 작업일지에, 출근부에. 쓸 때마다 공을 들인다. 그런데 창우의 이름은 늘 회사가 준 칸 안에 쓰인다. 우재의 이름만 칸 밖에 있다. 회사가 틀린 이름을 줬을 때 그걸 고친 사람은 우재뿐이다. 우재는 얼마 못 가 실습을 그만둔다. 나는 우재가 그만두는 게 아쉽지 않았다. 자기 이름을 고쳐 쓸 줄 아는 사람은 어디서든 산다. 틀린 이름표를 그냥 두고 일하는 사람이 공장에 남는다. 영화가 그걸 좋다 나쁘다 하지 않는 것도 맞다.
소리 이야기를 하나 보탠다. 첫 장면부터 기계 소음이다. 철의 모서리를 다듬는 육중한 기계와 그 앞의 앳된 얼굴. 음악이 들어올 자리에 소음이 먼저 와 있다. 그 소음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물건이다.
스타일이 인물을 말해 주는 지점을 정리한다. 사과는 사장을, 이름표는 우재를, 오지 않는 앞치마는 회사를 말한다. 창우를 말해 주는 물건은 뭘까. 나는 창우의 물건이 없다는 게 창우라고 생각한다. 첫 월급 60만 원으로 창우가 산 것은 막냇동생의 브랜드 치킨과 둘째의 블루투스 이어폰이다. 자기 것은 없다. 자기 이름을 칸 안에 쓰고, 남의 물건을 사고, 남이 안 주는 앞치마를 기다리는 사람. 그게 창우다.
이 영화는 불편하다. 좋다. 모순이 아니다. 물건이 전부 제자리에 있어서 불편하고, 제자리에 있어서 좋다.
가죽 앞치마 하나만 걸려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그건 영화 탓이 아니라 공장 탓이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