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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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때문이었다는 말을 받아 적었다
흑백 영화다. 1930년대 알제리. 두 시간이 조금 넘는다.
받아 적을 게 많은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이 말을 거의 안 한다. 그래서 적은 것들이 더 또렷하게 남았다. 열한 개다. 순서대로 꺼낸다.
1. 명랑한 뉴스 화면
영화는 옛날 뉴스 영화 흉내로 시작한다. 경쾌한 음악, 아나운서 목소리, 프랑스가 근대화해 준 멋진 도시 알제. 화면 속 아랍 사람들 얼굴만 그 말을 따라 하지 않는다.
관광 홍보물로 시작하는 살인 영화. 첫 장면부터 두 줄 깔고 한 줄 뒤집는다.
2. 첫 대사
아랍인 하나를 죽였습니다.
감옥 안, 대부분 아랍인인 수감자들 사이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내놓는 첫 문장이다. 원작 소설의 유명한 첫 문장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이었다. 영화는 그 자리에 피해자를 세운다.
누가 죽었는지부터 말하는 영화. 그 다음 두 시간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다.
3. 혼자 안고 자는 남자
침대에서 깬다. 연인 마리의 팔이 그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가 물러나면 자기 팔로 자기를 안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다정한 장면이 혼자 있는 장면이다. 농담으로 쓰려다 농담이 아니어서 그냥 적어 둔다.
4. 개를 때리는 노인
같은 건물의 살라마노 영감은 개를 때린다. 그러다 개를 잃는다. 뫼르소는 그걸 보기만 한다. 사랑하는 걸 때리는 사람과, 아무것도 안 때리고 아무것도 안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층계를 쓴다.
누가 더 이상한지 영화는 정해 주지 않는다. 나는 정했는데, 보는 날마다 바뀔 것 같아서 적지 않는다.
5. 결혼하자는 말에
마리가 결혼 얘기를 꺼낸다. 뫼르소는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답한다. 사랑이라는 말도 뜻이 없다고.
마리 역은 원작보다 분량이 늘었다고 한다. 늘어난 분량만큼 거절이 길게 보인다. 거절은 짧은데 거절당하는 사람이 오래 화면에 있다.
6. 이름을 얻은 여자
이웃 레몽에게 맞는 여자가 있다. 원작에서는 이름도 없이 스쳐 가던 사람이다. 영화는 제밀라라는 이름을 주고 말도 시킨다. 이 영화에서 바뀐 것 중 가장 큰 것이고, 뒤에 해변에서 벌어지는 일이 거기서 시작된다.
이름 하나 붙였다고 이야기가 바뀔까 싶었다. 바뀐다. 맞는 사람에게 이름이 있으면 때리는 사람이 누군지 분명해진다.
7. 칼에 튄 태양
해변이다. 이웃 레몽이 때린 여자의 오빠, 무사가 거기 있다. 칼날에 햇빛이 튄다. 카메라는 뫼르소의 눈이 되어 그 남자의 겨드랑이와 땀방울을 본다.
살인 장면을 욕망하는 눈처럼 찍었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되고, 그래서 이 영화답다. 이해가 되는 살인이었으면 두 시간이 아깝다.
8. 호송차 창문
잡혀가는 차 안에서 그는 처음으로 바깥을 본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아랍 사람들의 세상이 그때야 보인다.
감옥에 끌려가면서 도시를 처음 본 사람. 이것도 농담 같지만 아니다.
9. 태양 때문이었다
태양 때문이었다.
법정에서 뫼르소 입으로 그 말이 나온다. 재판은 살인보다 그의 태도를 심문하고, 그는 변명을 하지 않는다. 하면 살 수 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 대사는 원작에서도 유명하지만, 흑백 화면에서 그 태양을 두 시간 보고 나서 들으면 조금 다르게 들린다. 거짓말은 아니었구나, 하고.
10. 신부 앞에서 터지는 목소리
영화 내내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사람이 감옥에 찾아온 신부 앞에서 처음 소리를 낸다. 회개하라는 말에 터진다.
두 시간 참은 것을 한 장면에 쓴다. 그 계산이 맞았다. 참은 쪽이 이긴 장면이다.
11. 묘비
마지막에 묘비가 나온다. 아랍어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무사 함다니. 원작에는 없는 이름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한 순간이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에는 제목에 바로 그 단어가 들어간 영국 밴드의 옛 노래가 깔린다. 조용히 끝내 주지는 않는다. 그것도 선택이겠지.
덧붙이면, 중반까지 내레이션이 없다. 그 뒤로 원작 문장이 목소리로 들어온다. 말 없는 전반과 말 있는 후반. 받아 적을 수 있었던 건 후반뿐이었다. 전반은 눈으로만 봤다.
좋은 영화다. 보고 나서 기분이 환해지는 영화는 아니다. 그걸 알고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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